우리에게는 병원에 갈 권리가 있다

by 소방작가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 대란'에 관한 글이 잡지에 기고될 당시 고민스러웠던 지점은 내가 지나치게 자극적인 현장의 단면을 독자들에게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열경련에 시달리던 2살짜리 아이는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해서 뇌손상을 입었고, 농촌 봉사활동을 마치고 심정지 상태로 교정에서 발견된 대학생은 100미터 앞에 있는 대학병원에 수용되지 못하여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총강>, 제7조 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고 되어있다. 소방공무원은 재난을 예방하고, 발생한 변고를 최소한으로 틀어막는 것이 봉사자로서의 기본적인 책무인데, 전국 각지에서 근무하는 동료들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상황에 임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1조 2항에는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시민들은 위급한 상황에 수용 가능한 응급실을 찾을 수 없어서 신체에 비가역적 손상을 입고 있지만, 누군가는 의료 대란 상황에도 병원을 쉽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 '24년 9월 6일, 여당 최고위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위급한 상태에 있는 지인의 응급 수술을 청탁한 것으로 의심되는 문자를 수신한 것이 사진 기자에 의해 포착되었다. 동 법률 제1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누구든지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누구는 병원에 갈 수 있지만 누구는 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에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가 존재하는 것 아닌지 의문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과거에 병원을 선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특혜성 이송을 지원했던 적이 있었는데, 환자를 병원에 인계한 후에 배덕 행위에 동조했다는 죄책감을 지울 수 없었다. 모두가 평등하지만 그중에서 더욱 평등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국민의 법 감정과 명백하게 어긋나는 일이다.

권역마다 병원이 있고, 병상이 존재하지만 환자를 돌볼 의사가 없다. 국민들은 사회 필수 인프라인 의료가 붕괴되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현재 인프라가 붕괴된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일 것이다. 최근 이·팔 양국은 세계보건기구의 중재 하에 9월 1일부터 9일까지 임시 휴전 협정을 맺었다. 그 이유는 가자 지구에서 25년만에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근절된 질병이 팔레스타인에 다시 부활한 이유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교육·의료시설과 상하수도 인프라가 모두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할 수 없었고, 식수가 부족해서 오염된 지하수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생후 10개월이 된 아기 '압델 라흐만 아부 엘제디안'은 전쟁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얼굴과 다리 근육을 평생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감염되면 치료 방법이 없다.

필수 인프라의 붕괴는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 열경련으로 뇌손상을 입은 아기, 심정지 상태에서 회복했지만 의식불명인 대학생은 압델 라흐만 아부 엘제디안처럼 회복할 수 없는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적 상황을 보고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극단적일 수 있지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제34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정지된 의료 인프라를 다시 가동시키는 수밖에 없다. 동 법률 35조 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기에 그렇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의무'가 있다. 의료인은 '의료의 질을 높이고 의료 관련 감염을 예방하며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각자의 의무와 책임을 생각하며 의·정이 조건 없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정원 논의에 앞서 병원을 되살려주기를 소원한다.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없는 국민은 존엄을 지킬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공동선을 위해 각자의 이익 일부를 포기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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