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되고 있습니다"
<시사인> 기자에게 문자가 왔다. 의료 파업이 장기화하는 시점에서 소방관이 겪는 고충이 궁금하다며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싶다고 했다. 나는 인터뷰 대신 내용을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의·정 갈등에서 소방관은 주변인에 가깝다. 그래서 기자가 굳이 나를 만나서 취재하는 것보다는 그 시간을 아껴서 의사와 정부 측 입장을 자세하게 취재하는 것이 사안의 중심에 접근하는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메일을 보낸 다음 날 기자에게 회신이 왔는데 ‘보내주신 글을 읽는데, 제가 같이 심장이 떨렸습니다. 데스크에서는 보내주신 글 일부만 인용하기 아쉽다고 기고 형태로 잡지에 실으면 어떻겠냐고 해서요’라고 말하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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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보낼 때 내가 쓴 글이 기사에 일부 인용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예감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기고문의 형태로 수용되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쓴 글은 표지 기사가 되었다. 잡지의 소제목은 <한 구급대원의 편지 “붕괴되고 있습니다”>이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전국의 모든 서점의 주간지 판매대에는 내가 쓴 글이 진열되었고, 심지어 김대중 전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박지원 의원이 내 글의 제목 위에 친필 사인을 해서 독자 이벤트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정신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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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내 글을 게재한다고 했을 때, 기사의 주제 의식을 보완하는 재료로 사용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 글이 제일 앞에 서고 기자들이 의·정 갈등 상황을 설명하는 기사를 써서 내 글에서 드러난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증해나갔다. 내가 쓴 기고문의 성격을 따지자면 일종의 르포르타주(기록문학)인데, 독자들을 상대로 추상적인 용어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소방관이 쓴 글을 통해 구급차 안에서의 상황을 간접 체험하는 것이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하는 더 좋은 방법이라고 데스크가 판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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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쓴 기고문이 무색하게도, '24년 8월 29일 국정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채상병 수사 외압 사건은 국민적 의혹 없이 완전하게 해소되었고, 의료 공백과 관련해서는 비상진료체제가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이 사실상 완전히 붕괴되고 있는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대통령의 답변에서 앞으로 상황이 더 나아질 여지가 없다는 것을 담화를 시청한 국민 대다수가 절감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지금 이대로 괜찮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지만, 대통령은 더할나위 없이 국정이 순탄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대통령이 검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검찰의 조직 논리인 ‘무오류성’을 체화했기에 성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시기에 완전히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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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은 자신을 타자화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인데,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가능성을 일축하는 순간 반성과 수정의 가능성은 종말하며 오로지 오류를 저지른 잘못은 외부로 한정된다. 그러므로 당연히 자신은 잘 하고 있으며, 개혁의 대상은 당연히 내가 아니라 타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공개행사의 모두 발언에서 자주 ‘적’과 ‘반국가세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그러한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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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병원을 찾지 못해 길 위에서 죽어가고 있음에도 ‘지금 잘 되고 있다’고 말하는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총선에서 패배하고 국정 수행 지지율이 20%대 초반으로 추락해도 변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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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에 따른 ‘수업 일수 부족’으로 사실상 내년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의사가 배출되지 않는다. 따라서 병원이 없는 군대와 벽촌에서 의무 복무를 하는 군의관과 공보의 역시 공급할 수 없다. 6개월만 압박하면 결국 전문의와 전공의가 굴복할 것이라는 대통령실의 전망과는 달리, 의사 면허가 시장에 초과공급 될 것을 우려한 의사들은 미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개업을 준비하거나 아예 외국으로의 이주를 준비하고 있다. 병동의 빈자리는 의대 교수들이 수명을 갈아넣어 당직 근무를 서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나 이러다 죽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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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가 없는 성채에는 백성의 비명소리가 적군의 함성으로 들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쓴 글 역시 대통령실에 들리지 않을 것이며, 들린다고 해도 반국가세력의 불순한 언동이라 인식되겠지만 그래도 해야할 말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글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익명으로 발표한 글의 주인이 나였음을 개인적 공간에서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