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 대첩

영화 <아노라(2024)>를 중심으로

by 소방작가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아노라(2024)>는 올해 열린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아노라'는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녀의 이름은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으며 빛, 희망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녀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본명을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녀가 사용하는 이름은 애니. 빛과 희망이라고는 없는 어두운 스트립 클럽에서 매일 밤 손님들에게 랩댄스 추고 번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성노동자다. 이야기는 애니가 유학 온 러시아 재벌의 아들과 클럽에서 만나 즉흥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러시아 재벌은 아들의 황당한 결혼을 크게 꾸짖고, 세 명의 하수인을 보내 결혼을 무효화 하기를 종용한다. 그러나 애니는 그럴 수 없다고 맞선다.

애니의 남편이 된 남자는 부모의 재산을 물 쓰듯이 소비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해왔다. 그러나 향락에 취해 경솔하게 맺은 결혼으로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돈을 쓸 수 없게 될까 두려워 그는 아내를 내버리고 도망쳐버린다. 그래서 애니는 재벌이 보낸 하수인들과 함께 밤낮 없이 얼어붙은 마이애미의 거리에서 남편을 찾아 헤매게 된다.

이러한 서사 속에서 애니는 영화 속 인물들에게 구체적인 감정과 감각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인격이 소거된 도구로 치부된다. 도망간 남편에게 애니는 쾌락을 위한 단기적 수단이었다. 재벌과 그의 하수인에게는 창녀에게 얼마간의 금전적 보상을 해야하는 골치아픈 문제로 여겨진다. 그 누구도 애니가 비참하고 슬픈 마음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가운데, 하수인 중 이고르라는 남자가 유일하게 애니의 고통에 공감한다. 이고르는 찬 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애니에게 목도리를 벗어주었다. 이 장면을 연출한 감독은 관객들에게 '각자의 욕망을 위해 내달리는 세상에서 옆에 선 사람이 나와 똑같이 아픔을 느낀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사회 속 개개인이 존엄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것을 전해주었다.

나는 12.3 계엄 이후 영화 아노라가 생각났다. 며칠 전, 찬 바람이 부는 집회에서 연단에 오른 50대 남성은 자신의 유년 시절 겪었던 5.18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며 울었다. 그때 계엄군에 의해 관청에 소집된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윤석열이 12월 3일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대국민 담화를 보고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여의도에 달려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내일 일하러 가야한다는 마음과 타협해 가지 못했던 것이 죄스러워 매일 집회에 나온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빠짐 없이 응원봉을 흔들며 박수쳤다. 이후에 마이크를 넘겨받은 사람들은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채식주의자 등이었고 지금 처한 현실이 괜찮지 않음을,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른 길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리고 청중들은 공감했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개별적인 소망이 있었지만 한가지 공통된 바람은 세상이 지금보다 나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것 같았다. 아노라의 아픔을 이고르가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빛의 혁명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양곡관리법' 거부권에 항의하는 남도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가 남태령에서 가로막히자 시민들이 힘을 모았다. 회사 측으로부터 거액의 소송을 받은 조선소 하청업체 노동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고공 농성 중인 노동자, 복직 투쟁을 하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투쟁 후원금이 물밀 듯이 답지하고 있다. 그들의 싸움에 우리의 존엄이 달려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국민의 명령으로 내란을 일으킨 자와 부역한 자를 탄핵하였으나, 내란 옹호 세력은 원천 무효라고 말한다.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 김용현의 입장을 대변하고, 윤석열의 발포 지시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들이 변호하고자 하는 것은 국민의 힘을 착취하여 전체주의 독재자의 욕구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정치적 구호에는 시민이 원하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없다. 국민을 짓밟고서라도 입신하겠다는 더러운 반역적 욕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화가 밥 로스는 빛을 그릴 때 어두운 밤을 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위가 훤하면 별빛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계엄의 밤에 시민의 민주적 의지가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손에 든 빛이 얼마나 밝은지 알게 되었으므로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영화 속 애니가 자신의 빛나는 이름을 되찾은 것처럼, 우리는 빼앗긴 민주주의의 명예를 되찾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빛의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