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출을 할 때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진정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방송 매체에서 슬픔을 다룰 때 흔하게 사용하는 말인 '오열'을 기능적으로 흉내내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예술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의해 저마다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므로, 관객들은 배우의 눈물을 보며 실은 자신의 슬픔과 조우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배우의 조립된 삼상을 통한 슬픔이라도 그 연기의 효과가 관객들의 마음에 비감으로 공명하는 것이 아닐까요.
밤 늦은 시각이었습니다. 일터에서 일과를 마치고 귀가한 늙은 아들이 심정지·호흡정지가 된 아버지를 발견하고 급히 119에 신고하였습니다. 현장에 도착하여 살펴보니, 환자는 이미 호흡과 맥박이 정지된 지 오래된 상태로, 몸에는 강직이 관찰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고인의 아들에게 전하며, 구급활동일지의 세부사항을 작성하기 위해 고인이 생전 정상적으로 활동하던 시간, 앓고 있던 지병, 마지막 식사 시간 등을 여쭤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식사를 묻는 질문에 신고자는 미소를 지었는데, 일을 나가기 전에 아버지께서 들깨죽을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준비해드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단말마의 고통을 곁에서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생전 마지막으로 잡수시고 싶어 하셨던 음식을 대접하여 보내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미소가 마지막 식사를 지켜드린 안도감에서 지어진 것인지 저는 알 수도 없고 물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미소가 오열보다 슬플 수 있음을 가슴 깊게 깨닫게 될 뿐이었습니다.
저는 신고인의 미소를 보며 제 안의 비감과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 없이 이어지는 출동 속에서 삶의 고통을 아무리 미시적으로 잘게 나누어도 그 무게는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환자의 통증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끔찍한 찰나의 고통 속에서 영원을 살았으므로, 함께 구급차 안에 있는 것이 제가 아픈 것처럼 공명하였습니다. 희미하게 실감되는 살아가는 일이, 아픔에 있어서 만큼은 명료하게 다가왔습니다. 고통 끝에 삶의 종장에 이른 사람들을 보면 인생에 행복한 순간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삶이 종료되지 않으면 기쁨보다 밀도가 높은 슬픔의 자장으로 부터 영영 이별할 수 없기에 우리는 언젠가는 자신과 헤어질 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신고인의 미소는 이제 노환으로 고통받았던 아버지가 날카로운 고통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제 안의 슬픔이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속으로 '좋은 곳으로 가세요. 그동안 고생하셨어요'라고 빌기는 하는데, 좋은 곳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후 세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죽음을 설명하는 것에는 사실로서 동의하지만, 마음을 다해 동조할 수는 없습니다.
"죽음은 '개체'에게 일어난다. 죽음은 우리가 물질대사라 부르는 자기-유지 과정의 정지를 뜻한다. 다시 말해서 한 개체 내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재개되는 화학적 과정이 멎는 것이다." 이 문장은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린 마굴리스'의 글입니다. 과학자가 말하는 죽음에는 사실이 설명되어 있지만, 죽음을 맞이한 존재의 유일함에 대한 내용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과학적 언어 안에는 바쁜 아침 시간을 쪼개어 연로한 부친을 위해 들깨죽을 쑤어주고 출근했던 아들의 마음이 개입할 여지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의 파편에서 생성된 존재이며, 같은 화학적 원소로 몸이 구성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다르고, 저마다 유일하고 고유한 존재라는 사실을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과학은 구체적으로 사랑받았던 존재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의 죽음을 수식할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껏 종교에 귀의하지 못했던 이유는 초월적 언어를 소유하기 위해 치러야 할 맹목적인 신에 대한 복종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확신을 하기 전에 이미 확신을 하고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보수나 진보 정권 할 것 없이 고위 공직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나오는 공통된 구설은 후보자의 창조론적 신념에 대한 비판입니다. 헌법에 따라 존중받아야 할 종교적 자유가 비판받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편향에 따라 중소기업벤처부와 인권위원회가 운영되었을 때 근거를 통해 사실에 접근하는 과학적 의구심이 없다면, 각종 현안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는 데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치 인도의 정치인들처럼 말입니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힌두교와 인도 신화에서 중요한 문헌인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를 근거로, 힌두신 라마가 최초의 비행기를 조종했고 줄기세포기술이 고대 인도에서 이미 존재했다는 내용의 글을 교과서에 실었습니다. 이는 종교적 근본주의와 민족주의를 자극시켜 정치적 동력을 얻는 묘수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생각과 다른 종교를 가진 사회 구성원을 탄압하고 배척하며 경직된 사회로 나아가는 악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신성을 빌려와 비판적 사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경로의존에 따른 오류를 수정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면 이미 복구할 수 없게 망가져버린 후일 것입니다. 신앙은 한국적 통념과는 다르게 굳건한 확신으로 완성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의구심이 상존할 때 신앙은 스스로 사유할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며, 질문이 진보할 때 물음이 나아간 길을 통해서 경전이 설명하지 못하는 사회 현상에 대한 변화와 대처가 가능합니다.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는 예기치 못한 교황의 선종 이후, 교황의 생전 뜻에 따라 차기 교황의 선출 투표인 '콘클라베'를 이끌 단장으로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이 추대되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는 야심 많은 추기경들이 같은 지역, 같은 언어, 같은 문화권의 사제들을 포섭하여 종교적 권력을 손에 넣으려는 것과 달리 종교적 확신을 경계하며 '의심'을 자신의 신앙 한 가운데에 놓은 인물입니다. 민약 로런스 추기경이 생전 교황에게 간청했던 것처럼 바티칸에서 물러나 수도원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었다면 콘클라베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에서 도피할 수 있었겠지만, 결국 내 몫의 삶의 무게를 타인에게 전가하게 되며 기도는 부패해버릴 것이었습니다. 로런스 추기경은 기도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신앙 속 의심으로 구분합니다. 그렇게 콘클라베를 주관하기로 마음먹은 로런스 추기경은 투표권을 가진 각 교구 추기경들 앞에서 기도합니다.
"믿음은 살아움직입니다. 믿음은 의심과 함께 존재합니다. 만약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더 이상 믿음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의심하는 교황을 허락하시도록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죄를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는 교황, 그리고 다시 나아가는 교황을 허락하시도록 기도합시다."
의심으로 신앙은 선명하게 조탁되는 것 같습니다. 신앙 속 물음 끝에 얻은 깨달음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유가족을 음해하려는 족벌 언론에게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위로하고 꾸짖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4월21일 선종하셨습니다. 그는 과학과 산업이 객관적 진리와 편리를 확장해나가는 시대에서 소외된 인간의 고통을 종교의 언어로 위로하였습니다. 모두가 유일한 존재이기에, 타인의 고통 역시 소중하게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타인의 개별적인 고통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에서 맡은 자신의 조치가 옳은지, 정당한지, 효과적인지 의심해야 하며 그 노력 끝에 구원이 있을 것입니다. 헌법재판소가 판시했듯이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결의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존중할 때 역설적으로 자신의 고통이 위로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피로하더라도 만나는 환자들과 구조대상자들이 고유하고 유일한 존재들이며, 그렇기에 정확하게 위로받을 권리가 있다고 되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대한을, 마치 아들이 아버지께 들깨죽을 대접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야 제 존재의 구원이 있을 것이라 막연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가 없는 저의 유일한 종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