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나 공장에 화재출동을 나가면 입구에서 주저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검은 미연소 가스가 열과 압력이 응축되어 굉음과 함께 폭발하며 출입문이 크게 뒤흔들렸기 때문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본능적으로 저어되었지만 그동안 고된 훈련을 받았고, 방화복과 호흡장비가 나를 지켜준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문고리를 잡아 돌릴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미연소 가스가 또 폭발하더라도 몸을 낮춰서 진입하면 화염은 방화 헬멧 위로 지나갈 것이었습니다. 문을 열 때는 몸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조금만 열어 화마가 산소를 들이마시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등지게에 매달린 공기용기에는 40분을 호흡할 수 있는 공기가 들어있지만, 막상 현장에서 힘을 쓰다보면 호흡량이 많아져서 사용시간이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얼굴을 감싸는 마스크(면체) 안으로 최대한 호흡을 적게 하며 자세를 더욱 낮춰야 합니다. 그러면 미연소 가스 아래에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맑게 가라앉아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화재현장 안으로 진입하여 운 좋게 화점을 빨리 찾아낸다면 끌고 들어간 수관으로 방수하여 상황은 종료되지만, 연기 때문에 화점이 보이지 않는다면 미로에 갇힐 수도 있다는 공포심을 꾹 누르고 더욱 뜨거운 곳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화점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방수를 개시하면 곤란합니다. 물은 기화하면 부피가 1,600배 증가하는데, 그러면 위쪽은 뜨거운 미연소 가스, 아랫쪽은 차가운 공기가 안정된 형세를 이루고 있는 '중성대'가 무너지며 화재현장 내부의 앞길을 전혀 분간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침착함과 인내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뛰지 않는 것은 평정심을 갖고 효율적으로 활동하기 위함인데, 가끔 등 뒤로 "뛰어 이 새끼들아"라고 욕하는 시민들을 만날 때면 속상합니다.
뜨거운 것을 꾹 참고 연기 속에 밝게 빛나는 화염을 찾아 억누르고 나면 창문 등의 개구부를 개방하고, 연기를 배연합니다. 이제 소방관의 퇴마 의식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끝난 것입니다. 열린 창문 바깥으로 가스가 빠져나가면 현장의 참혹한 모습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공기가 부족한 대원은 마음 놓고 공기 용기를 교체하고, 다시 현장으로 되돌아와서 갈고리로 그을음이 있는 모든 가연물을 뒤집어 물을 뿌리는 '잔불 제거 작업'을 시작합니다. 사실 잔불 제거는 화재 진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체력적으로 힘든 업무입니다. 화마는 집요합니다. 조그마한 틈이 노출되기만 해도 불씨가 되살아나기 때문에, 천장파괴기로 석고보드를 뚫고, 도끼로 벽을 부수어 단열제를 충분하게 적셔야만 불길이 다시 되살아나지 않습니다. 공장이나 창고는 화재 취약 시간인 야간에 비어있기 때문에 인명사고가 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화재가 발생한 곳이 농공단지 근처의 주거용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인 경우에는 화재에 의해 희생되신 분들이 가끔 있었습니다. 제한된 제 경험 안에서는, 화재에 희생된 분들은 전부 이러한 주거취약시설에 거주하는 분들이었습니다. 화점을 제압하고 나서 연기가 가득 차있는 공간에 배연이 시작될 무렵 희생자가 발견되는 게 대부분인데, 이러한 경우 이불이나 천막 등 덮어드릴 수 있는 것을 찾아 차가운 물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드리고 불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작업을 지속합니다. 시신의 구조는 상황이 안전해진 이후에 이루어집니다.
바벨탑처럼 높이 솟은 마천루에 수백, 수천 가구가 벌집처럼 빼곡하게 모여서 살지만 그런 곳에 집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은 화재와 수해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됩니다. 고급 주택단지와 백화점이 보이는 지역 한켠에 가로등이 없어 농로에 빠진 구조대상자에게 수난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 실제한다면 믿으실 수 있나요? 그런 곳에 주거용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가 있습니다. 주로 저소득층 시민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보금자리입니다. 그러한 주거 취약시설에는 전력 사용량이 많은 겨울철에 전기적 요인으로 인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건전지가 들어가는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해드리지만, 그것만으로 화재를 예방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재난으로 발생한 결과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주거환경을 제공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참사'입니다.
최근 과학 커뮤니케이션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에서 한국의 인구 감소에 의한 소멸 가능성을 컨텐츠로 제작하여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인구 붕괴를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한 상태'로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경제적 기회는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으나, OECD 국가 대비 임금은 낮고 생활 물가는 높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비용은 천문학적이며, 청년들의 취업 연령은 갈수록 높아지고 노인들의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합니다. 지방의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상경하지만, 주거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결국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합니다. 서울의 출생률이 대한민국 평균인 0.77명을 하회한 0.55명인 것은 그에 대한 방증입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국밥집에 들러 식사를 하는데, 원치 않게 제 나이 또래 남성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불법 스포츠 도박을 제발 그만두라고 잔소리하고 있었고, 훈계를 듣는 친구는 충전한 금액만 베팅하고 이제 그만두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지난 밤사이 도박 사이트에서 2억 가까운 돈을 탕진하고 자살 소동을 벌인 청년을 구하러 출동했던 터라 묘한 기시감이 들었지만, 괜한 참견이 될까봐 저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청년들이 왜 불법적인 도박에 왜 빠져들었는지 알 것만 같습니다. 최근 전셋집 주인이 계약 갱신일이 도래하자 주변 시세에 맞춰 전세금을 2억 올려달라고 하여 저는 어떻게 돈을 구해야 하나, 수중의 돈으로 다른 곳으로 전세집을 구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적게는 9억, 많게는 16억이 있어야 직장 근처에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을텐데, 여생 안에 그러한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싶어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제게 있어 불을 끄고, 아픈 사람을 병원으로 이송하여 얻은 근로소득만으로 주거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요원한 일입니다. 저와 같은 처지의 20대, 30대 청년들이 무리하게 주식과 코인을 하는 것은 그들이 비이성적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처한 환경이 이상하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국밥집에 마주 앉은 청년들과 지난 밤사이 소동을 일으켰던 청년의 도박 문제 는 어쩌면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희망이 소거된 환경 탓에 발생한 문제는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법적인 영역 안에 발을 들인 그들에게 동정심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하여 청년들이 전부 도박을 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젊은이들 일부가 금융적 일탈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무리하게 빚을 내어 투자하며, 아이를 낳지 않고, 구직과 결혼을 포기하는 것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사회 양극화로 비롯된 현상으로 분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왜 바보같은 유혹에 이끌릴 수밖에 없었던 걸까요?
카지노에는 하우스와 플레이어 간의 승률이 미세하게 차이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이 지속된다면 플레이어는 돈을 전부 잃을 수밖에 없지요. 이론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는 "어떤 물리적인 과정이 제로가 아닌 확률로 일어날 수 있다면, 가능성이 아무리 적어도 그 과정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그 가능성은 1인 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0.5~5%의 확률 차이로 카지노 플레이어가 하우스에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사람이 자신이 몸 담은 세상을 긍정하지 못한다면 인구의 재생산 가능성은 결국 0에 수렴할 수밖에 없습니다. 희망과 절망의 마진 게임에서 결과 값이 음수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쿠르츠게작트 채널이 대한한국이 소멸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 것은 대한민국이 낙담하여 패퇴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압대장님으로부터 "야! 거기 사람 맞아? 뒤집어봐!"라는 지시를 받고 검은 형체를 뒤집었을 때, 타지 않았던 희생자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저는 어쩌면 그러한 광경을 목도하고 이 사회가 사람이 살만 한 곳인지 판단하는 제 마음 속 함수 값을 마이너스로 설정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꾹 참아야겠지요.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화점을 찾아 전진하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문제의 근원을 찾아서 제압하고나면, 우리 공동체는 희망이 절망을 앞설 수 있게 될까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삶을 선물하며, 기껍게 인생을 살아보길 권할 수 있을까요?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집 없는 자들이 더이상 비참하게 떠나버리지 않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