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을 독점하는 기업

by 소방작가

인간이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은 신경계가 생존을 위해 고안해낸 방책이 아닐까 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한번의 시도가 실패한다는 것은 재기의 가능성을 영영 잃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상황과 형편에 맞는 가상의 사고 실험을 반복하는 것은 최적화된 결론을 찾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암벽을 타고 절벽에 매달린 과실을 움켜쥐어야만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경로를 모의 실험하고 등반에 나선 사람과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 간에는 성공률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자가 종합적인 시야를 바탕으로 과제를 대하는 반면에, 후자는 다음 홀드로 나아가는 것에 급급하여 계획을 수립할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미처 신경쓰지 못한 사이에 이끼가 낀 미끄러운 돌을 움켜잡았다면 추락하여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상상력의 빈곤은 미래의 존재를 부재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시행착오를 서사로 변환하여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남긴 흔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를 많이 수집하여 사고할수록 복잡한 현실의 문제를 직관적으로 판단하여 제한된 상황에서 빠르고 효율적인 결론을 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능력인 '휴리스틱'이 정교해집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하여 소비하는 것은 휴리스틱을 향상시키기 위한 무의식적인 노력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자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에 관한 법률' 입법에 역할을 한 김영란 위원장은 자신의 저서《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에서 법률을 담장처럼 두르고 평생을 살았던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위안이 되았던 것은 '직업적 성공과 무관한 책 읽기'라고 밝힙니다. 그 덕분에 김영란 위원장은 자신들의 조직 논리에 매몰되어 잘못을 저지르는지 조차 분간하지 못했던 법관들과 달리, 국민의 법익을 진정으로 이해하였던 존경 받는 법조인으로 칭송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출세에 쓸모 없는 책 읽기를 통해 얻은 직관적 판단이 오히려 타인과 자신을 구하는 데 쓸모가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미러》를 보는 것은 먹고 사는 일에 전혀 쓸모가 없지만, 기술의 진보로 인해 초래된 디스토피아를 상상하게 만듦으로써 현재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부조리를 깨닫게 합니다. 그중에서 최근 공개된 7번째 시즌의 <보통 사람들>이라는 에피소드는 신경계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에 대한 치료법으로 뇌의 손상된 부분을 제거하고, 사라진 기억과 신체 기능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원격 전송하여 일상 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된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기술을 독점한 바이오 기업은 스트리밍의 구독 요금제를 신설하여 더 높은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일상에 지장이 생기도록 하여 요금제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강제하고, 그렇게 독점 기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은 평범한 노동으로 일상을 꾸려나갈 수 없어 '덤 더미스'라는 방송 플랫폼에서 시청자가 요구하는 대로 신체를 학대하는 방송을 송출하는 처지로 내몰리게 됩니다.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장면입니다.


IT기술을 소수의 테크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 그들이 제작한 가상의 세상에서 과장되게 꾸며진 자신의 모습을 전시함으로써 기업을 자의적으로 홍보해주는 세태, 아래로 끝 없이 펼쳐지는 스크롤 기능에 지지 않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업로드해야 하는 강박, 타인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자해하듯 경쟁하는 세상의 광기는 현실의 병폐를 모두 반영하고 있습니다. 병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진단을 시작으로, 환부를 노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독점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노갈레스와 멕시코 소노라주의 노갈레스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지만 소득과 치안, 영아 사망률과 보건 의료, 치안과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 참여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멕시코는 억만장자 카를로스 슬림과 같은 인물이 정치와 유착하고 경제를 독점하는 닫힌 사회인 반면에, 미국은 빌 게이츠의 시장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 「반독점법」 등의 견제 장치를 통해 신진 기업의 시장 참여를 촉진하여 알파벳과 애플, 아마존, 메타와 같은 새로운 IT 기업이 기회를 얻어 세상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독점법이 있음에도 미국의 테크 기업들은 이윤 추구를 위하여 시장을 독점하고자 하는 욕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최근 미성년자의 SNS 금지 법안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추세입니다. 그 이유를 《불안 사회》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는 과거에 비해 아이들이 안전이라는 미명 하에 육체적 자율성이 제한되어 왔지만, 사이버 세계에 접촉할 권한은 어떠한 규제도 없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타인과의 비교에 취약한 청소년의 정신 건강이 현저하게 악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결과를 대기업이 몰랐을 리 없습니다. IT 기업들은 초기 사회관계망서비스의 알고리즘을 설계할 때 중독을 유발하기 위하여 심리학자와 마케터 등 전문가 집단에 자문을 받아 '좋아요' 등의 사용자 의존적 인터페이스를 심어두었으며, 미성년자의 SNS 이용이 법적으로 금지된 이후에도, 연령 제한을 손쉽게 우회할 수 있도록 '백 도어'를 열어둠으로써 미래의 고객을 다른 프렌차이즈에 빼앗기지 않기 위한 악독한 속임수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탐욕으로 젊은이들은 극심한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현상을 직접적으로 비유하는 예술가들이 있는데, 음악을 만드는 창작 단체 '발밍타이거'의 뮤직비디오 <I'm Sick>을 보면 기업의 기획에 의해 자발적으로 자아를 파괴하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구급 출동에서 자주 접하는 것은 씁쓸한 일입니다.


'한 잔 주세요' 라고 정의하는 스트리밍은, 인터넷 방송 시청자들이 사이버 머니를 후원하면 술을 한 잔 마시는 방송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청자들은 방송인들이 취하게 만들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방송지기들은 돈을 벌기 위해 술잔을 들이킵니다. 그 사이 플랫폼은 기이하고 부도덕한 가학 행위가 돈을 벌어다주는 것을 즐기며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방송인이 급성 알콜중독으로 쓰러지면,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가 119에 신고하여 출동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에 문제가 생길 때까지 방송을 지속하였고, 병원에 이송할 때마다 망가져가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의 집으로 출동하는 빈도가 줄어들며 이제는 출동을 전연 하지 않게 되었는데, 동료들과 그의 집으로 출동했던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가 정말 잘못된 것은 아닐까 상상하고는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삶이 어쩐지 기업의 이익에 의해 희생되는 《블랙미러》 속 <보통 사람들> 같아 마음이 쓸쓸해졌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해야 할 일에 대한 상상 뿐만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상상도 필요합니다. 새롭게 맞이하는 세상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목록을 다 같이 직관적으로 상상해보았으면 합니다. 누가 무엇을 독점하고 있는지, 누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는지 집단 지성의 힘으로 감시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출세하는 것과 먹고 사는 일에 크게 상관이 없지만, 공동체가 안전하게 '생존'하기 위한 역사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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