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만년필을 계속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도구가 있다고 해도 사유가 여물지 않은 시기에 섣부르게 과실을 거두려고 한다면, 그 결과물은 쓰지 않으니만 못한 게 되기 십상입니다. 글은 읽는 행위는 독자의 적극적인 노력이 투입되는 능동적 행위입니다. 그래서 쓰는 사람은 읽는 이들의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도록 최선은 다해 정보를 수집하고, 논지를 가다듬어 세련된 문체로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저는 그동안 얼마나 성실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주간 근무 중에 신원 미상의 분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 응급실에 이송했습니다. 그이는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 의해서 발견되어 구조되었습니다. 사람이 떠내려온다고 했습니다. 구급차를 몰고 가는 내내 지령서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습니다. 한강에 버려진 미상의 물체가 맨눈으로 정확하게 식별되지 않아서 신고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수난구조대가 송신한 무전을 청취하니 사람이 맞다고 했습니다. 구조 대상자는 심정지 상태에 빠져있었습니다. 지령서에 적힌 긴급구조 위치에 도착해보니 한눈에도 청색증을 보이는 익수자의 모습에 생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내용을 자세하게 묘사하여 내보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타인에 의해 생전의 삶이 소거되고 극단적인 행위로 인한 결과만이 평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타인의 관심을 유도할 목적으로 자극적인 이야기를 지어내는 부도덕한 행위라고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차가운 서사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이야기를 써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제 안에는 이야기가 고여있지 않고, 언제 쓸 수 있게 될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만년필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속 주인공처럼, 오늘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구조 대상자는 심정지 상태가 분명하지만, 한강에 투신한 시간이 규명되지 않아 소생할 수 없을 정도로 침수된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기에, 골든타임이 지났다고 예단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처치하며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절차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구급대원의 자의적 판단으로 처치를 받아야 할 환자가 방치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일의 순서와 방법은 성문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절차’는 이렇듯 사람에게 부패와 태만의 가능성이 언제나 상존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불신하여 만들어진 제도가 오히려 인간을 규정된 법률과 규칙에 따라 복무하게 하여 사회를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엘리트는 어떠한가요? 제도가 키워낸 이들이 오만에 빠져 자의식이 비대해지며, 법률을 어겨도 괜찮다고 여기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준수하는 준칙을 위반함으로써 최대의 이익을 얻습니다. 그들이 제도에 구멍을 내서 얻은 균열로 사회는 붕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질서로 축조된 제방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썩은 엘리트는 계급의 획득을 발판 삼아 절차를 생략하거나 무시합니다. 그래서 일을 치르는데 응당 거쳐야 할 순서나 방법을 학습하지 못하므로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어리석은 결정을 고도의 정치적 판단인 양 아무렇지 않게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의 근육이 녹아 홀로 설 수 없을 정도로 도태되었지만, 자신은 고시를 통과하던 시절 그랬던 것처럼 대단한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상태가 게으르고 윤리적이지 못한 대한민국 일부 엘리트의 문제점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퇴근하려면 낮뿐만 아니라 찾아온 밤을 다음 날 아침이 찾아오기 전까지 감내해야만 합니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는 취객이 지하철 개찰구에서 넘어져 이마가 찢어졌습니다. 절차에 따라 지혈하고 병원에 이송하려고 했더니 제대로 협조가 되지 않았습니다. 차선책으로 보호자에게 연락하여 환자를 인계하려고 막차 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 환자를 진정시키며 보호하고 있었는데, 지하철 역사에서 근무하시는 청소 노동자분들이 수전에 호스를 연결하고 손수레에 락스 등 청소용품을 태워 아침에 승차할 고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청소의 절차는 고요한 역사 안에서 차분하고 신속하게 이뤄졌습니다.
공동체의 내일은, 이렇듯 ‘절차’를 지키는 시민들에 의해 작동할 준비를 순조롭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