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권력을 빚지고 있는 당신에게

by 소방작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 교수는 한국으로 귀화한 벽안의 철학자입니다. 박노자 교수는 한국 사회를 군사주의적 문화에 의해 통제받는 ‘병영사회’라고 규정합니다.


1996년, 초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개칭하기 전까지 우리 사회는 일본 제국주의가 자국의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바꾸며 군국주의 교육을 강화하려 했던 취지를 그대로 답습하였고, 악습은 광복 이후 군사정권이 종말을 고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에야 적절하지 못한 이름을 제대로 고쳐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었다고 해서 병영사회의 분위기가 쇄신된 것은 아닙니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군사 집단과 같은 획일성과 일사불란함을 교육하기 위해 체육대회 때 매스 게임을 강압적으로 훈련시켰고, 대강당에서 조회를 열 때는 군인처럼 차렷과 열중쉬어의 구령에 맞춰 대대가 사열하는 듯한 제식 훈련을 하였습니다. 학생들은 입학과 졸업의 과정을 거치며 군인과 같이 ‘기수’라는 사회적 계급의 변치 않는 주소를 부여받고, 성인이 되면 남성들은 입대를 통해 병영 속에서 국가적 압력에 순종하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사측의 군인처럼 이익에 복무하겠다는 맹세를 경례하듯이 되뇌어야만 합니다.

전체의 목적에 부합할 능력이 없는 자는 무참하게 낙인찍어 추방하고, 집단의 이익과 경제의 성장,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얼차려와 같은 불이익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선전하는 약자 혐오 문화는 병영 질서에 길들여진 사회 구성원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우두머리의 목표가 곧 나의 꿈인 것처럼 자발적으로 타인의 욕망을 내재화하는 군중들의 사회에서, 소수자를 불온 세력으로 호도하는 것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자리를 얻고자 하는 포퓰리스트에게 달콤한 유혹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사회의 정상성을 유지한다는 미명으로 낙오자의 처지를 불성실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 고립시키는 순간, 포퓰리스트의 입에 의해 흑색선전이 정당한 유세처럼 둔갑합니다. 대통령 선거는 끝이 났으나, 선거 유세 과정에서 TV토론을 통해 어느 정당의 후보가 여성에 대한 성적 학대를 담은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발설하여 상대 후보에게 정치적 공세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2020년대의 한국은 병영사회에서 완연한 ‘혐오사회’의 모습으로 변모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혐오는 ‘싫어하고 미워한다’라는 사전적 의미에 더하여, 증오한 나머지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끊임없는 정훈 교육을 통해 적군에 대한 비인간화를 체화하여 살상 작전에 나서는 것처럼, 약자와 소수자를 혐오하며 존재를 부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제거해도 괜찮다’, 혹은 ‘제거하는 것만이 정의다’라는 반동적 사상으로 우리 사회는 결국 불법 계엄이라는 금단의 문턱을 넘어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밤중에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고시원 00호실 입주민이 피를 흘리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구급가방을 들고, 구급차를 타고 들어갈 수 없는 비탈진 도로를 올라가 고시원의 문을 열었더니, 해당 호실에 입주하신 분은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다는 징후가 관찰되는 상태였습니다. 사계절을 나기 위해 인간에게 필요한 물건의 최소한을 작은 방 안에 구겨서 넣은 채 살아왔던 분은 고인이 되어서야 그 존재를 알려왔습니다. 저는 이런 분을 마주할 때마다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자서전에 남기신 말처럼 “박해받는 사람들 가운데서 박해받지 않고 산다는 것, 그런 상황이 안겨주는 불편한 느낌”을 느낍니다. 헌법에는 모든 권력이 국민한테서 나온다고 되어 있지만, 국민이 어떤 모습의 사람들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애써 노력한다면, 방송에 나오는 것처럼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상상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집단의 가치를 좇지 못해 배척된 사람, 그렇게 혐오의 대상이 되어 실존이 부정당해 온 사람들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혐오를 걷어내고 꼭 생각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권력은 미움받는 존재들을 통해 권력의 일부를 위임받았기 때문입니다.


혹독한 시절이 지나고 우리 사회에는 새로운 대통령과 극복해야 할 무거운 과제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행사하는 권력의 일부가 바로 여기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말직의 소방공무원으로써 대통령에게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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