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에 대한 고찰

by 소방작가

조선후기, 서학(천주교)에서 전래된 평등 사상은 역병처럼 팔도에 퍼져나갔습니다. 사대부 출신 이벽, 이승훈 그리고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형제는 조선 양반 계급의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음에도 역관 김관우와 같은 중인들과 무릎을 맞대고 앉아 '인간은 신의 형상을 본따 창조되었기에 모든 사람은 존귀하고 평등하다'는 성서의 교리를 함께 공부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28). 천주에 대한 믿음이 순수하다면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라는 이름 없는 책의 교리는 조정의 입장에서 큰 걱정거리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주의 창조 아래 노비와 양인, 양반과 임금 모두 공평하게 은총받았다는 생각은 왕권이 천명에 의해 부여받은 것이라는 유교 국가의 질서를 교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왕과 사대부의 입장에서 모두가 평등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만일 모두가 평등하다면,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1945)』 속 돼지 나폴레옹의 말처럼 "어떤 동물(사람)들은 다른 동물(사람)들보다 더욱 평등"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평등을 '특권'이라고 부릅니다

어린 순조를 위해 수렴청정을 했던 정순황후 김씨는 백성들보다 평등해야 할 자신의 귀한 아들을 위해 신유박해(1801년)를 일으켜 300여명의 천주교 신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정약용은 잔혹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신문 과정에서 천주교 지도자들의 이름을 발설하였고, 그들을 포획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약한 노비와 학동을 추궁해야 한다고 조언한 대가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가 실토한 신자 중에는 자신의 조카 사위 황사영이 있었습니다. 그는 16세에 장원 급제하여 정조가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맞잡을만큼 국왕이 총애하는 자였으나, 천주교를 접하고 나서는 그것이 "세상을 구제하는 좋은 약"으로 여겨 관직으로 나아가 출세하지 않고 신앙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는 신유박해 소식을 전해듣고, 청의 주교에게 백서를 보내 서양의 군함을 동원하여 부패한 조선을 멸망시키고 백성들이 청의 신민으로 편입되어 종교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였으나, 조정에 의해 전모가 발각되어 서대문에서 처형되었습니다. 황사영은 외환을 유치하여 국가를 배반하고 극도의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반역행위를 기도했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탐관오리의 수탈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평등하게 하고, 자신의 신변을 구하는 유일한 방책이었을 것입니다.

황사영의 사후 59년 뒤, 조선에는 교주 최제우에 의해 '동학이라는 종교(1860년)가 창시되었고, 동학은 서학과 반목하였으나 "사람이 곧 하늘이다(인내천 사상)", "천주는 밖에 있는 신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시천주 사상)" 등 핵심 사상이 성서의 교리와 호응하며 조선은 억업에 저항하고 점차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1894년,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과 수탈에 항거하여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고종은 혁명을 진압하여 자신만이 독점하고 있던 평등을 고수하고자 청에 원군을 요청하여 일본 제국을 끌어들이는 결과를 야기하여 팔도는 국제 전쟁의 한복판이 되어버렸습니다. 고종이 외환을 유치한 것은 백성들의 자유와 평등을 전하고자 했던 황사영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위체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을 내팽개쳤기 때문입니다. 한일강제병합 이후 동학과 서학은 각자의 방법으로 독립을 도모하기 위한 투쟁에 돌입합니다.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로 이름을 바꾼 뒤, 3·1운동과 같은 비폭력 민족주의 운동을 주도하였고, 천주교 신자 안중근은 동양의 평화를 위해 이또오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조선의 인민들은 일제에의 의해 수탈을 당하며 신음하는 것은 부당하며 불의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의 인민들은 일본 제국주의 신민들과 마찬가지로 존엄하고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동학과 서학이 일러준 뜨거운 평등의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주도했던 임시정부의 무장 투쟁과 외교 투쟁, 교육 계몽 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은 대한인의 독립을 위한 것이지, 일본 극우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한 테러 행위가 아닌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합니다. 지금 우리가 공화국에서 누리고 있는 평등은 정치적 수사이기 이전에, 종교적인 기원에서 비롯되었으며 그것은 인간이 포용적인 정치와 경제 안에서 번영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생물학적 기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평등은 서학 순교자와 동학농민혁명의 희생자, 독립 열사들의 혈액을 먹고 탄생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혈흔은 헌법 제11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1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헌법 제11조 제1항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내란수괴가 석방되어 불구속 상태에 있는 것을 차치하고서, 늙고 병들었으며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 정말 공정하고 정의롭게 대우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최근의 일입니다.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80대 노인이 고열과 두통을 호소하며 119에 신고하였습니다. 그는 거동조차 힘들어보였지만, 소방관들 얼굴을 보니 안심이 된다며 병원 진료는 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를 보니 병원 응급실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환자에게는 보호자가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그냥 돌아간다면, 환자는 혼자 골방에 누워서 통증을 견뎌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방광암 등 지병이 많은 것도 문제였습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대학병원 응급실 직통전화로 환자 수용 여부를 문의하고 병원 이송을 하여 환자 분류소에서 대기하는데, 30분이 지나도록 병원 측에서 베드를 지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병원 보안요원에게 물어보니 의료진이 환자에 대해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대답해주었습니다. 보통 환자분류소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환자를 평가하고나면 10분 정도 차트를 정비한 후에 베드를 지정해주는 것이 보통의 절차였기에 분명 지금의 상황은 이례적이었습니다. 의료진은 자신들끼리 수십 분 더 회의를 진행한 끝에 보안요원은 이제야 환자의 접수 처리가 완료되었다며 환자의 신분증을 돌려주었습니다. 신분증의 사진에는 환자에게서 젊음과 건강이 탈색되기 전의 모습이 생생하게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들것에 모신 환자를 응급실 안 베드에 눕혀드리고 나서 응급의료학과 당직 교수님이 저를 포함한 구급대원들을 호출하였습니다. 그는 우리 앞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앞으로 이런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환자는 기초생활수급자고 보호자도 없는 상태잖아요. 막말로, 단순 고열이면 상관 없는데 검사를 해서 덜컥 심각한 결과가 나오면 어떡할거예요. 물론 구급대원 분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그런데 솔직하게 말이에요, 전공의 사태 때문에 인력이 없기도 하지만 이런 환자는 병원 입장에서 마이너스예요. 여기 근무하는 의료진들이 다 나와서 월급 받자고 하는 일인데... 다음에 이런 환자는 국립중앙의료원이나 국가가 운영하는 국립대 병원 쪽으로 가주세요. 거기는 나라에서 월급 주는 곳이잖아요. 부탁 좀 할게요."

부탁한다는 말을 듣고 환자 인계는 끝이 났습니다. 구급일지가 적힌 태블릿을 들고 구급차로 되돌아가는 제 등에 대고 노인은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저의 처지와 노인의 상황은 구분되는 것이지만, 왠지 교수님께 이런 말을 들으니 제가 모욕을 받은 것처럼 모멸감이 들었습니다.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따라 평등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지위의 고하가 존재하는 것을 이렇게 가끔 목격하게 됩니다. 실제로 한남동에 환자가 발생하면 가정부와 집사가 있는 집에 사는 사모님을 이송하는 경우가 있느데, 그럴 때면 병원 교수님이 환자분류소까지 버선발로 마중을 나와서 환자를 맞이하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이런 풍경을 보고있노라면, 헌법 제11조 제2항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말이 빈말처럼 느껴집니다.

서울은 특히 몸조심을 해야 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빅5 병원이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는 돈이 되는 심혈관센터와 암센터와 같은 수익사업을 진행하느라 넷플릭스에 나오는 것 같은 '중증외상센터'가 국립중앙의료원 1곳을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련 통계가 존재하는 2017년 기준, 국내 평균 예방 가능 사망률은 19.9%이지만 서울은 30.2%나 됩니다. 통계가 말해주는 진실은 외상환자를 살리는 것은 서울에서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공의들의 파업과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민일보의 작년 이맘 때 생산 된 기사 중 하나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은 드러눕고 전공의 소식 없고"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기사는 두 개의 단체를 동일선상에 두고 논조를 펼쳐가지만, 제가 보기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장연은 이동에 제약이 있는 본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언젠가 젊음과 건강이 탈락하고 난 뒤 거동이 불편해질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것이라면, 후자는 여섯 살때무터 학창시절 내내 시험이라는 전투를 치러 쟁취한 의료인으로서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전자가 황사영의 백서와 닮아있다면, 후자는 청에 원군을 부탁하는 고종의 망국적 밀서와 성격이 흡사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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