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봄이 지나기 전에 봄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 염원이 이루어져 드디어 봄꽃을 마주하게 되었네요. 나무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겨우내 거친 바람이 할퀴고 간 차가운 목피(木皮) 안에는 꽃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무는 자신이 뿌리내린 장소를 탓하지 않고 서 있는 자리에서 순순히 꽃을 피워냅니다. 그래서 수목은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나뭇가지가 서로 닿지 않아도 꽃을 매개로 서로 교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희망을 품는 것이 확실합니다. 겨울을 이겨내면 꽃을 피울 수 있고, 꽃을 통해 나와 같은 존재와 만날 수 있으며, 고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신록을 맺는 결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면, 한 번의 겨울을 끝으로 나무는 앙상한 가지로 남은 채 영원히 잠들어 버렸을 것입니다. 나무는 자신이 살아있는 한, 영원토록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것을 믿는 것입니다. 김승희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희망은 종신형"이기 때문입니다.
내란의 위험에서 벗어난 거리는 상춘객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벚나무처럼 자신의 표피 안에도 꽃이 들어 있음을 믿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벚꽃을 예찬하는 듯했습니다. 광대무변한 우주 공간 속에 원치 않게 태어나 지구 위에 독존하게 되었지만, 내 안에 잠재된 아름다움으로 타인의 공허를 위로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봄을 기다리는 일은 '종신형'이므로 희망을 갖는 일은 무거운 기대를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일상을 영위하는 게 힘겨운 것 아닐까요? 기다림을 짊어지고 가야 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봄을 기다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봄을 기다리지 않으면 겨울을 이겨낼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소방서에서 근무하며 봄을, 그리고 꽃을 포기하는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됩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화상 전문 병원의 정원에 등나무가 감긴 퍼걸러 위로 환자가 추락했습니다. 환자의 머리와 양손에는 붕대가 두껍게 감겨져 있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급히 환자를 지상으로 구조하고, 경추보호대를 적용하는 등 신체를 고정한 채로 정원에서 멀지 않은 병원의 집중치료실로 이송했습니다. 의사와 소방공무원 할 것 없이 이송 중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제세동기 패치를 붙이고, 팔과 다리에 한 명씩 달라붙어 정맥로를 확보한 끝에 양쪽 대퇴동맥에 정맥을 확보하여 강심제와 생리식염수를 투여했습니다. 그리고 의료진이 손으로 환자의 심장을 압박하는 사이에 제세동기의 모니터는 환자의 심전도 리듬을 읽고 전기 충격을 줄 것을 지시합니다. 신호를 수신한 의료진과 소방공무원은 그 즉시 환자에게서 떨어져야 합니다. "쇼크!" 전기 충격과 함께 환자의 근육 수축이 일어나며 순간적으로 코마 상태인 환자의 몸이 움직입니다. 이후 다시 의료진과 소방공무원들이 달라붙어 기관내 삽관을 시도하고 동시에 가슴 압박을 계속합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호흡할 수 없는 환자에게 산소를 공급하기 위함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의 혈중 산소포화도는 95~100% 수준이지만, 심정지 상황에는 환자의 혈액이 순환하지 못하기에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산소포화도가 하락하기 시작하며 70%이하로 5분이 지나면 환자의 뇌는 비가역적 손상이 일어나고, 10분이 초과하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관내삽관으로 기도를 확보하여 산소를 투여하고, 가슴을 깊게 눌러 혈액을 순환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두번째 강심제가 들어갑니다. 이것은 심정지 환자의 심장 수축력을 증가시켜 심장이 더 강하게 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물입니다. 강심제가 투여되는 중 구급대원들은 기계식 가슴압박장치를 환자에게 적용합니다. 이 기구는 환자의 가슴에 설치되어 정확한 리듬과 깊이로 환자의 가슴을 누를 것입니다. 이제 의료진 한 사람의 손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이제 심장의 기능 순환에 매달렸던 의료진은 두부 출혈에 집중합니다. 뇌출혈 가능성이 관찰됩니다. 출혈의 양이 많습니다. 화상 전문 병원에는 뇌출혈을 처치할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습니다. 구급대원이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인근 대학병원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합니다. 출혈로 인하여 혈압이 저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생리식염수의 투여 속도를 높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세번째 강심제가 들어가고 다시 한번 모두 물러나세요. 쇼크! 심장의 리듬은 강심제가 6번 투여된 이후에야 겨우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심각한 두부 외상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시 119구급차에 환자를 싣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시작합니다.
환자의 응급 처치를 위해 의사 한 분과 저를 포함한 구급대원 두 명이 승합차를 개조한 뒷좌석에 앉았습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구급일지를 작성하며 전원하는 병원에 인계할 목적으로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화상으로 심하게 훼손된 환자의 안면을 가리키며 화상은 거의 회복되었지만 흉터로 인하여 환자는 앞으로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없게 될 것을 걱정하고 우울해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태블릿에 받아 적는 순간, 끝이 보이지 않는 좌절의 구렁텅이에 작은 조약돌을 던져 넣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구덩이 속에 돌을 분명히 던졌는데 바닥에 부딪혀 공명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직업인으로서의 자아에 자상을 입게 되는 것은 환자의 몸이 훼손되는 끔찍한 장면에 노출되는 것이 아닌, 이번처럼 환자가 이제 자신에게는 봄이 남아있지 않음을 단념하며 절망하는 모습을 보는 경우입니다. 자신의 몸에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준 환자들이 무의식 속에 가망 없이 괴로워할 때면 솔직한 심경으로 이제 그만 그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고는 합니다. 이렇게 봄을 기다리는 일을 단념하는 사람은 작년 한 해에 1만4439명으로, 하루 평균 39명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세계 최고입니다.
숫자는 세는 것이므로 자살하는 사람의 수를 들었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헤아리기 힘들지만, 제가 말씀드린 일화적 사건과 그 속에 실존했던 누군가의 고통을 들여다보면 숫자 안에는 실존했던 누군가의 절망이 매일 서른 아홉 건, 그렇게 일년에 일만사천사백삼십구 건의 깊이로 쌓였음을 알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저와 같은 소방공무원의 증언이 아니라면 위의 숫자를 구체적으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제·문화 강국이며 친위쿠데타를 평화적으로 진압하여 민주공화정을 지켜낸 국민들이지만,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고 자살은 가장 많이 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만들어갈 공동체는 뒤늦었지만 소수가 출세하여 성공의 상한을 더욱 높이는 것이 아닌, 사회적 하한을 최대한 끌어올려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법의학과 유성호 교수는 자신의 저서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2019)』에서 자살에 관한 연구 결과를 하나 소개합니다. "한번 자살 제지를 받은 사람 중 67%는 다시 자살 시도를 하지 않고 자신의 평균 수명을 다 했다." 이 연구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타인의 극단적 선택을 단 한번이라도 제지할 수 있었다면 열 명 중 일곱은 2025년 봄, 우리와 함께 벚꽃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생존에 급급하여 혼자 고립되어 있지만, 누구도 홀로 핀 꽃을 보고 봄이 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따로 또 같이 피어야 비로소 봄이 온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들의 표피 안에는 꽃이 들어있음을 잊지 맙시다. 봄꽃을 보며 종신토록 희망하기를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희망은 종신형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