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승리는 대부분 체급상의 이점이 있는 골리앗의 차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작은 다윗이 중무장한 거인 골리앗을 쓰러트린 것처럼,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제압하는 장면을 종종 연출하고는 합니다.
농구는 305cm의 높이에 매달린 바구니에 공을 집어넣는 것으로 경쟁하는 스포츠입니다. 높은 위치에 표적이 매달려 있으므로, 팀에 신장이 큰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수비와 공격을 번갈아 수행해야 하는 팀 전력에 큰 도움이 됩니다. 보통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NBA 리그에서 골밑을 사수하는 센터 포지션의 선수의 신장은 213cm(7ft)을 상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장 높이에 더해 긴 팔의 길이를 감안하면 바구니보다 높은 위치로 손을 뻗어 상대의 슛을 견제할 수 있으니, 신장이 큰 센터의 보유 여부는 농구팀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188cm의 작은 신장으로 센터를 넘어 슛을 성공시키며 2010/2011시즌 NBA 무대를 평정한 선수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데릭 로즈입니다.
그는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자신보다 키가 큰 선수들과 거침없이 경합하였는데, 유튜브에서 그의 경기 영상을 찾아보면 마치 착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아크로바틱하게 몸을 비틀어 레이업슛이나 덩크를 성공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플레이는 마치 묘기를 보는 듯한데, 다만 그러한 동작이 신체에 무모한 부담을 주고 있음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우려하게 합니다. 그러한 비감이 현실이 되어, 그는 2013년 왼쪽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당을 당한 이후로 화려한 플레이를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반복한 끝에 2024년에 은퇴하였습니다. 그는 큰 부상을 겪고 난 이후에 예전과 같은 용감한 플레이를 재현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미국 사회 문화에서 통찰을 길어올리는 작가 박상현의 《친애하는 슐츠 씨》중 <정신력>이라는 목차를 보면 왜 그런 것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해당 목차에서는 '시몬 바일스'라는 체조 선수를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경쟁자들을 아득히 초월하는 체조 실력을 가진 역대 최고의 선수였으나,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나는 체조선수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정신 건강을 지키겠다." 라는 사유를 밝히며 기권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녀는 연습 도중 "트위스티"를 느낀 것이 시합을 포기한 주요한 사유라고 말했는데, 트위스티란 체조 선수가 공중에 떠올라 고난도의 회전 등의 체조 동작을 할 때 자신의 위치와 체위 등을 자각하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체조 선수가 동작 도중 트위스티를 느끼면 공중에서 길을 잃고 제대로 착지할 수 없어 큰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이 발생한 이유는 신경정신학 전문가들의 견해로 두뇌에서 전전두엽의 기능이 완전히 성숙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두뇌의 결핍이 아니라 성숙이 트위스티의 발생 원인이라는 것이 의아하지만, 전전두엽이 우리 몸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전두엽은 과제와 목표를 설정하여 실행하는 인지 기능과 밀접하게 관련된 기관으로, 충동을 억제하고 위험을 예지하며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여 유연하게 대처하는 등의 고도의 지적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 부위는 뇌 부위 중 가장 늦게 발달하여 25세 무렵에 완전히 성숙하는데, 이로 인하여 높은 수준으로 발달한 시몬 바일스의 위험 예지 능력이 트위스티를 만들어 위험한 동작을 수행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자신의 신체를 지키고자 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만약 트위스티를 느꼈음에도 출전을 강행하였더라면,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착지 실수로 인해 척수 장애인이 된 김소영 선수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데릭 로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대 초반에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운동능력을 잃고 긴 슬럼프를 겪었던 것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하여 위험한 플레이를 제한하는 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데릭 로즈와 시몬 바일스는 체육인으로서의 슬럼프와 트위스티를 겪는 것이 체육인으로서의 커리어에 장애가 될 수도 있지만, 온전하고 안전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운동선수이지만, 운동선수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위험을 느끼는 문제에 관해서 말입니다. 검투사가 콜로세움에서 야수와 맞서야 했을 때 본능적으로 발생하는 두려움은 야수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야수의 공격으로 인해 영구적인 신체적 손상이 발생할 것에서 오는 무서움인지도 모릅니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2024)>에서 양동근 배우가 분한 최배달 역시 무도가로서 승부에 패배하는 것보가다, 상대의 공격으로 인해 불구가 되거나 폐인이 되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두려움과 공포는 전전두엽의 기능 발전으로 스스로를 안전하고 완전하게 보호하는 것을 추구하여 개인의 생애를 장기적으로 기획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그것이 공포와 두려움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광복 8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광복 이전의 선조들의 삶을 생각해보면, 일제 치하에서 일본인을 먹여 살릴 곡창의 노비이자 황군의 군수물자를 생산할 노예 상태에서 삶을 전망하는 것 자체가 몹시 암울했을 것 같습니다. 일제의 지배가 계속 되는 동안 처해진 모든 순간이 영겁의 고통을 마주한 것처럼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제가 제시한 체제에 순응하고 부역하는 것이 제대로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유혹을 받기도 했을 것이지만, 악독한 압제 하에 이대로는 살 수 없지 않겠는가 생각하여 독립을 꿈꾸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앞서 운동 선수의 연령이 올라가며 플레이스타일이 변모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애를 거시적으로 보면 안정과 안전을 지향하고 사회의 변화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해서 언급한 것입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 역시, 다윗의 나이가 완숙한 청년의 기운이 무르익은 시기였다면 손에 쥔 돌팔매를 포기하고 줄행랑을 쳤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의지를 형성하는 생물학적 경향성이 신체의 완전한 성숙과 함께 안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일제의 공포 정치에 순종하는 것이 개인의 오랜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지만, 우리 선조들은 대한민국의 후손들에게 자주적 미래를 선물하기 위하여 자신의 삶이 몰락할 것을 충분히 예상하였음에도 생래적 순리를 거슬러 독립운동에 나섰습니다. 그것은 같은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기도 합니다. 전위적 예술가 차학경이 남긴 저술 《딕테》의 텍스트를 살펴보겠습니다.
"1919년 3월 1일. 모든 사람들은 자신 속에 나라의 국기를 지니고 다닐 것을 알고 있다. 동시에 모든 사람들은 이 행동에 따른 처벌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행진이 시작되고, 태극기는 꺼내져, 보이고, 물결치고, 개인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부르짖는다. 이에 따른 처벌을 잘 알면서도, 앞장서서 행진하던 그녀의 부모가 쓰러졌다. 그녀의 오빠들도, 수많은 사람들이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적의 군대가 무차별하게 휘두른 칼에 찔렸다. 관순은 혁명의 지도자로 체포되고, 거기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다. 그녀는 칼로 가슴을 찔리고, 문초를 받지만 아무 이름도 밝히지 않는다. 7년의 형이 내려지고 그때에 그녀의 대답은 나라 자체가 감옥살이를 한다는 것이다."
글이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유관순은 당시 만 16세였습니다. 그녀는 마치 신에게 사명을 받은 사신처럼 40여개의 동네를 다니며 만세 운동을 조직했고, 관순의 부모 유중권, 이소제 열사는 딸이 이끄는 만세 운동의 선봉에 섰다가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며 운동을 외면할 수도 있었음에도, 자신들의 삶이 독립을 위하였음을 택하였습니다. 딸이 조직한 만세 운동이기 때문이 아니라, 조국의 독립 운동을 위해 마땅히 죽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운명이 이처럼 참혹하게 끝날 것을 알고 있었고, 딸의 운명 역시 비참해질 것을 알았습니다. 그랬음에도 독립운동을 위해 죽었습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랬습니다. 그들의 확신에 찬 죽음 위에 이 나라가 섰습니다. 대한민국은 자연인으로서 민족과 국가를 위해 자신과 가족을 버리는 불가해하며 숭고한 순교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것을 존경하고 기리를 마음으로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