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으로서의 개인적 소회는 참담한 비대칭적 권력 관계가 혈흔과 함께 관찰된다는 점입니다. 제가 경험한 사건들은 환자의 상태나 사건의 양상 모두 비슷했습니다. 고립된 제 개인적 경험 안에서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으며, 가해자는 전부 남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는 부부였으며, 피해자에게 말할 수 없이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 피의자는 투신하였습니다. 피의자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법의 심판을 회피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서 사건들 간에 흡사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반대의 경우는 없었습니다. 제한된 저의 시점 안에서는 오로지 남성 만이 살인 범행을 실행한 범인이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여성들이 모든 남성을 잠재적 폭력 행위자로 본다는 것은 남성들의 입장에서 불쾌한 일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러한 시선이 차별로 인한 실질적인 불이익으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물리력에 의한 피해 역시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심기가 불편하다는 심리적 이유만이 부스러지는 앙금처럼 남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요? 가까운 사람이 신체적·정신적 가해자로 돌변할 위협이 실질적으로 있음을 상정하고, 그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한국여성의전화의 보도에 따르면, 2024년 작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는 최소 181명, 살인미수 등을 포함하면 555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통계에는 포함하고 있지 않은 경미한 폭행 사건 역시 빈발하고 있음을 저는 출동이 안겨주는 체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위 통계와 관련한 범죄의 경우에는 교육과 경제적 수준을 따져물을 필요 없이 다양한 계층에서 범죄가 발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과 인간 관계를 맺을 때 상대 남성이 잠재적인 가해자의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고려하여 인연의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안전을 도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건에 관한 실제의 보기를 하나 들어보면, 피의 남성은 어린 아들이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아내를 발로 수회 가격하여 흉곽에 손상을 입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피의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기는 했지만, 엄마는 아이와 함께 안전하게 머물며 치료에 전념할 공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폭행에 의해 발생한 상해는 건강 보험 처리가 되지 않으므로 막대한 진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 역시 그녀의 몫이었습니다. 또한 누나가 폭행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남동생이 왔음에도, 그는 누나에게 왜 그랬냐고 반문하며 피해자를 책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피해자는 이에 대하여 자신이 맞을 짓을 하지 않았다는 피해자 다움을 주변인들에게 호소하는 것 역시 오롯이 그녀의 몫일 것입니다.
이제 열거한 것을 정리해볼 시간입니다. 남성은 일부 여성으로부터 유·무형의 폭행 가해자로 상정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여성은 성별이 다른 타인을 대할 때 방어적 태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실제적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두 개의 개별적 상황이 공론장에서 동등한 위치에서 다뤄지고 있으나, 현실의 비중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성 측이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되어 기분이 나쁘다는 것과 실질적 위협으로 인한 사회적 위축을 체감하는 것은 동일한 비중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차별이 근원적으로 발생하는 지점이 노출됩니다. 가부장제 주도의 사회에서 강자가 약자를 제압하는 방법은 비대칭적 지형 위에 서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상대의 입지를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쪽의 주장이 묵살되며 약자의 입장은 주류의 의견에 의해 기각되거나 하향 조정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여성이 느끼는 위협과 차별은 사라지지 않고 사회의 곳곳에 상존하며 불길한 긴장감으로 사회의 기저에 남아 흐르게 됩니다. 이렇게 차별과 관련한 문제가 곪으면 영국의 버밍엄 시와 같은 사회 갈등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차별은 보다 낮은 곳으로, 보다 약한 고리로 승계되는 특질이 있습니다. 버밍엄 시는 최근 남·녀 임금 차별에 대한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패소하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 돈으로 1.4조에 이르는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IT시스템 오류로 인한 복구 비용에 더해 부동산 투자 정책에 실패하며 버밍엄 시는 약 2조에 달하는 비용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에 대한 버밍엄 시 당국의 조치는 약 400여 명의 청소 노동자에 대한 연봉을 우리 돈으로 1,500만원 가량 감축하는 방안을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감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촉발된 파업은 '25년 3월에 시작되어 지금껏 해결되지 않아 영국 제2의 도시는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버밍엄 시 당국은 민간 청소 업체를 고용하여 거리의 쓰레기를 수거하며 청소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여 보전하고자 했던 금액의 7배를 지출하였습니다. 이는 차별이 인간을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기능을 마비시키며,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잔혹한 대목입니다. 문제의 시작은 남녀간의 임금 차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한 비용은 아무런 사회적 논의 없이 갑작스럽게 거리를 청소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전이되었습니다. 특정한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무례하고 무리한 대응을 만들고, 그로인해 사회는 더욱 큰 혼란을 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예는 어떨까요?
2022년 조선업의 불황을 이유로 원청으로부터 조선소 물량팀 업무를 하던 하청 조선 노동자가 임금의 약 30% 감축할 것을 강요받자,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유최안 부지부장은 이에 항의하기 위해 스스로 작업하던 배 안에 0.3평의 감옥을 용접으로 만들어 자신을 수감함으로써 점거 파업에 돌입하게 됩니다. 사측은 유 부지회장의 점거 농성으로 선박의 진수가 늦어졌다며, 유 지회장을 포함한 조합원들에게 470억의 손배해상을 청구하였습니다. 이는, 공지영 작가가 <의자놀이(2010)>에서 지적한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2009)에서 비롯된 살인적 손해배상 가압류로 인한 갈등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법 제2조, 제3조에 대한 합의를 지금껏 이끌어내지 못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사측의 비상식적이고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가압류 청구를 노동자의 합법적인 파업 행위와 같은 위치에 등치시킴으로써 노동자를 경제적 살인에 이르게 하는 짓입니다.
우리 사회 갈등은 어떤 약한 고리에서 끊어질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어디에서 발현하게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하여 어떠한 차별에도 반대하는 감정의 공동체를 이뤄야 합니다.
도덕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인간의 감성을 코끼리에, 이성을 기수에 비유했습니다. 이성이 감정을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감성이 어떤 문제에 옳고 그름을 결정하면 이성이 변호사처럼 근거가 될 적절한 논리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능적으로 감각하게 되는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올바르게 분별하고 공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의한 결정을 정의롭지 못하게 합리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배 세력이 기득권을 위해 설정한 불평등한 배경에 대하여 끊임 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소수자의 처지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는은 이미 붕괴된 하마스를 핑계 삼아 팔레스타인의 피란민들을 기아 상태에 몰아넣으며 최종적으로 가자 지구 바깥으로 내쫓아 완전한 점령을 이루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수사법은 하마스의 위협과 팔레스타인에 벌어지는 이스라엘 군의 민간인 학살을 교묘하게 같은 도마 위에 올려놓는 것입이다. 이에 대해서도 감정의 공동체로서 공분해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약자를 제거하여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원초적 유혹을 인간은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