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존자다> 삼풍백화점 편을 보고

by 소방작가

마트는 생활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공간이지만 백화점은 다릅니다. 백화점은 소비의 전당으로써 사회의 중심부에 자리를 잡아 물건을 판매하는데, 상품의 속성이 생활필수품과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백화점의 물건들을 갈망합니다. 왜 그럴까요? 대한민국 헌법 제11조에 따라 모든 이는 법 앞에 평등한 것과 별개로, 소비할 여력에 있어서는 불평등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게 백화점은 명품관에 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며, 개개인이 자본 앞의 격차가 분명함을 드러내고, 사유재산이라는 종교를 찬양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마치 청동기시대의 제사장 손에 쥐어진 청동방울과 청동거울이 그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처럼, 백화점은 사치품을 판매하며 명품을 소비할 여력이 있는 자가 이 사회의 제사장임을 선언합니다. 그러한 결과 철학자 한병철이 자신의 저작 《불안사회(2024)》에서 밝힌 바와 같이, 소비 활동은 이제 필수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소비 자체가 목적이 되며, 물건을 사는 행위를 통해 특정한 목표를 수행하고자 하는 ‘희망’이 실종되었습니다. 생활 속에 필요한 기능을 갖추거나 행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적 성격이 빈약하지만, 우리가 백화점의 물건을 구매하고자 하는 이유는 자신의 소비력을 노출하여 사회적 작위를 부여받기 위함일 것입니다. 물건을 담는 가방,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시계, 이동을 하기 위한 자동차에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들어가 있다면 곧바로 귀족의 신분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봉급생활자들은 구매할 여력이 없는 상품의 가격은 오히려 소비 사회의 귀족들에게는 이점으로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작위의 배부는 소수에게 돌아갈수록 희소하며, 그만큼 값어치가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명품 브랜드는 한정판 기획을 쉼 없이 출시하며, 패션의 첨단을 추구하는 목적과는 별개로 주기적으로 자본주의적 신분을 갱신하거나 재교부하는 절차를 시행합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지위의 상승을 체험하고자 명품을 따라 구매하는 불경한 행위를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따돌리기 위해서 한정판의 끊임없는 출시는 귀족들의 사회에서 제도적 필수성을 갖습니다.

소비는 이제 희망에 대한 목적성을 상실하고,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 삶은 소비하기 위한 여력을 축적하는 시간으로 축소되고 말았습니다. 소비를 위해서는 이윤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도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얻어서 소비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소비가 지위와 계급, 작위를 결정하므로 이윤의 추구는 삶에서 총력을 다하여 쟁취해야 할 유일의 목표가 됩니다. 때로는 부정한 방법을 활용하여 인·허가권자의 매수를 통해 안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기본 건축 자재를 누락시키는 것으로 건축 비용을 감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건물이 부실해질 수는 있으나, 안전을 희생시킨 대가로 이윤을 얻을 수 있기에 건축주와 건설사, 인·허가권자는 붕괴의 위협을 이익으로 나누며 소비에 더욱 전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경에 발생한 참사의 광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입니다.

붕괴된 백화점의 기둥 속에는 설계 도면에서 계획되어 있는 철근의 양의 절반밖에 배근하지 않았고, 기둥의 두께 역시 80cm에서 60cm로 줄어들었습니다. 콘크리트의 강도도 설계 기준보다 낮았습니다. 누군가 부정한 축재를 통해 소비의 축제를 벌이기 위해서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건물을 올린 것이입니다. 허약한 골조는 기둥과 바닥이 시루떡처럼 층층이, 연쇄적으로 붕괴하며 생존자가 몸을 보호할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펜케이크형 붕괴 양상을 보인 참사 현장에서 502명이 사망하고 31명이 실종되었는데, 사지가 온전한 시신을 수습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참혹한 참사 현장에도 민간 자원봉사자로 위장한 도둑들은 자신의 신분을 귀하게 높여줄 귀중품을 훔치다가 검거되었습니다. 백화점이 붕괴할 것을 4시간 전에 예견한 고위 임원들은 임직원과 고객들을 충분히 대피시킬 시간이 있었음에도 영업을 강행하는 결정을 내려 예견된 참변을 막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은 생존자에 대한 수색이 종료되고 난지 쓰레기장에서 잔해물을 뒤질 때, 삼풍백화점 회장 이준은 말했습니다. “무너진다는 것은 손님들에게 피해도 가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거야.” 그가 언급한 피해는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백화점이 무너져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보다, 자신이 불순하게 지은 소비의 왕국이 무너진 것이 안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고작 7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는데,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관련하여 가장 높은 형량을 받은 것입니다. 삼풍백화점의 회장이 판사로부터 선고받은 형량은 참사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아끼던 삶을 잃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드러내는 것은 돈이 사람 위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가족들은 시간이 지나도 상실의 고통이 아물지 않음을 호소했습니다. 지하층에 근무하여 펜케이크식 붕괴 양상을 피할 수 있었던 소수의 생존자들은 주변인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완전 복권 맞았네, 얼마 받았어?”

한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고 싶다면 상실을 경험한 이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 받았어?” 이것은 인간으로서 발화할 수 없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참사가 반복될 때마다 쓰이는 말입니다. 심지어 언론들도 저잣거리의 저열한 말을 받아서 생존자 및 유가족이 받게 될 보상금을 보도합니다. 그 속에서 참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보상금의 액수에 가려져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보상금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으므로,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식의, 형제의, 친지의, 연인의 피가 묻은 돈을 어디에다 쓸 생각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시샘하면서 말입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나는 생존자다> 삼풍백화점 편에 등장하는 생존자들은 본래 인터뷰 요청을 받고 이에 응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잊고 똑같은 참사를 반복하는 것 같아서 출연하게 되었다고 그들은 심경을 밝힙니다. 그렇다면 생존자들의 절규처럼 정녕 우리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잊은 것일까요?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25년 8월 17일, <동아일보>의 이상훈 정책사회부장의 칼럼 “’최저가 공화국‘ 산재는 필연이다”를 보겠습니다.

“국토안전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 사고가 난 공공공사 현장 95곳 중 74곳(78%)이 낙찰률 90% 미만의 저가 낙찰 공사 현장이었다. 공사비를 지나치게 낮추면 결국 어디에선가 무리해 아끼게 된다. 보통은 안전이 희생양이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싸게 계약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다. 값이 비싸면 감사 대상이 되지만, 사고는 운 좋으면 피할 수 있고 설사 나더라도 건설사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

여전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안전 기준을 준수하거나 상회하기 위해 충분한 투자를 하겠다는 합의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사람 목숨을 최저가로 평가하여 남긴 돈으로 도대체 어디에서 소비를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넷플릭스 다큐 <나는 생존자다>가 주는 함의가 큽니다. 뒤늦었지만,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의 경험을 고백한 생존자들과 참사로 인해 영면에 든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우리 사회는 안전을 비용으로 여기고, 부실과 타협하는 세상을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소비 그 너머에 있는 희망에 닿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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