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가 존재하는 것에 대한 역설

by 소방작가

서울시 관내에 소재한 학교 여러 군데에 일시에 같은 내용의 팩스가 수신되었습니다. 팩스에는 학교에 인명 살상을 위한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경고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전 중에 여러 학교에 출동하여 만일의 사태를 점검하고 대비하였습니다. 경찰과 군에서 파견된 폭발물 처리반은 이미 여러 곳을 점검하고 온 모양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하였습니다. 학교 교무실에는 테러 예비 음모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회의를 통해 최대한 빠르고 안전한 결과를 도출해야만 했습니다. 결단은 금방 내려졌습니다. 학급을 순차적으로 소개하고, 위협이 될 만한 물질의 설치 여부를 탐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즉시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하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자유시간을 얻게 된 학생들은 군·경이 참여한 교무회의 결과를 전해 듣고 환호성을 질렀고, 그 소리를 소방대원들이 탑승한 소방차 안에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테러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스릴러 영화처럼 긴박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화기와 폭발물의 개인 소유가 불법이므로, 팩스로 전송된 테러 예고가 허위에 가깝다는 것을 출동한 공권력과 테러를 피해 하교하는 학생들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폭발은 설치된 화약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화성 물질에 의해서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학생들이 귀가하고 난 빈 교실에 조사관이 파견되어 샅샅이 수색을 진행하였습니다. 다행하게도 수색 결과 팩스가 예고했던 것 같은 위험을 발견할 수 없었고, 현장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어 출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철수가 결정되었습니다. 한바탕 소동이 있었던 날, 점심 시간에 맞춰 귀소하였는데 소방서 식당에서는 미국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 소재한 한 가톨릭 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에 관한 뉴스가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새 학기를 맞이하여 기쁜 마음으로 예배당에 모인 학생 중 8세와 10세 어린이는 총격으로 사망하였고, 14명의 어린이는 피격으로 인하여 부상을 입었다고 전해졌습니다. 괴한은 자동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학교에 침입하였는데, 어린이들이 모여있는 예배당 창문 안으로 총구를 들이밀고 범행을 실행한 뒤에 교회 뒤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테러 예비 음모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던 조금 전 상황과 미국은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은 이처럼 총기를 사용한 약자 혐오 범죄가 꾸준히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총기를 규제하는 합의를 만들지 못하는 정치의 실패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왜 실패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총기를 판매해서 막대한 이익을 얻는 집단이 총기 협회를 내세워 정치권에 전방위적인 압박과 회유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소방관들은 휴전 중인 국가의 공무원임에도 총상이나 폭격으로 인한 손상을 입은 환자에 대한 축적된 노하우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전쟁의 위협과 안전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뜻이고, 스스로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무장하지 않아도 안전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위급상황 발생 시에 공권력이 수 분 내에 출동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시나리오를 누구나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시리아나 우크라이나, 가자 시티의 사람들처럼 방탄복을 입거나 철모를 쓰고 다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스럽지 않은 일입니다. 소방관들 역시 총탄에 피격된 환자를 처치하는 방법을 우선하여 익히는 것 보다, 다양한 기전의 내·외과적 질환에 대처하는 것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공격받아 죽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수명을 누릴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대중문화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겠습니다. 올해 출범한 국민참여정부의 현안이 자정 능력을 상실한 검찰을 개혁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의 검사의 역할은 사회의 거악을 공권력으로 포위함으로써 불의를 척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거대한 팔뚝을 지닌 경찰관이 범죄자를 소탕하는 모습을 통쾌하게 그립니다.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양분되어 사법 체계를 비롯한 공권력에 대한 의심과 견제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과 별개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처분은 반드시 헌법에 의해 승인된 시스템에 따라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문화는 우리와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습니다.


미국 영화에서는 코믹스가 주도하는 슈퍼히어로가 자경단 역할을 하며 도시의 평화를 수호합니다. 그들이 행사하는 폭력은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이뤄집니다. 오로지 악을 처단한다는 행위의 기준 역시 히어로 자신의 판단과 선호에 따릅니다. 정의로운 자경단이 있었으면 하는 만화적 판타지는 드넓은 국토에 공권력이 평등하게 접근하기 어려워 생기는 맹점을 무장을 통해 해결하기를 택한 미국 사회의 불안이 깊게 투영되어 있습니다. 자위를 위해 총기를 손에 쥠으로써 개인은 원치 않게 이미 폭력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미국 사람들은 자신이 몸담은 공포의 세계를 일시적으로 표백하기 위한 장치로서 슈퍼히어로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화 상품 속 슈퍼히어로는 공익의 화신처럼 그려지지만, 현실 속에 그러한 히어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사사로운 감정과 잘못된 판단에 의하여 인지 편향을 저지를 가능성이 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편이라고 좋아했던 우군은 기존의 포지션과는 정반대로 빌런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언제든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한 힘을 지닌 세력이 자신이 편애하는 소수의 보호자로서 배타적 태도를 보일 때를 대비하여 시민들은 지금의 무장보다 더 높은 수준의 무력을 개인적으로 예비하고 싶어 할 유인을 가지게 됩니다. 권총보다는 기관총을 소유하는 편이 더욱 마음이 놓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슈퍼히어로가 필요한 사회는 역설적으로 개인의 옷장에 기관총을 생필품의 일부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곳이 되어버립니다.


몇 년 전에 미국 서부에 방문하여 대형 테마파크를 여행하였습니다. 놀이공원 내부에는 캡틴 아메리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아이언맨 등의 슈퍼히어로를 원작으로 하는 놀이기구가 설치되어 있었음에도 히어로들은 관람객들을 지켜주지 못하였고, 기관총을 무장한 경비요원들이 입구마다 서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환상을 판매하는 테마파크에서 언뜻 느껴지는 마리화나 냄새와 화장실에 사용한 주사기를 수거하는 시설을 보면, 미국이 세상 사람들이 회자하는 것과는 달리 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리에 위치한 학교에는 출입을 엄금한다는 팻말과 함께 높은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LA의 부촌 베벌리 힐즈 역시 상상하던 것과는 달리 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히려 서울에 위치한 백화점이 더욱 쾌적하고 안전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불안은 무장할 수 있는 자유 때문에 벌어지는 개인 군비의 상승 작용 때문에 야기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학교에 팩스로 테러를 예고하는 사람의 손에 무기로 활용할 만한 변변한 도구가 없다는 것이 한국의 다행한 현실이지만, 미국에서는 기관총과 수류탄을 마트에서 판매하므로 안심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불특정한 사람이 무장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가 테러 행위를 벌일 수도 있다는 경계심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의 통합이 어려운 것입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공권력이 취약한 지점을 파고들어 자기방어를 할 능력이 부족한 상대에 대한 테러를 자행할 수 있고, 테러의 수단이 고도의 살상 무기로 이뤄지니 피해는 치명적입니다. 2017년에 개봉한 제시카 차스테인 주연의 영화 <미스 슬로운>은 압도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정치 컨설턴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전략을 통해 총기 규제를 위한 정치 캠페인에 성공한다는 내용을 그린 작품인데, 이것은 할리우드가 자국의 안전 결핍을 슈퍼히어로의 등장으로 보완하려고 하는 코믹스식 해법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복잡한 문제를 히어로의 역량으로 단순하게 절단하여 모순점을 항구적으로 해결했다고 선언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실제하는 세상에서 슈퍼히어로의 등장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는 슈퍼히어로의 부재로 인해 재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블은 어벤져스 시리즈를 멋지게 마무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멀티버스 체제를 도입하여 은퇴한 히어로들을 재등장 시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미국에서 히어로는 국가의 내재적 모순으로 인하여 결코 은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어로에 대한 열광하는 이유를 가만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어쩌면 복잡한 문제를 간단하게 종결짓고 싶어하는 편의적 사고가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방차를 조작하여 빠져나오는 길에 아이들은 소방차를 향해 인사를 하거나 경례를 했습니다. 저도 차 안에서 학생들에게 답례를 했습니다. 슈퍼히어로가 필요 없는, 그래서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일상의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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