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이 되기 전까지 내과와 외과의 구분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소방서에 들어와서 구급 관련 교육을 받게 된 후에 인체는 음식물을 입으로 섭취하며, 식도와 위를 지나 소장을 거쳐 영양소를 흡수하고 대장에서 수분을 제외한 남은 대사 물질을 배설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상 소화를 하는 과정은 피부와 다름 없이 외부에 있는 통로를 거쳐 대사하는 것이므로 관련한 몸의 기전을 살피는 것은 외과, 몸안에 숨겨진 장기의 기전을 살피는 것은 내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의학과부교수인 남궁인 작가가 펴낸 책 《몸, 내안의 우주(2025)》의 첫 목차는 소화에 관한 것인데, 소화라는 과정은 몸 외부의 소화기관이 음식 잘게 으깨어 위벽과 소장의 융털에 얇게 발라 흡수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작가는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세상 바깥의 것을 빨아들여 소유하게 만드는 흡수는 몸의 내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결핍을 해소하는 방법은 외부에서 받아들인 물질을 알맞게 변환하여 호흡기관, 소화기관, 혈관, 림프관 등의 관(管)을 통해 순환시켜 그것이 간절히 필요한 곳에 공급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몸은 빨대의 형태와 닮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채워도 충족할 수 없는 몸과 영혼의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방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몸에 어지럽게 얽혀있는 대롱 끝에는 반드시 공급해야 할 물질이 있습니다. 물질을 필요로 하는 곳에 알맞게 공급해야만 적당한 혈압과 맥박, 호흡수와 산소포화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생각 역시 우리의 몸을 관통합니다. 특정한 사상과 종교가 지나간 몸은 필연적으로 이전의 삶과는 다른 형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공급이 있고, 서로가 맞닿기 위해서 반드시 통로가 만들어집니다. 신경계가 시냅스라는 길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것처럼, 길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내려보내는 곳과 받아들이는 곳이 즉자적으로 합의하여 탄생하며, 그렇게 필요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유지됩니다. 길의 존재는 그래서 늘 비워져있으며 같은 이유로 가득 찰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언젠가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으로 반드시 전달되게 되어있다는 점입니다.
25년 8월, 강릉은 평년 강수량의 7분의 1인 41.1mm밖에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이례적으로 가뭄으로 인한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며 강릉에 물을 공급하라고 소방관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물탱크가 탑재된 소방차량이 강릉으로 집결했습니다. 그 양상은 상처가 난 부위를 복구하기 위해 체액이 몰리며 부어오르는 것 같은 양태와 비슷했습니다. 태백산맥의 영향으로 전통적으로 산지의 기울기가 완만한 영서 지방은 물을 가두어 다스리는 게 용이한 반면, 영동 지방은 기울기가 가파르게 형성되어 있어 물을 저장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오늘 받은 지령은 동이 트기 전 새벽 6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해가 질 때까지 강원 영서 지방의 물을 강릉으로 운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임무는 평창 진부 정수장에 저장되어 있는 물을 충전받아 강릉에 있는 홍제 정수장에 방수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창과 강릉 사이를 횡단하기 위해서는 대관령을 넘어야 했습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고도에 의한 기압차에 의해 귀가 먹먹해졌습니다. 영서 지방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습윤한 대기는 대관령을 넘지 못하였고, 터널을 지나 평창에서 강릉으로 넘어갈 때마다 기후가 상반된 나라의 국경을 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동원된 물탱크차는 물 부족 사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과밀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땅을 밀도 높게 사용하여 도로의 폭이 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수도관이 잘 연결되어 있는 서울은 소방 용수가 부족할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리 곳곳에 소화전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상수도가 조밀하게 연결되지 않은 지방은 소방용수를 최대한 많이 공급하기 위해서 12,000L의 물탱크차를 사용합니다. 제가 운전하는 물탱크차는 4,500L밖에 충수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창에서 받은 물을 강릉에 쏟아낼 때마다 왠지 타 시도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제가 지정 받은 충수 지점은 평창에 있는 진부 정수장이었지만, 다른 차량들은 강릉 안인부두에서 물을 충전하였습니다.
안인부두에서는 해군 군함과 해양경찰 경비정이 강원도 동해시에서 물을 충수하여 소방차량에 중계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각기 다른 곳에서 충수한 물을 강릉 홍제 정수장에 쏟아붇는 것이 공통된 목표였는데, 물을 정수장에 흘려보낼 때 펌프의 RPM을 올려 물줄기를 강하게 내뿜으면 물탱크 속에 고인 물은 허무하고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렇게 물탱크에 채운 물이 모두 빠져나가면 왕복 100km를 달려 물을 다시 채우고 길어내야 했습니다. 정수장의 도로는 차량 진입로가 좁아 지자체의 공무원들이 종일토록 동원되어 경광봉을 흔들어 차량의 진출입을 유도했습니다. 물을 운반하며 강릉 시내에 나붙은 현수막을 여러개 보았는데, 시민들에게 지정된 장소에서 식수를 공급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종일 쉬지 않고 물을 운반했음에도, 평창과 강릉을 네 번밖에 오가지 못하였습니다. 평상시 1인당 생활용수 사용량을 보수적으로 250L라고 가정하면, 4,500L 용량의 물탱크차가 한 번 오갈 때마다 18명의 시민들이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하루종일 노동하여 고작 72명분의 생활용수밖에 공급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저는 수 많은 소방차량 중 한 대를 운행했을 뿐이며, 산림청과 소방청의 헬리콥터, 민간 살수차, 군의 물탱크 차량에서도 물을 공급했을테지만 지금 하고 있는 정책이 가뭄을 역전하는 게임체인저는 커녕 현상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언 발에 오줌을 누면 잠깐은 발이 따뜻해질 수 있으니 다행인 셈이라고 해야할까요. 역시 국가소방동원령이 발령된 이후에도 강릉 시민들의 식수원인 오봉 저수지의 수량은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현재 영서 지방에 설치된 도암댐에서 물을 공급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91년도 유역변경식 수력 발전을 위해 조성된 도암댐은 고랭지 농업 경작지의 비료와 퇴비 및 축산 폐기물의 유입으로 오염 논란이 있어 01년부터 강릉으로 발전 방류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최근 가뭄을 해소할 방법이 없어 평창과 강릉을 연결하는 도수관로를 정비하여 도암댐의 물을 홍제 정수장에 공급받아 정수 처리하여 시민들에게 공급하는 방안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방법 만으로는 가뭄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재 강릉시는 상수도 공급의 75%를 제한하여 시민들에게 급수하고 있지만, 절약이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진즉 원수 공급의 다변화를 통해 기후 위기에 대처할 방안을 준비하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가파른 능선을 올라가고 내려올 때마다 타이어와 브레이크 드럼에서 갈리며 타는 냄새가 났습니다. 물을 운반하는 방법은 인력과 차량의 내구도를 고려하지 않은 듯 했습니다. 이와 같은 방책이 지속가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2007)》에서 인조는 청나라 대군의 침입에 항전한 끝에 남한산성에 다다릅니다. 그곳에서 조정과 백생들은 청군에 의해 포위되어 궁핍한 생활을 하던 중, 군마 일흔 필을 운용하기 위해 백성들의 초가지붕을 걷고 가마니를 풀어 말먹이 풀로 사용합니다. 가마니는 산성에서 보초를 서던 병졸들이 근무를 설 때 바닥의 냉기를 막아주는 용도로 사용하였으나, 군마를 활용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요청과 임금의 재가에 의해 병졸들은 추위를 견디게 도와준 가마니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마니를 풀어 말죽을 쑤어 군마를 먹였음에도 말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굶어 죽어버리고, 말의 사체는 얼었다 녹았다 반복한 끝에 잡아먹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맙니다. 가마니를 깔개삼아 산성의 추위를 견디던 병졸들은 결국 얼어죽었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더니 몸살이 난 것처럼 몹시 아팠습니다. 제가 한 노동은 소방호스 안에 찼던 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공허했고, 아무런 성과가 남지 않았습니다. 강릉 시장님은 하느님이 비를 내려주실거라고 하셨는데, 비가 오기는 했지만 가뭄을 해갈하는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내일 교대를 하면 저를 대신하여 지원된 소방관이 대관령을 오가며 말먹이 풀로 죽을 쑤듯이 물을 운반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강릉이 생기를 되찾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도할 필요 없이 진즉에 준비를 했더라면 하는 기운 빠지는 생각만이 맴도는 밤입니다. 길을 통해 간절히 바라는 곳에 물을 공급했지만, 이게 상처를 낫게 하는 방법이 아님은 명확합니다. 다른 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길을 하루빨리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