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에세이
리스본행 야간열차.
내가 생각을 적어낼 수 있을까, 너무나도 많은 생각과 의문과 고민과 사유를 끊임없이 던져준 혼란과 일탈, 자유와 방황, 그러면서도 내 발 밑을 끊임없이 보게되는, 마치 광장에 서서 수 많은 인파 속에 떠 밀려가며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헷갈리다가 결국에는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보게되는 그러한 소설.
나로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라는 것은 무엇일까.
오롯이 나로서 산다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온전히 내가 원하는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그레고리우스는 우연히 아마데우 프라두라는 의사의 글이 묶인 책을 보고 그 사람의 삶을 추적해가며 자기 자신을 탐구해나갑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 그레고리우스인지 아마데우 프라두인지는 읽으면 읽을수록 알 수 없어집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우리와 같은 독자이고, 아마데우 프라두가 주인공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지금 나를 찾는 주체는 그레고리우스이고, 이 소설을 읽는 나 자신이기도 합니다.
아마데우 프라두는 끊임없이, 집요하게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답게 살고자 했으나, 아버지의 기대로 자신이 원하던 사제가 아닌 의사가 되고, 의사이기에 악인을 모른척 하지 못하고 살려냅니다. 그 결과로 대중의 존경을 잃게 되죠. 그는 존엄을 지켰지만 타인의 법정에서 진 것입니다.
왜 아마데우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의사라는 삶을 벗어던지고 사제가 되지 않았던 걸까요. 왜 아마데우는 가족들이 자신을 괴물처럼 보게 된 의사라는 직업을 죽는 날까지 버리지 못했을까요.
영혼은 사실이 있는 장소일까요, 아니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이야기의 거짓 그림자에 불과할까요.
사람은 혼자 존재할 수 없습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 또한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로지 나 자신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데우 역시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의사로서의 자신 또한 본인이었기에 벗어던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고 싶었지만, 타인과 살아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타인의 법정에서 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렇다면 영혼은 온전한 내가 있는 장소가 아닌, 누군가가 생각하는 그 무엇이 존재하는 장소인 것은 아닐까요.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어떤 존재일까요.
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품위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어가는 듯 합니다. 품위와 부끄러움. '나'라는 것을 지키는 것. 타인의 법정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것.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 내면으로의 시선과 외부로의 시선이 교차되는 그 지점. 흔들리는 그릇 안에 든 구슬처럼 끊임없이 어느 지점을 찾아 흔들리는 그것이 인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