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의 효과

일상 에세이

by Pink Brown

한 땀 한 땀 떠 나갑니다. 손가락에 지병?이 생기고, 팔이 아프고, 장시간 한 자세로 앉아있으니 운동량도 줄어듭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한 땀 한 땀 떠 나갑니다. (왜냐하면 저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제일 좋거든요.) 한 줄이 지나가면 무늬가 생기고, 또 한 줄이 지나가면 모양이 나옵니다. 전혀 늘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어느새 편물이 생겨나 있습니다.


올해 정확하게 2월 1일부터 시작한 손뜨개입니다. 간단하게 하고 싶어서 코바늘로 코스터 뜨기부터 시작했지만, 여름이 되면서 가방 뜨기로 발전하더니, 역시 겨울이 오고 카디건이 뜨고 싶어지고, 결국 대바늘로 넘어갔습니다. (수반되는 쇼핑은 금융 치료에 아주 좋습니다.) 대바늘 뜨기는 대학생 시절에 잠시 하다가 어느새 스르륵 그만두었는데, 거의 20년 만에 다시 하다 보니 손놀림이 어색하기 그지없습니다. 신기한 것은 손가락이 뜨는 법을 대충 기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역시 몸으로 하는 기억은 초장기적인 것인가 봅니다. 그래서 몸으로 뭔가 나쁜 것 같은 행동은 하면 안 될 거 같아요. 그것도 초장기적으로 기억될 거 같아서요. 하하, 별 걱정을 다하네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멀리서 보면 색도 곱고 편물도 괜찮아 보이지만, 가까이서 뜯어보면 무늬 크기도 서로 다르고, 숭덩숭덩 구멍도 생겨있고, 심지어 코가 빠져서 덜렁덜렁 매달려 있습니다. 빠진 코는 대에에에충 수습했지만, 나머지는 풀어서 다시 뜨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제 손뜨개 속도가 아직 너무 느립니다. 풀었다 다시 현재 상태까지 오려면 얼마나 걸릴지 생각해 보면 아찔합니다. 20년 만의 첫 대바늘 카디건이니만큼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망쳐도 된다!) 부담 없이 뜨고 있습니다. 근데 실을 잘못 선택했어요. 색이 너무 예쁘거든요. 잠시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그저 잘 뜰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신나서 실을 골라버린 저를 살짝 원망해 봅니다. 하지만 색이 이뻐야 계속 뜰 수 있습니다. 못생긴 색은 하다가 그 색에 질려서 그만둬버리거든요. 인생 만사 좋기만 한 것은 없나 봅니다. 그래야 공평한 것이긴 하니까요.


저는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뜹니다.

모든 '뜨기'에는 나름의 최선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도들이 모인 결과물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여기저기 실수가 잔뜩 묻어있지요. 하지만 실수를 발견하고 나서 아, 망했어!라고 포기하고 실을 잘라버리면 제 뜨개 실력은 거기에서 멈춰버립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끝까지 뜹니다. 그 사이에 기본 실력이 쌓이고, 다음에는 더 잘 뜨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 '아, 즐거운 시간이었다'라는 생각과 함께 쓰레기봉투로 들어가게 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제 뜨개의 목적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뜨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실은 저렴이로 구입!했습니다만 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것이 함정이군요.....)


편물이 놓인 다리가 포근합니다. 손에 잡히는 실이 푹신푹신합니다. 뜨개 하나에만 집중하는 그 시간이 좋습니다. 내일은 모르겠습니다. 내년도 모르겠어요. 어차피 생각해 봤자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을 즐깁니다. 실수가 있더라도, 모양이 이상하더라도, 나는 이 시간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목표는 예쁜 카디건이 아니라, 이 시간을 즐기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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