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편지 - 25년 12월
옛날 옛적에 한국의 겨울은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본 기억이 나는군요. 일주일에 3일은 춥고, 4일은 온화하다는 뜻인데, 어릴 적 희미한 기억으로도 대충 맞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새로 등장한 말이 있습니다. 삼한사미. 일주일에 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의미입니다. 온화한 날은 주로 북풍의 차가움을 서풍의 온화함이 막아주기 때문에 생겨나는데, 그 온화한 공기를 따라 서쪽에 있는 이웃나라의 공기도 같이 날아옵니다. 그곳에는 아직도 시골에 가면 석탄과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는 지역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겨울이 되어 난방 시즌이 되면 공기가 안 좋아진다고 하더군요. 코로나를 거치면서 산둥 지방의 수많은 공장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는 많이 줄었지만, 난방 시즌에 연료를 쓰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그렇다고 그 넓은 땅이 순식간에 천연가스 또는 등유식 난방으로 바뀌기도 어렵겠지요) 삼한사미는 아니더라도 삼한이온이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뭔가 복잡해지네요...)
아이들이 어릴 때, 그야말로 초미세먼지가 거의 일 년 내내 나쁨에서 심각 수준인 시절에는 공기질에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썼었습니다. 폐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그랬던 듯합니다. 담배 연기도 피해 다니는데, 초미세먼지는 피할 수도 없고 참으로 곤란했었지요.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고 코로나가 퍼지면서 이상하게 미세먼지 상황이 점점 나아지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초미세먼지가 좀 나쁜 날이 되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수준까지 온 것 같아요. (빈도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일 겁니다) 신경 쓰는 것이 하나 줄어든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지구의 자전 방향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씁쓸함이 몰려옵니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내가 견뎌내야 하는 이상한 상황.
살면서 내 잘못이 아닌데, 내가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생겨납니다. 특히 회사원들에게는 어떤 직무를 맡느냐에 따라 그 정도가 가감이 되곤 하지요. 내 잘못이 아닌데, 여기저기에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많이 반복되면 어느 날 문득 인생이 낯설어집니다. 내가 왜 사과를 하고 있을까. 저 사람은 왜 나에게 사과를 받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 알 텐데. (바보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거기서 끝이 나니까요. 아니라고 설득하려 해 봐도 결론은 사과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소모적이기만 한 중간 과정을 건너뛰려면 빠른 사과가 답입니다.
말해봤자 소용없는 것들은 일상생활에도 상존합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죠. 말해봤자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저 서로의 기분만 나빠질 뿐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삼킵니다. 그것이 마음속에 있는 나쁜 생각 항아리에 담깁니다. 아, 가득 차버려서 뚜껑이 들썩이는군요. 어디서 무거운 돌덩이라도 구해 와야겠습니다. 아니면 또 다른 항아리를 이번에는 무척 커다란 것으로 구해와서 옆에 새로 묻어야 할까요? 말처럼 쉬우면 인생도 쉬울 겁니다. 그게 어렵기 때문에 인생이 어려운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은 그래도 공기나 나쁘지 않습니다. 앉아도 허리가 아프고 서 있어도 허리가 아픈 요즘, 걸어야겠습니다. 걷다 보면 허리도 덜 아프고, 생각도 바람에 조금은 날아갑니다. (항아리 뚜껑을 들썩이지 않게 하려면 조금이라도 날려줘야죠.) 귀찮음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걸으면 좋은 점은 여러모로 많다는 생각을 하며 움직이려 애씁니다.
오늘도 많이 걷는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