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착함

by 눈물과 미소



서로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한이 있더라도
네가 참거라.
그러다 보면 좋은 날도 오는 법이다.



딸을 생각하는 다정함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사실을, 경희는 알고 있었다.


이혼 시기를 늦추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어머니의 제안이 고통스러운 것은, 유보된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반복하여 제기하던 의구심을 들킨 순간의 당혹감, 그래, 그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딸의 고통에 누구보다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경희는 세상의 모든 폭력이 작동되는 방식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했다.


첫째,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의도하거나 원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여럿일 수도 있다.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둘째,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 다시 한번,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은 없을 수 있다.

셋째, ‘사소한’ 실수를 한 사람은 책임을 느끼지 못하거나 곧 벗어난다.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넷째, 오죽하면 그랬을까, 누군가는 이해한다. 너도 잘못한 게 있겠지, 누군가는 질책한다. 너만 참으면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어, 누군가는 달랜다.

다섯째, 고통받는 자는 홀로 남겨진다. 그 누군가가, 홀로 남은 나일 수도 있다.


왜 여자들만 설거지를 하느냐고 함께 울분을 터뜨렸던, 삼수 끝에 S대 수의학과에 진학한 사촌 동생 미혜가 어느 날 다소곳한 색시가 되어 아들을 낳는 것을 보고 경희는 놀랐다.

대학 시절 관찰한 페미니스트 학우들의 과격하고 드센 모습보다는 ‘약하고 착한’ 모습을 선택하기로 했던 경희였다.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선택받고자’ 현모양처의 면모를 어필하느라 애쓰던 그녀가 이제 와 미혜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것은 대리만족을 느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일까, 자신보다 잘난 사촌 동생의 위선에 대한 질투와 거부감일까, 아니면 자기 객관화의 결과 알아차리게 된, 자신을 향한 묵은 분노였을까.



남은 빵을 모두 살 테니 할인해 주세요.



타인에게 거침없이 요구할 수 있는 어머니의 수완을 경희는 아직 익히지 못했다.

기어이 투 플러스 원의 가격을 치르고 나오는 길, 빵을 사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가던 다른 모녀와 열린 문 사이로 보이던 빵집 사장님의 표정을 몇 번이고 돌아보는 경희의 손을 잡아끌며 어머니는 말했다.

'내가 저 집 빵을 많이 팔아줘서 괜찮다. 너무 착하면 너만 마음이 아프단다.'


착할 것을 강요받아 착하지 않지만 착해졌으며, 딸에게도 착할 것을 강요한 어머니는 이제 착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덜 착해지면 폭력에서 자유하게 되는 걸까.


적어도 덜 아파질 수는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