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씨란? 서예란?
오늘도 김유신의 애마처럼 나의 발걸음은 제비 2리 봉숭아학당으로 이어진다. 그 누가 말릴쏘냐? 정처있이 걷는 이 발길을!
강릉에서 붓글씨를 새로 접한 지도 벌써 1년 반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있다. 누군가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거기에 미치기에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 언감생심이란 말이다. 초보자가 감히 만 시간에 쉽사리 도전할 수 있을까? 다행히 그런 자가 있다면, 그는 그야말로 붓을 타고 날아오르는 서예가가 될 것이다.
모처럼만에 제비마을 촌로들을 서예 수업시간을 빌려 다시 만나 뵙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다.
스승님 서예 갤러리 상인방(lintel)에는 액자가 마치 현판처럼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나름 정성을 들여 쓴다고 쓴 글씨일 텐데도, 지긋이 쳐다보면 영 글씨의 맛이 살아나지를 않는다. 이런 경우를 두고 글씨가 무미건조하다고 하는가 봅니다.
글씨가 변화와 굴곡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규격과 틀에만 끼워 맞추려는 듯 반듯하기만 하여 마치 관 속에 들어가 있는 것과도 같은 느낌만이 액자 주변을 싸하니 감돈다. 날씨도 추운데, 글씨에서 차디찬 냉기마저 연거푸 뿜어져 나온다.
사진 1. 갤러리 상인방에 걸쳐져 있는 현판 액자
여러분도 그런 느낌이 드시는지요? 저와 같은 느낌이 드신다면, 글씨를 보시고 서예라는 예술 분야를 찬찬히 음미하며 감상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확언합니다.
아래 사진은 제가 1999년도에 결혼식을 올릴 때, 결혼 생활을 위한 덕담을 써주신 고향 전주 깨복쟁이 친구의 아버지이자 전북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셨던 분의 휘호이다.
독자 여러분들, 어떠신지요? 덕담 글씨에서도 맛이 제대로 느껴지시지요? 마치 감칠맛이 나는 쇠고기 곰국의 진국처럼 말입니다. 서서히 그러나 오감으로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로 우러나는 맛.
이런 귀하디 귀한 글씨를 제대로 보관하지도 못하고, 이제야 겨우 진가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자 서글픈 현실이지요.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보존처리를 해서 때때로 감상해야겠습니다.
사진 2. 전북대 철학과 교수님의 결혼식 기념 휘호
하여간, 현판 액자 글씨는 붓대를 온몸으로 감싸 쥐고서, 있는 힘과 없는 힘을 모두 다 쥐어짜서 간신히 써낸 글씨 같기만 합니다. 소위 말해서 용쓴다고들 하지요.
결혼 기념 덕담용 휘호는 글씨가 단아할 뿐만 아니라, 덕담을 전해주고자 하는 분의 품격과 사랑이 담뿍 담겨 있는 게 마치 따사로운 저녁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만끽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두 분을 비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서예의 맛을 보여드리려고 하다 보니 조금은 과장되고 지나친 측면이 있다면 혜량해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반면에, 스승님의 글씨는 붓대가 아니라 붓 끝에 온 힘이 응집되어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드러내기도 하고, 힘을 뺀 상태로 미끄러져 가기도 하는 리듬과 강약이 어우러져 보기에도 매우 아름답다. 이는 서(書)를 예(藝)의 수준으로 한 차원 더 높여줌과 동시에 예술의 단계로까지 승화시켜 주는 셈이다.
현판 액자 글씨는 나와 씨름 한 판 하자고 무작정 냅다 덤비는 차원이고, 스승님 글씨는 저자와 팔씨름 한 판 할까 하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랑을 담아 한바탕 놀아보려고 하는 모양새와도 같다.
애독자 여러분들이 서예에 관한 제 글을 읽고 감사하게도 라이킷을 성심성의껏 눌러 주시고 계신데 과연, 서예를 어떻게 느끼고 계실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 나름 몇 자 적어 봅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감사합니다.
곧 있을 엄청난 태풍!
아직 기억하고 계시나 모르겠습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에서 물러가면 곧 그 엄청난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날 겁니다.
기대하고 계시고요.
그때까지 건강하십시요.
입춘 다음 날 저녁,
강릉 사무실에서
백만 독자의 꿈만 꾸는 저자 총총.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시 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