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찻잔 속의 태풍이려나?
강릉원주대(올해 강원대로 개명됨) 평생교육원 야간 서예반에서 먹물 좀 들이마시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흘러 3년 차가 되어 간다.
옛 어르신들이 즐겨 쓰던 말씀으로 '세월이 참 유수 같다'라는 말씀이 찐으로 실감 나는 요즈음이다.
그건 그렇고, 일전에 복선으로 깔아 놓고서 스리슬쩍 언급한 찻잔 속의 태풍이 드디어 스멀스멀 몰려오고 있다. 대차게 휘몰아치기 시작할 바람 속에서 비 냄새가 난다면 과장일까? 아니면, 초절정 감각에서 나오는 예민함일까?
사부님께서 은근히 넛지로 강요 아니 강권하듯 국전에 참가하라고 한 지도 벌써 2개월이 지났다.
그간의 서예 실력에 비해 국전에 참여한다는 것이 과유불급은 아닌지에 대한 나름 적지 않은 고민과 갈등은 이제 과감하게 뒤로 하기로 한다.
스승님께서 "해 보는 거야, 그게 젊음인 거지!"라고 슬며시 꼬시는 독촉 아닌 꾐에 풍덩 빠져버렸다.
이내 덫에 걸려든 애꿎은 짐승의 단말마(?) 소리만 허공을 맴돈다.
'음, 다들 해는 매일 보는 데, 나까지 해를 봐야 하나?' 속으로는 원망 한 스푼을 슬그머니 투하하고서 조그맣게 모기 소리로 투덜대어 본다.
마치 강아지가 자기 스스로 받은 스트레스를 즉시 털어내 보려고 온몸을 탈탈 터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그렇게 투덜대고 나니 신기하게도 조금은 맘이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국전 참여와 관련된 나만의 서전(緖戰)은 담담하게(?) 그러나 나름 소란하게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제자들인 제비 2리 마을 주민들의 전시회로 바쁜 와중에도 스승님께서는 직접 컴퓨터를 활용하여 멋진 칠언절구 시 한 수를 골라 주시고, 이옥봉의 우(雨)라는 시를 제자인 제가 국전 참가용 체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그야말로 힘차게 써주셨다.
雨
이옥봉(李玉峯)/조선
終南壁面懸靑雨(종남벽면현청우)
종남산 벼랑에 푸른 비 걸려있고
紫閣霏微白閣晴(자각비미백각청)
자색 누각은 흩뿌리나 흰 누각은 개었네
雲葉散邊殘照淚(운엽산변잔조루)
구름이 흩어져 남은 햇빛은 새 나오고
漫天銀竹過江橫(만천은죽과강횡)
하늘 가득한 은빛 대가 강을 가로지르네
그윽이 바라보니 명필이요,
은근히 맛을 보니 달필이다.
한 번 들어보면 황홀하고,
두 번 맡아보니 비내음이더라.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급 여류시인인 이옥봉의 시를 음미하고 있자니, 황홀경이 따로 없다.
비 온 뒤 구름 사이로 살짝 새어 나오는 햇살을 은빛 대라고 빗대는 시적 표현이 기가 막히지 않는가? 속칭 단전 즉, 저 깊은 곳 바로 그곳에서부터 은빛 대와는 대조적으로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는 탄복을 느낀다.
그 태풍을 직접 경험해 보니 일단 차갑기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속이 후련하고 시원하기까지 하다.
다음 편에 그 감상의 이면을 맘껏 풀어내고자 한다.
쪼매만 기다려주3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시 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