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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화 Oct 26. 2022

늘 하고 싶었던 일

언니는 아니꼬운 듯 가게 밖에서 팔짱을 끼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못 믿겠으면 네가 직접 가서 봐. 그년이 어떤 년인지 네 눈으로 확인하라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언니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지만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언니가 이랬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전에도, 그전에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사람들보다 언니의 말을 더 믿었다. 이번에도 나를 속인 거라면 절대 전처럼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은수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분갈이용 삽을 든 은수가 다가왔다.     


“진영아 이렇게 하는 거 맞지? 좀 더 깊숙이 해야 되려나.”

“응. 이렇게.”     


분갈이 중인 은수에게 다가가 미리 준비해온 화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은수는 커다란 화분 크기에 놀란 눈치였다. 매일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준비했다고 대충 둘러대자 은수는 환하게 웃었다.


은수는 화분을 집까지 옮겨주겠다고 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거운 화분을 번쩍 들고 기다리자 하는 수없이 집까지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은수였다. 언니도 종종걸음으로 뒤에서 우리를 따라왔다.     


“여기에 놓고 이제 가도 돼.”

“집 안까지 들여줄게. 이거 되게 무거워.”

“집이 지저분해서... 잠깐 기다려 줄래?”     


고개를 끄덕이자 은수는 계단을 올라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눈은 힐긋거리며 뒤에 있는 내 눈치를 살폈다. 억지로 웃어 보이는 은수가 안으로 들어가자 언니는 턱으로 은수를 가리켰다.     


“쟤 표정 봐. 내 말이 맞다니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언니가 집 안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나도 언니를 따라 은수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은수가 평소에 입고 다니는 화려한 무늬의 옷에 비해 집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새하얬다. 흰색 벽지와 흰색 가구들, 쓸데없이 넓은 거실에는 낮은 책상과 소파, 작은 화분 몇 개가 전부였다. 화분들마저도 이파리가 없는, 흙만 담긴 것들뿐이었다.      


무거운 화분을 낑낑거리며 집 안에 들어가 언니가 말한 방을 찾았다. 언니는 분주하고 불안한 걸음으로 집 안 곳곳을 쏘다녔다.     


“다른 식물들은 어딨어? 옆에 같이 두면 좋을 것 같은데.”     


언니와 은수는 손으로 같은 방을 가리켰다.     




언니가 말했던 어둡고 음산하다는 방은 크고 작은 가구들과 짐들, 화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집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거실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정신없는 방 안에서 나는 화분을 들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뎠다.     


“어딨어!!!!”     


가끔 언니가 보이는 것과 보고 싶은 걸 구분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럼 그렇지.     


은수는 한 박스를 가리키며 그 옆에 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화분을 내려놓고 방 안을 찬찬히 둘러봤다. 방 안에는 주로 작은 화분들밖에 없었다.     


“큰 식물도 키운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 치웠어. 너무 비좁아서.”     


한 화분이 눈에 띄었다. 투명한 유리 화분이었다. 그러나 그 화분마저 이파리들이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흙을 만져보자 물기가 느껴졌다.     


“이건 물을 더 주기보단 분갈이를 해줘야겠다. 분갈이 흙 있어?”     


은수가 거실에서 분갈이용 흙 포대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은수와 나는 가게에서 그랬던 것처럼 식물들을 분갈이하기 시작했다.      


은수는 가게에서와는 다르게 곧잘 따라 했다.

문득 언니가 생각나 주변을 돌아보니 언니는 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은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리고 손수건을 하나 더 꺼내 내게 건넸다. 나는 땀을 닦으며 앉을 곳을 찾았다.     


“여기 앉아도 되지?”     


분갈이용 흙 포대를 치우고 이불이 올려진 소파베드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기....! 응...”     


은수와 나는 나란히 소파 베드 등받이에 기대어 있었다.

은수에게 여태 분갈이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은수는 늘 하고 싶었지만 귀찮아서 미루고 있었다고 했다. 불편하게 앉아있던 은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발로 바닥을 밀어 소파 베드를 벽 가까이 밀어붙였다. 나도 은수를 따라 힘을 주어 소파 베드를 힘껏 뒤로 밀었다.      


“전에 그랬잖아. 아무리 좋은 흙이어도 오래 같이 있으면 오히려 식물을 시들게 한다고.”

“...”

“죽은 애들 버리니까 마음 편하네.”     


정말 그럴까.

죽은 언니를 버리면,

언니를 잊으면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까.     


그때 소파 베드 아래 무언가 딱딱한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래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소파 베드 아래로 손을 뻗었다. 그것은 조금 더 꿈틀거리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은수가 보지 못하는 오른쪽 손을 밑으로 뻗었다.      


밑으로, 더 밑으로.      


냉기가 느껴졌다.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사람의 발이었다.    


“늘 하고 싶었던 일이야. 분갈이 말이야.”     


은수의 눈빛은 이전과는 달랐다.

새로운 걸 찾았다는 표정.

그리고 그걸 강력하게 갈구하는 표정이었다.

놀란 마음을 감추며 잡고 있던 것에서 겨우 손을 뗐다.     

 



진영이 나가고,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오지 말라니까 진짜.."     


민수가 누워있던 소파 베드 위에 올려진 짐을 하나둘씩 치웠다.     


"힘들었지, 우리 민수. 쟤가 저번에 말했던 걔야. 내가 계속 찾던 그런 애. 너 죽으면 데려올 거라고 했잖아. 괜찮은 애 같지? 영양제가 어딨더라.. 아직 조금 남았네. 남은 거마저 먹어야..."

   

소파 베드 위에 올려져 있던 마지막 짐을 치우자 목이 꺾인 채 입에 식물 영양제와 이파리들이 가득 물려 있는 민수가 보였다. 몸이 굳어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잖아.     


“지랄하지 말고 일어나. 야. 야!”      


뺨을 때려도 민수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민수의 입에 있는 영양제와 식물들을 빼냈다. 뺨을 한 대 더 때려봐도 민수는 눈뜨지 않았다. 민수의 심장 가까이에 귀를 댔다. 언제나 얇고 가늘게 이어져 오던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민수만 데리고 떠났던 날, 당신들은 몰랐겠지. 그토록 아끼던 민수를 더는 볼 수 없었을 거란 걸.      


“그러게 나한테 왜 그랬어. 가족이면 다야?”


맞은편에 놓여 있던 청테이프가 보였다.

나는 테이프로 민수의 시체를 꽁꽁 싸기 시작했다.     


캐리어 바퀴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새벽이었다.

민수는 잘 오고 있나. 뒤를 돌아보자 살짝 열린 캐리어 지퍼 사이로 민수의 눈이 보였다.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위로, 더 위로 올라갔다.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르고 나서 들고 온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움푹해진 땅속에 캐리어를 넣고 그 위에 흙을 덮었다. 마지막으로 들고 온 조화 화분을 꺼내 땅에 심었다. 때마침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로 태어나. 네 방 천장에 닿을 만큼.”     


집에 돌아와 민수의 방을 정리했다. 민수가 누워있던 소파 베드는 접어서 벽에 세워두고, 거실에 있던 하얀색 조명도 가져다 두었다.      


마지막으로 진영과 함께 분갈이 한 화분들을 한눈에 잘 보이도록 선반 위에 올렸다.      


“야 김민수! 아아..”     


민수가 없는 방에서 자꾸만 습관적으로 민수의 이름을 불렀다.

진영이 오기 전에 얼른 고쳐야 할 텐데.        




밤공기는 차가웠다. 아까 내 손에 닿았던 그것처럼.

언니가 방에서 봤다던 그 사람일까.

아직 살아있을까.

분명 꿈틀거리다 멈췄는데.


손에서 느껴지던 감촉이 잊히지 않아 손을 보고, 또 봤다.    

 

이 언니는 대체 어딜 간거야.


언니는 방에 숨어있다가 내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곧장 거실로 나왔다. 나는 들어오자마자 성큼성큼 걸어 유골함이 놓여진 선반 앞으로 다가갔다.     


“나 거짓말한 거 아니야, 걔가 어디로 치웠나 보지! 너도 봤어?”     


다시 한번 손을 내려다봤다.      


나도 봤냐고?     


“너도 봤구나.”     


내 표정을 간파한 언니는 신이 나서 참아왔던 말들을 쏟아냈다.      


"내가 항상 말했지? 세상에 착한 애 없다고. 진짜 너 큰일 날 뻔했어. 알아? 그런 년한테."

     

유골함을 들어 싱크대가 있는 거실로 나갔다.      


죽은 사람을 데리고 산 것부터가 문제였다.     


“왜.. 왜 그래 진영아. 잠깐만...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 봤나 봐. 응?”

“늘 하고 싶었던 일이야...”

“진영아.. 진영아. 제발.. 제발 진영아!!!”     


유골함을 열어 싱크대에 뼛가루를 쏟아부었다. 그러고는 수돗물 레버를 덥석 움켜줬다. 늘 상상해온 순간인 만큼 나는 공연 당일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손은 떨리고 있었지만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머릿속으로 수백 번, 아니 수천 번도 더 연습한 덕분이겠지.     


언니는 이제 내 바지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너 말이야. 나 덕분에 살아있는 거잖아. 나한테 고마울 거 아니야. 안 그래...?"   


바닥에 무릎을 꿇은 언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있었다.      


그래, 이 표정.

이 표정만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는.

바보같이.     


"누구라도 언니보단 낫겠지."   


레버를 올리자 언니의 뼛가루가 물과 함께 섞여 싱크대 하수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누구라도.

누구라도 언니보단 낫겠지.      


언니는 그렇게 사라졌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몸이 지워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언니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유골함은 여전히 싱크대 위에 놓여 있었다. 제대로 잠기지 않은 레버 때문에 하수도에서는 물이 똑똑, 규칙적인 틈을 두고 떨어졌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유골함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눈이 깜빡거려졌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깜빡거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늘 하고 싶었던 일이야."       


어디선가 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사람 들이는 거 말이야."   


똑, 똑, 똑.


언니의 유골함 위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는 온통 땀에 젖어있었다.

끔찍한 악몽.

무슨 꿈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수돗물 레버를 꼭 잠갔다. 싱크대 선반 위에 언니의 뼛가루가 보였다. 남은 뼛가루도 물로 씻어내려던 그때 휴대전화 벨 소리가 들렸다.      


방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찾으려 손으로 침대 위를 뒤졌다. 이불 속에서 무언가 만져졌다.

차갑고, 꿈틀거리는 그것. 나는 그것을 꽉 쥐고 밖으로 꺼냈다.      


숨만 겨우 쉬고 누워있는.

식물이라고 하기도,

사람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휴대폰 화면에 ‘은수’ 이름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은수에요, 은수.”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자신의 이름을 은수라고 소개한 여자였다.

화면에 뜬 이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여보세요?”     




선반 위에 올려진 조화 화분에 담긴 꽃들을 뽑았다.

보라색, 다홍색, 빨간색, 노란색, 주홍색.

꽃들은 색깔도, 모양도 각양각색이었다.

싱크대에서 유골함을 꺼내어 안에 흙을 담고, 조화를 심었다.

한데 모아놓자 제법 생화처럼 보였다.     


은수의 집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이었다.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반지하가 바로 은수의 집이었다.

은수 집 현관 거울에 비친 얼굴은 초췌했다.

많은 것이 변한 하루였다.      


은수의 집은 문이 열려 있었다.

한 걸음만 떼면 은수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집 안에서 은수가 나왔다. 은수는 내가 안고 있던 화분을 보고는 활짝 웃었다. 아직 화분이 유골함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꽃이네. 예쁘다.”     


은수 뒤로 보이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새하얀 집에서는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빛은 어렸을 때 새엄마가 때릴 때마다 언니와 함께 숨었던 창고에서 나오던 빛과 같았다. 새엄마가 밖에서 문을 힘껏 두드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창고 안에서 언니는 언제나 내 손을 꼭 잡고 기도문처럼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때마다 나도 언니를 따라 중얼거리곤 했다.    

  

새엄마가 화나지 않게 해주세요. 진영이가 맞지 않게 해주세요. 진영이가 울지 않게 해주세요. 진영이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언제나 그랬다.

맞으면 안 되는 사람도, 울면 안 되는 사람도, 행복해야 되는 사람도 늘 나였다.


언니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지금에서야 언니의 바람대로 됐다.


집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은수에게 들리지 않을,

어쩌면 언니에게는 들릴지도 모를 기도를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진영이가 울지 않게 해주세요.

진영이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진영이가 더 이상 울지 않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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