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나가? 왜 벌써 나가? 어제도 일찍 나가더니.”
언니가 말을 뱉을 때마다 인상이 구겨졌다. 언짢은 표정으로 말없이 가방을 챙기며 집요한 언니의 시선에 애써 고개를 돌렸다.
이쯤 했으면 분명 언니도 느꼈겠지.
점장은 전화로 오늘 새로운 직원이 들어온다고 했다. 내 뒤꽁무니를 쫓아 따라오던 언니가 이 얘기를 못 들었을 리 없다.
“걘 요즘 연락 안 하지? 내가 항상 말하는 거 기억해야 돼. 세상에 착한 사람은...”
사람을 조심해야 돼, 사람을.
세상에 착한 사람은 없으니까. 언니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
늘 이런 식으로 언니는 내 주변 사람들을 모두 따돌렸다. 나는 그것이 사랑과는 다른 것이라는 걸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로 언니에게서 벗어나야 할 때다.
“들어가 볼게. 이따 봐.”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 들어와서 좀 편해지나 했더니. 오늘도 나 혼자 다 할 것이 뻔했다.
그때 몸에 딱 붙는 촌스러운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은수에요, 은수.”
여자는 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자신의 이름을 은수라고 소개했다.
점장이 시킨 대로 여자에게 분갈이하는 법을 알려줬다. 가르쳐주는 동안 여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몸을 밀착시켰다. 나도 모르게 가게 유리창 너머에 있는 언니의 눈치를 살폈다. 어김없이 언니와 눈이 마주치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여자는 말이 너무 많았다. 여자가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말들을 전부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이따금 씩 들려오는 말들 중에는 흥미로운 것도 있었다. 여자는 집에서 식물을 꽤 많이, 오래 키웠다며 작은 식물들 위주로 키우지만 큰 식물도 있다고 했다.
밖으로 나가자 언니는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식물 가게 문 앞에서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어떻게 없애버릴까. 어차피 내 눈에 밖에 안 보이니까 아무도 모를 거야.
없애버리고 싶다. 없애버리고 싶다.
없애버리고 싶어.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생각을 방해했다.
오늘 처음 만난, 그 여자였다.
여자는 오늘 도와줘서 고마웠다며 화분 하나를 건넸다. 보라색의 화려한 조화였다. 보라색 꽃이 여자와 꼭 닮아 있었다.
“예쁜 걸로 하나 샀어요. 진영 씨랑 닮은 걸로요.”
여자는 나름 신경 써서 고른 거라고 했다. 무언갈 받는 것도 그 화분을 들고 있는 나도, 모두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아본 것이 처음이었으니까.
“받기만 해 봐.”
언제 온 건지 바로 옆으로 다가온 가영이 나와 화분을 번갈아 가며 노려보고 있었다.
또 시작이다.
사람들이랑 얘기할 때는 말 걸지 말랬는데.
언니 때문에 여자가 하는 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화분을 받고도 한동안 별다른 말이 없자 여자는 민망한 듯 급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긴가민가한 여자의 마지막 표정이 떠올라 괜스레 미안해졌다. 동시에 옆에서 여자에 대해 바쁘게 이야기하는 가영은 어딘가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처음 보는 언니의 모습이었다. 그런 언니를 보니 괜스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분명 언니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버릴까 봐. 버리고 여자에게로 갈까 봐.
여자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언니를 뒤로하고 화분을 챙겨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가고 나면 분명 언니는 전에도, 그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여자의 집을 따라가 여자에게 대한 정보를 캐낼 것이다.
나에게 처음으로 선물을 해준, 나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을 품은, 오늘 처음 본 여자의 집은 어떨까. 언니는 곧 크고 작은 식물들이 즐비해 있는 여자의 집으로 갈 것이다.
“완전 미친년이야! 사람 볼을 이렇게 잡아서 식물 영양제 먹이고 막 그런다니까?? 제정신 아니야, 걔!!!”
언니에게 또 주변 사람을 미행한 거냐며 마음에도 없는 화를 냈다. 쩔쩔매는 언니를 보며 나오는 웃음을 애써 숨겼다.
이쯤에서 거실 밖 선반에 올려진 유골함을 한 번 봐주면..
언니는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래, 그래야지. 착하지 우리 언니.
침대 선반 아래에 둔, 여자가 준 화분을 바라봤다. 보라색 꽃과 여자의 얼굴, 여자의 목소리, 여자의 옷이 겹쳐 보이다가 문득 나른해졌다. 잠이 쏟아졌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래도 진영아, 그 사람 조심해.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 응?”
이어폰을 끼고 출근하는 길에 가게로 들어가려는 여자가 보였다.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일부러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은수 씨!”
발걸음을 재촉해서 여자에게 가자 내 속도에 맞춰 빠르게 걸어오는 언니의 발소리가 들렸다. 언니에게 보란 듯이 의도적으로 여자에게 팔짱을 꼈다.
여자는 어제와 다른 내 태도에 내심 경계하는 동시에 기뻐했다. 언니의 시선이 느껴졌다. 가게 문이 닫히기 전까지 언니와 나는 서로를 의식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오후 2시는 가게에 손님들이 가장 많은 시간대였다.
그중에는 엄마와 아들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진열대 앞에서 화분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여자도 그들을 빤히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으로 여자에게 먼저 궁금한 것이 생겼다.
여자에게도 가족이 있을까. 없애버리고 싶은. 언니가 문밖에서 나와 여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여자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여자는 부모님이 남동생만 데리고 여행을 갔다가 사고로 다 죽는 바람에 혼자라고 했다. 여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의 표정을 살폈다.
여자는 나와 놀랍도록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딸이라서 다행이었다고 말하는 여자는 슬퍼 보이지 않았다.
화분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쪽에는 보니 아까 조화 화분을 들고 있던 가족이 있었다.
깨진 화분 조각을 주우려 몸을 숙였다. 아들이 어쩔 줄 몰라 했고,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연신 사과를 해댔다. 아들이 허리를 숙여 화분 조각을 집으려 하자 엄마는 아들의 어깨를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 그 바람에 아들이 들고 있던 유리 조각에 손가락이 베여 손에서 피가 났다.
작은 조각이 꽤 날카로웠는지 피가 멈추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꽃이 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피는 빨간색 꽃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무슨! 네가 이걸 왜 해. 이런 거 하는 거 아니야.”
엄마가 아들에게 큰 소리로 속삭였다.
“주세요, 그거.”
아들이 굳은 표정으로 내 손을 바라봤다.
아들의 손에는 여전히 내 피가 묻은 유리 조각이 들려있었다. 엄마는 조각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짧은 찰나에 엄마의 인상이 구겨지는 것이 보였다. 그 표정은 유리에 베일 때 보다 더 아팠다.
피가 나는 손을 그대로 두고 남은 화분 조각들을 치웠다. 누군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아.
나도 모르게 아픈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은수였다.
은수는 피가 나는 곳에 붕대를 감싸기 시작했다. 늘 나와 눈을 마주치려던 은수는 고개를 숙였고, 필사적으로 은수의 눈을 피했던 나는 은수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가족이면 단가.”
은수의 말을 곱씹어 생각했다.
그러게. 지들이 가족이면 다야.
붕대를 다 감을 때까지 은수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퇴근 전,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은수를 찾았다. 밖에서는 은수가 아닌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는 붕대가 감긴 내 손을 이리저리 살폈다. 걱정스러운 언니의 손길에도 인상이 써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진짜 괜찮다니까..”
“진상들... 아까 나갈 때 따라갈 걸 그랬나.”
가게에서 막 나오는 은수가 보였다.
“진영 씨!”
은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손을 들어 인사를 하자 은수가 다가왔다. 은수의 손에는 어제와 같이 화분이 들려있었다. 오늘의 조화는 언뜻 빨간색으로 보이는 다홍색이었다.
“기분 풀어요.”
은수는 붕대가 감긴 내 손을 어루만졌다. 언니가 은수를 째려봤다. 은수에게는 보이지 않는, 언니의 발악이었다.
“은수 씨.”
은수가 나를 쳐다봤다.
이쯤에서 이 말을 해주면..
“요 앞에.. 같이 걸을래요?”
“뭐?!”
언니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은수의 표정을 살폈다. 은수는 대답 대신 살짝 웃었다.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발걸음은 경쾌해졌고, 나는 화분이 흔들리지 않도록 손에 힘을 주어야 했다.
손과 함께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다.
가족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우리의 대화에는 어떤 머뭇거림도 없었다.
산책로 가로등 불이 꺼지고 저 멀리서 어스름이 해가 떠올랐다.
점장이 가게에 처음으로 조화를 들인다고 했던 아침, 이 길을 따라 출근하던 날이 떠올랐다. 집에서 언니의 유골함을 몇 번이고 들었다, 놨다가 결국 제자리에 올려놨던 그날 새벽.
“조화가 좋아. 시들지도 않고.”
봉투를 살짝 열어 다시 한번 은수가 건네준 조화를 봤다. 어제 받은 꽃처럼 은수와 닮아있었다.
분명 꽃이었다. 무더운 여름 날씨 때문에 발그레해진 은수의 뺨처럼 다홍빛의, 꽃이었다.
언니는 시무룩한 얼굴로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몰라서 묻는 거야? 또 그년 만나고 왔어?”
“...”
“물어보잖아!”
“언제 봤다고 그년이래.”
“너나 제대로 알고 말해. 내가 계속 말했잖아. 걔 사람 막 때리고 식물 영양제 먹이는 개싸이코라니까?”
“뭐라는 거야...”
은수가 준 꽃을 선반 위에 놓았다. 나란히 둔 다홍색과 보라색 꽃은 퍽 잘 어울렸다. 언니는 은수가 나한테 자꾸 뭔가를 주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마녀가 백설 공주한테 사과를 괜히 줬겠어?
누가 주는 거 덥석 받으면 안 돼. 처음 보는 사람은 무조건 조심해야 돼. 우리 엄마도 처음엔 안 그랬어. 사람이 제일 위험해, 사람이.
언니한테서 지겹도록 들은 말이었다.
그래, 이래야 우리 언니지.
“그럼 언니는?”
언니는 말문이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언니 때문에 평생 이러고 혼자 살았어. 엄마도 아니고 진짜..”
지금 언니가 하는 행동은 새엄마가 우리한테 그랬던 것과 똑같았다. 새엄마는 자기 멋대로 되지 않으면 우리를…
“살아있었으면 똑같이 때렸겠다?”
“가족을 어떻게 때려!”
“가족 같은 소리 하네...”
떨리는 손을 감추려 옷을 꽉 쥐었다. 언니는 내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자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악을 써댔다.
내가 왜 죽었는데.
너 대신 죽은 거잖아.
너 대신에 내가 이렇게 된 거잖아.
또 그 소리.
“그래서 평생 이러고 살았잖아.”
언제까지 이래야 되는데.
고개를 돌려 거실 밖 선반에 올려진 유골함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김가영’이라고 써져 있는 유골함 옆에는 언니의 영정사진, 그리고 웃고 있는 언니와 나의 어릴 때 사진이 액자에 담겨있었다.
유골함을 번쩍 들었다.
평생 이러고 살았잖아. 언제까지 이래야 되는데.
유골함을 든 손이 떨렸다.
쾅, 하고 큰 소리로 유골함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이쯤에서 거실에 우두커니 서있는 언니를 한 번 봐주면..
악을 쓰던 직전까지와 다르게 언니는 떨고 있었다. 초조해하는 언니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마지막이야.”
언니가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