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 삑- 삑-
일정한 박자로 올라갔다 내려가는 민수의 심전계 소리가 병실을 채웠다.
‘저 호흡기를 떼 버린다면….’
벨이 울리고 간호사들이 방으로 들이닥치겠지.
나는 동생을 죽이려고 했던 미친년이 되는 걸 테고.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에게서 가족을 빼앗아가버린 채로… 이렇게 너까지 가버린다고?
너만 없었으면….
‘응? 민수야 너만 없었으면….’
어두운 병실 안에서 민수가 조용스럽게 눈을 떴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한 힘없는 눈꺼풀.
작게 간신히 떠진 눈가죽 사이로 민수의 빛을 잃은 눈동자가 보였다.
민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민수를 지금 죽여버린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나쁘지 않아?
아니.
나쁘다. 이렇게 민수를 죽게 둘 순 없잖아.
나는 속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소리 없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민수야. 누나랑 오래오래 살자… 응? 오래오래.”
민수를 집으로 옮겨오는 것도 일이었다.
부모님의 장례식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민수라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나는 그들을 웃는 낯으로 돌려보냈던 것이 기억났다.
참 좋은 딸이야.
그들은 그렇게 말했던가. 기억나진 않지만.
“민수야… 이제 내가 널 돌봐야 하는 거야?”
바닥에 던져놓은 민수는 눈만 껌뻑이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응? 뭐라고 말 좀 해봐. 민수야.”
이미 부모님의 장례가 끝나고 으레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던 사촌들의 연락도 다 끊긴 이후였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뭐는 좀 먹고 사는지, 장례식 비용과 병원 입원비, 사고와 관련한 법정 다툼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남아있는 게 여전히 있었다.
민수.
식물인간 하나를 끼고 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더군다나 나 살기에도 벅찬 20대에 이런 짐 덩어리를 짊어지고 간다는 것은….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한 것은 민수를 조용히 묻어버리는 것이었다.
얘의 목구멍에 죽 같은 걸 밀어 넣고, 그게 오물로 흘러나온 기저귀를 갈아주고, 오물을 닦아낸다.
그야말로 토악질이 나오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문득 서러움이 분노로 바뀐 것은.
눈만 껌뻑이는 민수의 뺨을 강하게 때려버린 것 또한.
“씨발!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되는데!!”
뺨을 맞은 민수는 눈동자가 한껏 커져서 눈만 깜빡거렸다.
들숨과 날숨이 평소와 달리 가빠진 것도 보였다.
손바닥에 얼얼함이 남아있을 때.
징그럽고 한없이 초라한.
벌레 같은 민수를 내려다봤다.
그래 씨발 이제 끝이야. 다 끝났어.
민수를 보호시설이나 병원에 처박아 넣는 것도 문제였다.
아무것도 해결되는 건 없지만.
너만 죽는다면 일단 어떤 것들은 많이 해결될 테니까.
그날 밤. 나는 민수에게 어떤 밥도 주지 않고 그대로 잠에 들려고 했다.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아야지.
쟤는 저대로 창고에서 죽게 될 거야.
썩어가겠지.
나는 나 혼자 먹고 살기에도 벅차.
근데 민수까지 신경 써야 한다고?
미쳤어?
아니 애초에 불가능해.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저런 게 죽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왜 살려야 하는데.
가족이라고?
웃기지 마. 난 쟤 때문에 가족에게 버림받은 것 같았어.
근데 지금 와서 가족이라고?
그리고 잠에 들기 직전 내가 집중한 감각은 손바닥에 남은 얼얼함과, 민수의 뺨을 때렸을 때의 울림. 소리.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 민수의 유일한 반응.
그리고 한 동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나는 너를 죽이진 않을 거야. 민수야.”
“아니, 은수 씨! 어떻게 된 게 일 시작한 지 두 달이나 지났는데 똑바로 하는 게 없어요? 응? 이러면 계속 같이 못하지….
“죄송합니다...”
“미안한데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두세요.”
“네? 아니 갑자기 그러시면...”
매니저는 벌써 오늘 하루에만 두 번이나 컴플레인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주문하지도 않은 음료를 추가해서 결제하고. 결제한 메뉴는 누락해서 내어주는 게 말이나 되냐고.
은수 씨 다음 타임 사람은 은수 씨 시간대 결제한 카드내역 환불해주기에 바쁘다는 말이었다.
내가 그렇게 정신이 없었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만둘게요.”
내가 개인 카페의 앞치마를 벗으려고 하자 매니저가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그동안 수고했어요. 가는 길에 커피 찌꺼기 좀 버려줘요.”
나는 모아둔 커피 찌꺼기들을 모아들고 카페의 주방을 조용히 훑어봤다. 일회용품들 사이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칼이 보였다.
민수의 살가죽 정도는 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칼처럼 너무 예리해선 안 된다. 상처가 너무 깔끔하게 나니까.
상처는 천천히 조금씩, 참을 만한 고통에서부터 조금씩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만 민수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게 느껴지니까.
의사의 말대로라면 척추 아래로 감각이 없을 거라고 했는데, 아니었다.
조금씩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의 고통에서 나아가면 민수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인다.
‘왜 플라스틱 칼을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지….’
분명 좋은 도구였다.
나는 매니저의 눈치도 보지 않고 플라스틱 칼을 여러 개 챙겨 들고 주머니에 넣었다.
매니저는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요. 은수 씨.”
커피 찌꺼기를 내다 놓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앞은 식물원이 있었다.
식물원….
민수도 사고가 나기 전에는 식충식물을 키우기를 좋아했었다.
엄마도 식물 키우기를 즐겼던 것 같았으나 확실하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식물원으로 온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가만히 멈춰있는 식물이 좋나?’
식물원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입장권은 구매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의 일행인 척 뒤따라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어김없이 식물원의 입구에서 나는 입장권을 요구당했다.
하는 수 없이 등을 돌려 근처의 가로수를 향해 걸어갔다.
단지 식물에 칼집을 내보고 싶었던 것뿐이었으므로.
가로수로 나무를 베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10번 정도 긁자 조금 나무가 긁힌 흔적이 생겼다.
민수의 발목도 마찬가지였다.
아킬레스건이 있는 부위를 플라스틱 칼로 20번쯤 톱질하자 약간의 피가 흘러나왔다.
“봐. 민수야. 네 피야.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어.”
나는 민수의 핏방울이 묻은 플라스틱 칼을 민수 앞에 들이밀었다.
민수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봐. 보라니까? 민수야?”
나는 손으로 민수의 눈꺼풀을 벌려 눈을 뜨게 만들었다.
유일하게 미세한 저항이 느껴지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충혈된 민수의 눈이 보였다.
“뭐야. 잠을 못 잤어?”
민수의 눈동자가 피가 묻은 플라스틱 칼을 확인했다.
나는 그러자 흥미가 식어버려 다시 민수의 눈꺼풀을 낼놨다.
“지겨워… 지겨워… 민수야. 응? 네 기저귀를 치우는 것도. 네 입에 관을 꽂아서 죽을 집어넣는 것도. 나 오늘 일 그만뒀어… 아니 잘린 거지만.”
“난 누구한테도 뭘 인정받아 본 적이 없어 민수야. 또 일자리를 구해야 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민수가 조용히 눈을 떠서 나를 올려다봤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다 너 때문인데….”
“다 너 때문인데 씨발!! 왜 쳐다보냐고!!!”
민수가 다시 질끈 눈을 감았다.
“너는 못 죽어. 민수야. 내가 다시 잘 살게 되기 전까지. 가족이 돌아오기 전까지 못 죽어…. 알겠지?”
나는 창고방을 빠져나갔다.
창고에 화분을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종류로.
크고 작은 가구와 짐들을 제외하면 화분들로 꽉 채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민수가 놓여 있었다.
“민수야. 나 일 구했어. 다행히 저번에 말했던 식물 가게야. 이제 곧 새로 나가게 될 거야.”
민수의 팔에 묶어 둔 붕대를 벗겨냈다.
피딱지가 앉아있는 민수의 팔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당분간은 더 괴롭힐 일이 없겠다. 그치?”
나는 바닥에 눌러 붙은 민수의 핏자국들을 물티슈로 닦아내면서 말했다.
바닥에 딱딱하게 바짝 말라 굳은 핏자국이 물티슈에 녹아 번졌다.
그런 물티슈를 들어 올려 버리려고 할 때.
민수가 눈을 깜빡이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아…. 여기에 조만간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치울 수 있는 건 치워야지. 식물도 좀 더 들여놓으려고. 좋지? 심심하지 않을 테니까. 그치? 응?”
민수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을 때가 있었다.
애초에 고통을 느끼긴 하는 것 같았으니까.
단순한 본능에 의한 회피 반응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민수의 살점을 통해 교류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민수의 살점을 썰어내고 찌르고 흐르는 핏방울과 핏줄기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건 민수의 피아노 소리였다.
지금의 내가 연주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