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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 인문학 Sep 26. 2024

‘2023년 서울 미래유산’에 선정된  ‘미일이발관’

출처 링크 :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220143&menuNo=200018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는 ‘이발관’이라는

이름부터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예전엔 남자들이 가는 곳은

‘이발관’아니면 ‘이발소’였다.

나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까까머리였다.

이발관에 가면

소위 ‘바리깡’으로 빡빡 밀었다.

스타일이고 멋이고가 없었다.

그냥 밀었다.

일제의 잔재였지만 그땐 그랬다.

교문에서 교련 선생님이나 체육 선생님이

머리가 길면 잡았다.

바리깡으로 머리에 고속도로를 냈다.

인권이고 뭐고 없던 시대였다.

하루 종일 들어오는 선생님들한테

쓴소리를 듣곤 하던 시절이었다.

반항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군사부일체’였으니까 ㅠㅠ

이번에 서울시가 ‘2023년 서울 미래유산’

선정을 두 군데 추가 발표했다.

한 곳은 궁중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의 집’과

1974년에 대학로에 문을 연

이발소 ‘미일이발관’이다.

‘한국의 집’은 몇 번 가봤지만

‘미일이발관’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기사에 따르면

아직도 샤워기 대신에 파란 물뿌리개를

사용해 머리를 감겨준다고 한다.

레트로 감성의 이발관이다.

현재는 아버지에 이어 아드님이 2대째

가업을 승계하고 있다고 한다.

기사에 나온 사진을 보니까

개업 당시의 모습과 거의 흡사해 보였다.

내가 베트남 호찌민에 4년 전에 갔을 때

이발관에 가서 면도와 머리 감겨주는 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다.

2불이었는데

면도를 가죽에 가는 소리가 정겨웠고

얼굴에 가득 덮혀 주는 따뜻한 수건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사실 위생 측면에서 걱정은 되었지만

모든 것을 100도 이상 끓여서 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찜찜했다.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 손을 잡고

이발관에 가서 머리 깍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어른들은 머리를 손질하고

수염을 면도기로 정성껏 해주는 데

어린 나에게는 머리만 깍고

그만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나도 면도해달라고 한적이 있었던 것 같다.

이발사아저씨는 고등학교 들어가면 해준다고 해서

기다린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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