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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 인문학 Aug 20. 2024

다시 화양연화를 기다리며


 보름달은 반드시 질 것이고

초승달은 차오르게 되어있다.

이것은 자연의 순리이며

진리이다.

인생사에 대입해 보면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누구나 인생에 한 두번의 전성기가 찾아온다.

그 때를 알고 잘 관리하면

인생이 해피해지고

아니면 늙어서 고생하게 되어 있다.

나는 사실 시인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온 사람이다.

그래서 대학도 3수를 하게 되었고

들어가서도 전공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대학 3학년 때까지 오직 신춘문예 당선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쳤다.

늘 시집과 책들을 끼고 다녔고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이라

발상 노트를 들고 다녔다.

그러나 내 재주는 거기까지였다.

당선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내 인생의 보름달 같은 화양연화는 오지 않았다.

결국 시인은 되지 못했고

꿩 대신 닭으로 택한 직업이 카피라이터였다.

비교적 순항할 수 있었다.

아니 광고가 뭔지도 모르고 들어간 회사에서

승승장구하게 된 것이다.

시를 썼던 나에게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은

환상궁합이었다.

‘베지밀 반 분유 반’이라는 카피에 기여하고

그 덕에 롯데 그룹의 광고대행사인

대홍기획에 스카우트되었다.

사원3년차에서 대리 2년차 대우를 받았다.

3수했던 것을 오히려 동기들보다 1년을 앞서가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대홍기획에서의 생활은 일과의 전쟁이었다.

토요일 일요일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매일 야근을 해도 시간은 모자랐다.

능력 부족이 아니었다.

당시의 대홍은 광고 업계 전체 개인 빌링이

최고를 찍는 혹사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쳐가고 있을 때

LG그룹의 LG애드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다.

옮길 때 또 1년을 이익을 봤다.

그리고 광고인으로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다.

내가 좋아하는 화장품과 생활용품 광고를

긴 시간할 수 있었고

미국 파슨스에 장기 연수의 행운도 얻을 수 있었으며

다시 복귀해서 마지막 조직에서

꽃을 피웠다.

LG브랜드 광고를 퇴사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맡아서 했다.

그룹의 얼굴 광고를 담당하고

그것을 10년간 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무엇보다 세상을 큰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나의 인간 그릇을 만들 수 있었다.

그룹의 기획조정실 사장님께서

대한민국 그룹들의 움직임과

오너들의 행동의 뒷이야기 등을 들으며

그것이 단순한 흥미거리가 아니라

생존 싸움을 하기위한 치열한 수싸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공적인 일보다 시적으로 즐기는 오너들도 많았다.

그들의 여자 문제 돈 문제 그리고 심한 경우

약까지도 루머 이상의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때 들었던 회장들의 비사는 뇌관이 되어

3,4년이 지나자 하나하나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9시 뉴스에 나오는 사람도 있었고

해외로 도피하는 사람도 있었고

대한민국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그룹 내에서 왕처럼 살았던 사람들이

포토라인에 서서

고개를 숙이는 모습도 많이 봤다.

보름달이 하루 아침에 그믐달이 된 모양새다.

독립을 하고

17년 동안 버티고 있다.

잘 될 때도 있었고

코로나 이후 힘든 시간도 있었다.

다시 초생달처럼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 하루하루 달은 둥글게 둥글게 찰 것이다.

보름달이 될 때까지

앞만 보고 달리려고 한다.

나한테 다시 한번 주어지는

화양연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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