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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시간

하프마라톤, 아주 길고 먼, 21km.

by So

욱신거리는 다리를 보니, 정말 어제 내가 하프마라톤을 뛴 것이 맞나 보다.

훈련할 때엔 보통 2시간을 뛰어도 천천히 뛰기 때문에. 별다른 통증이 없는데.

어제는 정말 2시간 반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열심히, 열심히 달렸다.

심박수가 178까지 올라도, 그냥 달렸다.

17킬로부터는 정말,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당황했지만, 그래도 일단 달렸다.

일단, 빨리 피니쉬 라인에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18킬로부터 비가 조금씩 떨어졌다.

뛰는 내내 맞바람과 사투를 벌였는데, 비라니.

게다가 진눈깨비였다.


20킬로, 마지막 급수대를 지나면서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이 황금 같은 주말에 난 지금 뭘 하고 있지. 걷고 싶다. 그만두고 싶다. 그냥 다 짜증 난다.’

그렇게 하면서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차라리 눈물을 흘릴 힘도 달리는 것에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점점 굵어지고, ‘다 왔다’는 응원단의 목소리에 뻣뻣해진 다리를 더 열심히 저었다.


2시간 24분.

2시간 30분 안에 들어왔다.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21km를 한 번도 걷지 않고, 오로지 달려서 오다니.

내가 살면서,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해낸 적이 있나.

풀 마라톤 완주한 모든 사람들은 정말 엄청난 사람들이다.

완주하고 메달을 받으러 가는 길, 비가 그쳤다.


아주 길고 멀었던 나의 첫, 2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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