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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순이 미선이

2025년 5월 15일

by So

효순이 미선이 소식을 처음 접했던 것은 친구 집에서였다.

비가 오는 여름이었는데, 친구가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여중생들을 아냐며 사진을 한 장 보여주었다.

그 사진 속 두 소녀가 효순이와 미선이었다.


친구와 나는 그 소녀들을 보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동네에도 미군기지 있는데..."


캠프페이지라는 이름의 미군기지였다.

밤이고 낮이고 시도 때도 없이 헬기가 오르내렸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캠프페이지와 담을 하나 두고 있었는데,

헬기가 뜨면 옆의 짝꿍의 목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칠판에 있던 분필이 달달달 떨리고,

창문도 덜덜덜 움직였다.

점심시간에 축구하다가 공이 담장 너무 기지로 넘어가기도 했었다.


효순이 미선이 소식을 접하고, 난 그 미군기지가 무서워졌다.

밤에 헬기가 뜰 때엔,

'저 헬기가 우리 집으로 떨어지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도 했었다.

그런 걱정을 하는 날엔, 정말 헬기가 추락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헬기가 떨어지는 순간, 이상한 별로 순간 이동을 했다.

거기에서 신기한 모험을 하기도 했다.


캠프페이지 앞은 조용했다.

두 소녀가 죽었지만, 어떤 어른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좀 지나서였을까.

하교하는 길에 캠프페이지를 지나는데,

효순이 미선이의 영정사진이 놓인 것을 보았다.

어떤 아저씨가 '미군기지 이전'이라는 푯말을 들고 서있었다.

그 아저씨를 보는데, '아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내가 사라져도 저 아저씨는 나를 기억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은 내가 처음 목격한 죽음이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을 감각하게 한 죽음이었고,

'미군기지'를 발견하게 한 죽음이었다.


<여름, 기록>을 만들며,

가장 처음 떠올랐던 '여름'이 효순이 미선이였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삶이 '살아남기'가 되지 않는 여름이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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