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8일
<빨간 기와집>을 본 것은 2016년이었던 것 같다. 태국의 노수복 할머니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하다가 배봉기 할머니를 알게 됐다.
사실 그때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작업을 생각하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기에 내가 너무 부족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태국에서 노수복 할머니를 참 많이 생각했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24살, 낯선 땅에서 자유인이 되었다던 그녀의 표정은 어땠을까. 지금 내가 이렇게 헤매는 이 길을 그녀도 보았을까.
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사는 것이 바빴다. 작업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지만, 돈을 버느라 도무지 틈이 나질 않았다. 그럼에도 문득 여름이 오면, 태국의 어떤 길거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노수복, 그녀가 생각났다.
그 마음이 계속 있었다. ‘해야 한다’보다는 ‘언젠가는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2021년, 여름이 남긴 마지막 편지를 보았다. 이상하게도 난 또, 노수복 할머니가 그리고 내가 무수히 지나쳐온 많은 여성들이 생각났다. 어떤 뜨거운 마음보다는 그런 불현듯 스치는 그리움으로 시작한 작업이었다.
2025년, 도카시키 섬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바다를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이 감정을 도대체 뭘까. 이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은 뭘까. 섬에 도착해서는 아리랑비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미리 사온 한라산 소주도 한 병 올렸다. 섬 어딜 가도 파란 바다가 보였다. 도카시키의 아리랑비에는 ‘환생’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녀는 환생을 원할까. 누굴 위한 환생일까.
한국을 향해 있다는 아리랑비를 가만히 바라보며, 나도 곧 등을 돌려 한국이 있는 그곳을 보았다. 아주 오래전, 이 낯선 섬에서 그녀는 한국이 있는 곳을 자주 바라보았을까. 꿈에서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았다던 그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다시 무언가 무척 그리웠다.
촬영을 마칠 때쯤 한바탕 비가 쏟아졌다.
비가 쏟아지는 파란 바다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저기 도카시키 바다 좀 봐. 어쩜 저리도 예쁜지. “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