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5일 화
처음 태국에서 노수복 할머니에 대해 기록할 때에도,
2021년 여름, 춘천 소양로 3가의 ‘여름’의 마지막 편지를 발견하였을 때에도,
오키나와 국제대학의 타다 만 나무를 보았을 때에도,
토카시키 섬의 배봉기 할머니를 생각할 때에도.
그들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모두 애도였다.
‘애도’라는 말은 무척이나 어렵고, 복잡한 단어다.
2014년 4월 16일.
파란 바다에 커다랗고 하얀 배가 가라앉는 것을 목격했다.
아이들의 죽음의 목격자가 된 이후로, 내 삶은 완전히 뒤흔들렸다.
나의 애도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끝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애도해야 할 사람들과 날짜와 시간등이 늘어갔다.
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지나쳐 간 많은 여성들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들의 얼굴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상황과 시간과 목소리와 울부짖음과 공기와 소음들로.
난 그녀들을 기억하려 애썼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들을 향한 나의 애도였다.
영화를 만들며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이 몇 가지 있다.
소녀상을 보여주지 않을 것,
그녀들의 사진을 보여주지 않을 것,
그녀들의 영상을 보여주지 않을 것,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을 것.
영화가 끝난 뒤,
그녀들의 얼굴을 상상하길,
그녀들의 몸짓을 상상하길,
그녀들의 목소리를 상상하길,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그녀들을 다시 살게 하길.
적어도 내가 이 영화를 만들며,
그들을 애도하는 방식은 그런 것이었다.
우리 안에 각자의 여름이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