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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삶을 상상하기

단편 작업 상영을 마치고...

by So

지난 5월 31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리는 <반짝다큐페스티발>에서 단편 <어느 날, 여름에게> 상영을 마쳤다.


<어느 날, 여름에게>는 <여름, 기록>의 촬영소스로 짧은 단편 작업을 한 영화이다.

내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같은 소스로 전혀 다른 이야기로 조합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첫 장편 <방문> 역시 같은 소스로 여러 개의 단편 작업을 했었다.

이번에도 <여름, 기록>과는 조금 다른 톤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어느 날, 여름에게>는 춘천의 여름과 오키나와의 여름, 서울의 여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7년 만의 새로운 작업이었다.

상영 전날, 잠을 설쳤다.

뒤척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게을렀나.’

‘무엇이 나를 게으르게 만들었을까.’

‘7년 동안 뭐 했더라.’


영화를 만들지 못했던 7년을 가만히 돌아보았다.

이 영화를 시작한 것이 22년이었으니...

4년 정도, 무엇을 카메라에 담을지 몰라 무척 헤맸던 것이 사실이다.

여름을 기록하는 동안에도 아주 성실하진 않았다.

자꾸만 ‘이것이 맞나’ 뒤돌아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이렇게 단편으로 정리를 했던 이유는, 한 가지였다.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매 순간 의심했다.


‘지금 나는 여름들의 이야기에 잘 귀 기울이고 있을까.’

‘여름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대하고 있진 않은가.’


이런 의심들과 더불어서 두 번째 작업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첫 번째보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이런 복잡한 고민이 이어지던 어느 날.

달리기를 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잘하고 싶은 마음 알겠어.

스스로 의심하는 것도 잘 알겠어.

그 두 마음은 아마도 평생 가져가야 할 거야.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매일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그냥 잘 못 해도 성실하게 하자.‘


“하루 한 컷만 붙이자!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하루 한 컷이라니. 부담이 확 줄었다.

잘 하진 못 해도, 여름들의 이야기 앞에서 성실하고 싶었다.

적어도 게으른 태도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진 않았다.


나에게 진실이라는 것은 어떤 왜곡되지 않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기록하고 싶은 진실은,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존재들의 고군분투하는 삶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나의 카메라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를 만들며,

내레이션을 쓰며,

정말 여러 번 여름들의 삶을 상상했다.

그녀들의 표정, 말투, 목소리, 몸짓.

우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렇게 나의 상상 속에서,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수 없이 만나길 바랐다.


상영을 마치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성실한 사람이 되자.‘


‘세상을 바꾸는 영화 말고,

성실하게 누군가의 삶을 발견하고, 귀 기울이고, 상상하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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