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의 리싸이클링

by 고작가

제주살이 5년 차에 들어서는 나는 난생처음 귤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물론 내 밭을 산 건 아니다. 나는 그럴 돈도 없거니와 그런 큰돈이 있더라도 귤밭을 사고 싶진 않다.

얼마 전 부동산을 잡겠다는 이대통령의 말씀이 생각나서 하는 말이다. 시골 어디 산골짜기에 밭도 20~30만 원씩 가는데 누가 땅을 사서 농사를 질 수 있겠냐는 현실적인 이야기. 서귀포도 예외는 아니다. 돌무더기 귤밭도 한 평에 30만 원은 간다. 1000평 이면 3억이다. 귤농사로 먹고살려면 적어도 3000평은 지어야 살아갈 최소한의 이익이 발생한다는데, 어느 누가 9억을 투자하고 힘든 농사일을 짓겠는가? 이게 내가 본 귤농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전부터 귤농사를 지어오셨던 삼춘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을 빌어 힘겹게 귤을 키우고 있는 서귀포다.


노지귤(야외 밭에서 키우는 귤)은 12월이면 모두 수확을 마치고 일 년 동안 수고한 귤나무를 쉬게 해 준다. 물론 부지런한 농부들은 이 시기에도 나무에 영양제를 살포해 주거나 창고를 정리하고 밭을 재정비하기도 한다.

봄이 오기 전인 2월의 끝자락. 귤밭의 나무들을 전정하는 것으로 올해의 귤농사를 시작했다. 2달 전까지만 해도 가지가 부러질 듯 귤을 가득 달고서 축축 땅 쪽으로 쳐 저 있던 귤나무 가지가 많지 않은 잎들만을 품고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은 마치 태양의 양분을 조금 더 받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저렇게 높이 자랄 수 있는 나무일 텐데 인간들에게 좀 더 편하게 귤을 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작은 키를 유지해야만 하는 귤나무의 운명이 애잔하게 보였다.


40년 경력의 귤 농사꾼인 삼춘의 간단한 전정수업에 이어 곧바로 실전에 투입되는 귤밭현장.

“전정이란 게 가르쳐 준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자꾸 보면서 직접 해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레 알게 돼.”(사람 살아가는 게 다 그랬던 거 같은데)

나뭇가지들 중 나만 잘났다고 삐죽이 하늘로 치솟은 가지. 가지 숱이 너무 많아서 안쪽까지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늙은 가지. 땅에 너무 가까이 붙어있는 가지. 병에 걸려 잎이 누렇게 죽어가는 가지들을 잘라주는 것. 이런 항목들이 내가 오늘 배운 귤나무 전정 방법이다. 더 디테일하게는 상품이 될 만한 귤이 열릴 것 같은 가지만두고 곁가지는 솎아주는 것도 필요했지만 그 단계까지 볼 수 있는 눈이 되려면 꾸준히 몇 해는 귤농사를 지어봐야 한다고 하셨다.


써 보는 건 처음이지만 보기에는 익숙한 전동가위를 오른손에 쥐고 귤나무들을 스캔해 본다. 정말 나만 튀겠다고 혼자만 삐죽 올라와있는 녀석들이 보였다. 가지 밑부분에 가위를 데 고 사정없이 잘라준다. 땅 쪽으로 방향을 잡은 가지. 바짝 말라죽어가는 가지들도 눈에 들어왔다.

모난 돌 정 맞고, 뒤처지는 무리가 도태되는 인간사회처럼 귤밭의 귤가지들도 무리에 잘 섞여 열매를 잘 맺는 가지만이 살아남았다.

그렇게 귤나무만 쳐다보며 한참을 가위질하다 보니 귤밭의 한쪽 어딘가에 가 있었다. 함께 출발했던 3명의 일꾼들은 보이질 않고 “위이잉 척”하는 가위질 소리만이 우리들의 위치를 가늠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밀림 속을 헤쳐나가듯 귤 가지들을 자르며 반나절쯤 지났을까, 입구 쪽에서 목좀 추기자는 삼춘들의 목소리에 홀린 듯 창고로 향했다.

비료포대를 방석 삼고, 빈 컨테이너를 뒤집어 상을 마련했다. 시원한 제주막걸리에 풋고추, 멸치, 삶은 계란, 작년에 미쳐 못 따 귤나무에서 잠들어있던 늙은 귤까지 소박한 상이 차려졌다. 바닷가 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달디 단 막걸리 한 사발에 말라있던 목을 적셔본다. 현장에서 땀 흘리고 먹던 참과는 또 다른 맛이다.

생나무를 자르고 흙을 만지며 일한 탓인지 땀에서 숲의 향이 느껴졌다. 농부들이 이 맛에 막걸리를 마신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제주 막걸리”는 서귀포에 귤나무가 있는 한 절대 망할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잘린 귤나무 가지들을 파쇄기가 다닐 수 있는 길목에 듬성듬성 모아 두는 것으로 오늘의 전정을 마무리했다.



파쇄기는 나뭇가지들을 분쇄해서 작은 알갱이로 만들어주는 농기계를 말한다.

작은 사이즈의 파쇄기는 1톤 트럭 적재함에 들어가는 아담한 크기지만, 탱크 바퀴에 힘 좋은 휘발유 엔진이 장착되어 있어 귤농사에 꼭 필요한 기계이다.

귤나무 사이사이를 다니며, 모아놓은 가지들을 입이 큰 입구 쪽에 밀어 넣으면 “과아앙~~”굉음을 내며 나뭇가지들을 갈아버린다.

며칠 전까지 함께 지냈던 귤나무에게 다시 천연비료가 되어 돌아가는 귤나무 가지들을 보며 다시 한번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다.

저 높은 한라산 백록담의 물줄기는 제주의 땅을 적시며 바다로 흘러가고 도태된 나뭇가지들도 다시 그 무리의 영양분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

기나긴 세월 굽이굽이 돌아온 마지막 인간의 여정 또한 한 줌의 흙인 걸. 이 또한 자연의 섭리인듯하다.

모든 만물의 최종 종착지는 대자연인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짧은 시간 왜 이리 치열하게들 사는 것일까?

돌고 도는 인생사. 한그루 귤나무의 삶과 다를 게 크게 없을진대, 단단한 나무처럼 진득하고 의젓하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봄이면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열매를 키운다. 가을이면 결실을 맺고, 겨울이면 땅으로 돌아가는 나무처럼 의연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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