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사소한 버릇들도 하나씩 늘어가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혼잣말을 할 때 음정을 넣는다는지. “아이고, 무릎아~ 날은 맑은데, 비가 오려나~”, “어디 보자~ 어디 보자~” 추임새에도 음정을 넣기도 한다. 특히나 어머님들이 집안일을 하실 땐 한 노래의 똑같은 부분을 무한 반복으로 읊조리실 때가 많다. 우리 엄마의 경우 찬송가를 무한반복 부르시거나 콩이와 일상의 대화를 주로 나누시는 걸로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익숙한 멜로디에 같은 가사를 반복하시는 엄마의 표정은 묘했다.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 가사를 흥얼거리시며 음식을 하시는 엄마의 얼굴엔 지난 세월의 그리움이나 아쉬움보다는 젊은 니들이 돈 버느라 고생이 많다는 측은지심의 표정이 보였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따라 불러보게 되는 이 가사가 범상치 않게 느껴져 엄마께 물었다.
“엄마, 그 가사가 원래 그런 거야, 그 곡 제목이 뭐예요?”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가 제목이야. 복지관에서 고고장구 칠 때 틀어주는 노랜데, 다른 부분은 가사를 못 외우는데 이 부분은 이상하게 따라 부르게 되더라. 웃기지? 그래도 할머니들은 다 좋아해.”
검색해서 찾아보니 통기타 가수로 유명하셨던 “서유석”님이 작사. 작곡한 곡으로 원 제목은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였다. 70대의 노가수가 자전적이고 위트 있게 풍자를 가미한 노랫말은 어르신들에겐 공감을, 자식들에겐 애잔함을 줄 수 있는 내용이었다.
특히나 “나는 젊어 봤단다” 뒤에 언제나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라는 후렴구는 언제나 마음만은 청춘이라고 외치시는 것 같았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시간은 되돌릴 순 없지만 엄마의 지금엔 “후회”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당신 인생에서 자식들과 제주에서 사는 지금이 가장 평온하고 풍요롭다고 말씀하시는 우리 엄마.
이 나이쯤 되면 이 정도는 다 아픈 거라고, 지금처럼 2~3년만 더 살다가 더 아프지 말고 깨끗할 때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실 때면, 그냥 하시는 말이시겠지 하다가도 진짜 그렇게 되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날 때도 있다.
배우 윤여정 씨가 한 예능프로에서 했던 말씀. “나도 70대가 처음 이잖니. 이렇게 나이 들어서 사는 게 보는 것처럼 쉽지 않아.” 이 말을 격하게 공감한다는 엄마는 “늙은 몸으로 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매일 적응되진 않아. 어떤 날은 내가 답답하고 짜증 날 때가 많거든. 그런데 매일 옆에서 보는 너희들은 얼마나 답답하겠니. 그런데 엄마는 그게 부끄럽지는 않아. 니들도 나이 들면 그렇게 될 텐데. 그때 가면 엄마가 좀 이해되겠지.”
늙어 간다는 건 이런 것일까? 예전과 달라지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적응하면서 받아들이는 과정들.
50대에 들어온 나에게 예고 없이 찾아온 노안은 돋보기라는 인생처음 걸쳐보는 불편한 옷을 입혀주었듯, 70대의 엄마의 노화된 몸에는 얼마나 더 불편한 장신구들이 더 필요한지 어린(?) 나에겐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어두워진 눈으로 뿌옇게 보이는 상대방의 얼굴뒤로 살며시 비치는 그 사람의 성품이나 살아온 시간들.
떨어진 소화력으로 예전처럼 많은 양을 먹지는 못하지만, 음식을 만든 이가 보여주려는 작은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준 미각.
진심을 다해 부른 노래 한 소절에서 큰 울림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귀까지. 예전엔 미처 몰랐을 것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간에 녹아 내 몸 구석구석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그런데 만약 서유석 님이 90대에 이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셨다면, 70대의 젊은이들은(?) 아직 늙었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엄마, 당신은 결단코 늙지 않으셨어요. 제가 본 서귀포의 70대 분들 중에 엄마가 가장 예쁘고 귀여우시거든요. 그러니까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당당하세요. 엄마는 “너는 늙어봤냐, 나는 늙고 있단다,” 아직 늙으시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