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향기

by 고작가

해마다 5월이 되면, 엄마는 항상 “너는 참 좋을 때 태어났어. 춥지도 덥지도 않고 지천에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하늘도 이렇게 파랗게 맑잖아. 너 태어날 때도 딱 오늘 같았는데.”라고 말씀하신다.

서울에서 바쁘게 살면서 계절이 바뀌는 걸 낮과 밤이 바뀌는 것처럼 여기며 살 때는 엄마의 그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들었었다. 하지만 서귀포에 살게 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5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되어버렸다.


서귀포의 봄은 육지보다 조금 빨리 찾아온다.

3월이면 노란 유채꽃이 지천에 피면서 봄의 시작을 알린다. 유채의 노란빛은 여리여리 하지 않다. 진한 작은 꽃잎이 군락을 이루어 누구나 멀리서 보아도 확연히 유채임을 알린다.

4월이면 부드러운 분홍잎의 벚꽃이 파란 하늘을 가린다. 벚꽃의 분홍빛은 유채의 강렬함과는 달리 여리여리 하다. 작은 바람에도 여린 꽃잎은 흩날리고 그 여린 분홍잎의 날림은 봄의 정령이 춤을 추는 듯하다. 스쿠터를 타고 벚꽃 잎이 떨어지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꽃잎으로 샤워를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녀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고 돌아간다.


이곳에선 유채와 벚꽃의 콜라보도 볼 수 있다. 유채가 늦게까지 피어있는 중산간으로 올라가면 땅에는 노란빛으로 머리 위엔 분홍빛으로 뒤덮인 꽃길을 걸을 수 있다.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이 길을 달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제주의 봄은 충만하다.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눈의 호사를 즐기기 위해 벚꽃 철이면 육지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참 많이들 내려온다.

벌써 4년째 이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전혀 질리지 않는 걸 보면 자연이 만들어주는 작품은 AI가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CG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 같다.


눈으로 즐기는 매력이 커서일까? 유채와 벚꽃은 그 화려함에 비해 향기는 강하지 않다. 하지만 5월이 오면 후각으로 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내일은 없는 것처럼 흐트러지던 벚꽃 잎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면 귤 꽃잎이 수줍게 귤나무 가지 위에서 고개를 든다.

귤꽃잎은 너무 작아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그 모양을 알아보기 힘들다. 그래서일까, 이 작은 잎은 그들이 세상에 왔음을 향기로 알려준다.

상상해 보자. 거대한 귤밭인 서귀포 전체의 귤나무에 귤꽃이 피면 그 향기가 어떨지?

그 상상함 보다 훨씬 넓고 은은하게 향기로 가득 채워진다. 서귀포에 내려와 처음 5월을 맞았을 때 아침이면 이 기분 좋은 향기가 어디서 나는 걸까? 하고 궁금했었다.

상큼하면서도 청량한 이 자연의 향기를 인공적인 향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이 천상의 향은 서귀포 전체에 가득하다.

거리에 사람들은 이 향기에 취해서일까?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향기를 글에 담고 싶다. - 고작가


5월의 향기를 담을 수 있다면 투명한 유리병에 가득 담고 싶다.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12월의 차가운 바람 앞에서도

5월의 향기는 여전히 매력적일 텐데


봄이 오면 피는 꽃들을 눈에 담아본다.

3월의 유채는 강렬한 노란빛으로

4월의 벚꽃은 여리한 분홍빛으로 담아본다.

5월의 귤꽃 향은 글에 담고 싶다.


5월의 향기는 소리 없이 다가와서

향기만으로 수줍은 고백을 한다.

그 고백을 들을 수 없음에

향기를 글에 담고 싶다.



그렇게 서귀포의 5월은 향기에 매료된다.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눈으로도 모자라 향기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봄이면 봄나물을 먹고, 봄에 피는 꽃을 보고 향기를 맡으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를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명품 향수를 뿌리고, 화려한 색상의 고급 옷을 걸치고, 값비싼 음식을 먹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던 그 시절엔 미처 몰랐던 5월의 향기는 그렇게 나에게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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