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노견의 산책

by 고작가

작지만 늙은 강아지. 백발의 작은 할머니. 함께 걷는 둘의 뒷모습을 볼 때면 슬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우리 집 막내 콩이의 나이는 10살. 우리 집 큰 어른 엄마의 연세는 77세.

제주로 오면서 자연스레 집에 계시게 된 엄마는 좋으시단다. 20년 가까이 식당을 하시다 백수 된 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우리 엄마는 당신이 스스로 아직 철이 안 든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엄마) 오늘 복지관에서 남원 사시는 할머니가 라인댄스를 따라 하는데, 맨 앞줄에서 너무 틀리는 거야. 그 할머니 때문에 선생님도 웃다가 수업이 끝났다니까.

(아들) 엄마. 그런데 엄마가 할머니라고 하면 그분은 몇 살이셔?

(엄마) 음, 나보다 많다는데 80은 안 됐다고 하니까, 78이나 79 됐겠지.

(아들) 그러면 언니라고 불러야 되는 거 아니야? 왜 할머니야. 엄마도 할머니면서.

(엄마) 애. 엄마는 손주가 없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할머니가 아니지. 그리고 나는 내가 아직 할머니라고 생각하지 않아.

(아들) 뭔가 이상한대. 우리 엄마라서 그런 게 아니고 나도 엄마는 할머니 같지 않긴 해.


이 대화는 시트콤에 나오는 대사가 아닌 실제 우리 모자의 대화 내용임을 상기시킨다.


(엄마) 콩아 너 아침 먹었어? 엄마가 배가 안 고프니까 콩이 아침을 줬는지 안 줬는지 모르겠네. 먹었어, 콩이?

( 콩 ) <꼬리를 살랑살랑 치며> 끄으응. 끙

(엄마) 맘마 먹었는지 엄마한테 말해봐. 맘마 줄까? 지금?

( 콩 ) <고개를 좌우로 격하게 흔들며 기지개를 켠다> 끄으응. 끙.

(엄마) 우리 콩이 배고프구나. 엄마가 콩이 아침을 안 줬나 보네. 우리 콩이 맘마 먹자.

( 콩 ) <사료통을 여는 엄마를 보며 앞발을 콩콩 구른다.> 멍 멍! <큰소리로 짖는다.>


콩이가 이날 아침을 처음 먹었는지 두 번째 먹은 건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콩이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거짓말쟁이라고 혼낼 수 있지만 콩이는 그저 제스처만 취했을 뿐이다. 나는 가끔 콩이가 사람말을 할 줄 모르는 걸 교묘하게 이용한다고 본다.

엄마가 혼자 집에 계시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콩이는 엄마의 껌딱지가 되어갔다. 엄마가 침대에 계시면 콩이는 침대 위나 바로 밑에, 엄마가 주방에 계시면 콩이는 싱크대 옆에 앉아서 엄마 바라기. 엄마가 화장실에 가시면 콩이는 화장실 문 앞에 엎드려 기다린다.

엄마와 콩이가 집에 있는 동안에 엄마는 쉬지 않고 콩이와 대화를 하신다.


(엄마) 콩아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

( 콩 ) .....

(엄마) 추우니까 돼지고기 넣고 비지찌개 해 먹을까? 형아가 좋아하잖아. 맨김 구워서 간장에 찍어먹고, 그치 맛있겠지?

( 콩 )..... <엄마와 눈을 계속 마주치고 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어쩌면 둘은 의사소통이 진짜 되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콩이는 태어난 지 2개월 정도 됐을 때 우리 가족이 되었다.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 하오를 떠나보내고 다시는 가족을 만들지 말자고 했던 우리는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에 콩이를 데려왔다. 유독 작고 못생겼던 꼬물이가 숨구멍에 코를 박고 콩콩 뛰는 모습이 안쓰러워 한번 안아보려고 한 것이 10년이란 시간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새끼 때부터 가족 말고는 모든 생명체에게 적대감을 보여 온 콩이는 성견이 된 지금까지 타인들을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베개보다도 작은 4kg의 작은 하얀 생명체가 우리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참 크다.


1. 손님들을 집에 초대하기 힘들다.

2. 콩이를 두고 가는 장기간의 여행은 계획하기 힘들다.

3. 하루에 한 번은 콩이를 산책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될 수 없다.

4. 식사 때마다 왠지 모를 작은 죄책감에 콩이의 눈치를 보게 된다.

5. 콩이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을 깨는 게 일상이 되었다.(어떻게 저 작은 콧구멍에서 그처럼 큰 소리가 날 수 있는지 직접 들어보지 않으면 거짓말이라 생각할 수 있다.)

6. 거실 화장실을 콩이와 함께 쓰는 나는 용변을 볼 때 문을 꽉 닫지 못한다.(콩이도 용변이 급하면 문을 밀고 들어와 함께 화장실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 이외의 수많은 콩이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들이 있지만, 우리는 콩이를 한 번도 싫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 사랑스러운 작은 생명체의 존재만으로도 우리 집은 행복해진다.

어느덧 하얀 생명체가 10살이 되었다. 사람 나이로 따지자면 70세 정도. 노견의 반열에 들어섰다. 예전만큼의 발랄함이나 지랄스러운 성격은 줄어들었지만 가족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더욱 깊어졌다. 한참 눈을 마주치고 미동도 하지 않는 콩이를 볼 때면 제가 사람이 된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엄마) 콩아, 우리 아프지 말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거야. 그거 한 가지.

( 콩 )...... <엄마를 쳐다본다. 하염없이>

(엄마) 콩아, 저기 해 지는 것좀 봐봐. 멋있지. 해야 오늘도 수고했어.

콩아 우리는 조금 있다 몇 년만 더 살다 지자.

엄마보다 먼저 가면 안 돼. 콩아. 알았지? 콩이 엄마랑 조금만 더 살다 가자.

( 콩 )..... <엄마를 깊은 눈으로 쳐다본다. 눈물을 흘린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아니면 이 녀석이 진짜 사람말을 알아듣는 걸까?>


콩이는 항상 엄마 옆에서 걷는다. 엄마는 그런 콩이를 내려다보며 흐뭇해하신다.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슬프다. 아니 든든하다. 둘의 존재는 나에게 천군만마니까.

앞으로 10년만 더 그 시간만큼만 둘의 뒤를 함께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