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수리하러 다니면서 집 상태를 보면, 그 집주인들의 성격이나 살아온 흔적들이 보일 때가 있다.
집이 오래되었음에도 집주인이 신경 쓰고 나름대로 손 보려고 애쓴 집들은 수리해서 살기 편하도록 해주기가 수월한 반면, 더 이상 참고 살기 힘들 정도로 방치했다가 수리를 의뢰한 집들은 허물고 다시 짓는 게 나을 정도인 상태일 때도 있다.
서울에서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나는 처음 제주 와서 주택을 고치러 다닐 때 많이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컸다.
서울의 바쁜 일상에서 집이란 단지 잠자고, 쉬는 공간이라고 여겼었다.
마당과 텃밭이 있고, 지붕이 있는 농가주택은 한번씩 TV를 통해서나 보기만 했던 낯선 공간이었다.
그런 내가 서귀포에 내려와 주로 농가주택을 고치러 다니고 있으니 집에 대한 개념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특히나 서귀포 시골 마을에는 은퇴 후에 육지에서 내려와 전원생활을 즐기는 분들이 많이 계신 곳이라 집이란 공간이 당신들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란 걸 알게 되었다.
요즈음 내가 리모델링 공사를 한창 하고 있는 주택은 서귀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남원에 위치한 오래된 집이다.
집주인 분들은 육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시다 퇴직 후에 내려오신 지 7~8년 되신 분들로 집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셨다.
지붕과 별관 공사는 몇 년 전에 하셨고, 이번이 두 번째 공사로 오래된 거실 바닥과 벽체와 천장을 모두 바꾸는 큰 공사다.
넓은 앞마당에는 잘 정돈된 잔디밭과 아기자기 심어놓은 꽃나무와 정원수들이 있고, 뒤 텃밭에는 다양한 쌈채소와 배추, 무 까지 직접 기르고 계셨다.
넓은 창고에는 두 분들의 취미생활에 필요한 장비들이 잘 정리되어 있는 누가 보아도 부러워할 멋진 주택이다.
그렇게 노부부는 은퇴 후 자신들이 가꾼 집에서 행복한 노후생활을 즐기고 계셨다.
남편은 색소폰을 연습하고, 목공 선반 위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나무들을 다듬고, 아내는 텃밭의 채소와 꽃나무를 살피며 하루의 대부분을 집 안에서 보내셨다.
70이 가까운 남자 선생님은 우리가 작업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려고 뒤에서 항상 정리정돈을 해주시고, 여 선생님은 매일 점심 손수 밥상을 차려 주신다.
이런 주인들이 사시는 집을 어떻게 허투루 고칠 수 있을까?
우리 사장님을 비롯한 작업자들 모두 정말 세심히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건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집이란 누군가에겐 그저 잠을 자는 공간 일수도 있지만, 어떤 이들에겐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기에, 집을 고치는 일이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만큼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다.
열흘 정도 후면, 완전 다른 공간으로 바뀔 집을 보며 행복해하실 노부부를 상상해 보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집을 고치러 다니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이 뿌듯한 기분은 이 직업의 또 다른 매력이란 걸 차츰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