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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가 Oct 08. 2023

노모표 아침식사

벌써 30~40년 전 일이지만, 예전에는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다녔다.

그 시절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러셨듯이 

우리집도 엄마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9년 동안 도시락을 싸 주셨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엔 거의 20년 가까이 엄마가 차려주신 아침밥이나 도시락을 잘 먹지 못했다.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할 때도 아침에 출근해서 바쁘게 점심장사 준비를 마치면 

오전 10시가 돼서야 겨우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식당들이 비슷한 분위기다.


서귀포에 와서 노가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침밥을 꼭 챙겨 먹으려고 한다. 

보통은 오전 5시 30분에 기상해서 6시 즈음 아침식사를 하는 편이다. 

아침을 거르고 현장으로 출근하는 작업자들도 많지만

"뱃속에 든 게 있어야 힘도 쓸 수 있다"는, 현장일에 잔뼈가 굵은 사장님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10년 넘게 오전 10시에 먹던 아침밥을 오전 6시에 먹으려니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70세가 넘으신 엄마도 힘든 일하러 나가는 아들을 잘 먹여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새벽같이 일어나 국과 밥을 새로 하시고 힘이 날 만한 반찬을 챙겨주셨다. 

큰 돈을 벌러 나가는 것도 아닌데 괜히 유난을 떠는 것 같아 말려보기도 했지만 

당신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모성애를 이길 순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쯤 제대로 된 한상 차림을 받고 출근했지만, 이른 시간 식사로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따끈한 누룽지에 달걀과 밑반찬 한 두 가지를 놓고 간단히 식사를 해 보았다. 

조리시간도 줄어들고, 먹기에도 거북하지 않은 게 이른 아침식사로는 제격이었다. 

간단한 음식이라서 직접 해먹고 나가겠다고 해도 엄마의 고집은 완강하셨다. 

“자식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만큼 세상에 좋은 게 없다잖니. 

  아직 엄마 기운이 남아 있을 때, 엄마밥 한 끼라도 더 먹으면 좋지."

이런 엄마의 의지는 2년이란 시간동안 하루도 꺾이지 않고 있다.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자, 아침에 뜨거운 누룽지를 먹는 게 덥게 느껴졌다. 

이런 마음을 읽으셨는지 엄마는 틈틈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셨다. 

‘건강한 아침식단’, ‘여름에 먹으면 좋은 아침식사’ 

유튜브는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훌륭한 스승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엄마표 하절기 아침식단은 

‘샐러드와 달걀찜, 두유’ ‘과일과 단호박찜, 우유’ ‘갓 구운 토스트와 감자 샐러드’ 같은 양식 메뉴였다.

엄마는 2~3일에 한번씩 텃밭에 가서 각종 쌈잎과 치커리,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직접 따 오시고 

적당한 채소가 없는 날엔 마트에서 장을 보셨다. 

호박이나 과일, 견과류는 오일장에서 신선한 것만 사다가 소분해서 냉장보관을 하셨다. 

그렇게 정성껏 준비하신 재료로 만든 샐러드가 어떻게 맛이 없겠는가?


평생 국물이 있어야 밥을 먹던 아재 입맛이었지만 

신선한 채소에 적당히 올라가 있는 제철 과일과 견과류, 

여기에 상큼한 발사믹 유자 드레싱을 뿌려먹는 샐러드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달걀도 하루는 반숙 프라이에, 다음날은 부드러운 계란찜,과오믈렛, 달걀말이까지 다양했다. 

계란이 물릴 때쯤이면 오일장에서 사 오신 제주도 미니 단호박 속을 파내고 

그 안에 달걀을 넣고 치즈가루를 뿌려 단호박 찜을 해주셨다. 

이 레시피 역시 유튜브의 도움을 받으셨다는데 

조금만 먹어도 속이 든든하고 촉촉해서 목도 메이지 않는 게 아침식사 대용으로 최고였다.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고 이른 아침 학교로 향하는 아들손에 도시락을 쥐어 주시던 

예전의 엄마는 어느새 머리가 허옇게 샌 백발의 노모가 되셨지만

엄마표 정성이 듬뿍 담긴 아침밥의 힘으로 오늘도 하루를 거뜬히 들어올린다.


“엄마, 엄마표 맛있는 아침밥을 20년은 더 먹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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