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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가 6시간전

엄마의 된장찌개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80년대.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는 우리 집 창고방엔 냄새나는 메주가 새끼줄에 매달려 있었다. 지금은 그런 메주를 보기조차 힘들다. 제주에 내려온 후로 가끔 오일장에 나가보면 연세가 80은 족히 넘으신 할망들이 집에서 직접 띄어 오신 메주를 소쿠리에 담아와 파시는 걸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귀한 메주로 어떻게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귀한 메주로 만든 된장의 맛을 본 시간은 길어야 10년 정도. 나머지 30년 넘는 시간 동안 먹은 된장은 모두 공장에서 만든 것이었으리라. 이제는 그 된장 맛이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알기에 된장을 만들어주는 식품 공장에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집은 대기업 제품을 뒤로하고, 합동된장을 쭉 쓰고 있다. 엄마의 말씀을 빌려오자면, 합동된장은 콩깍지를 곱게 갈지 않아 옛날 된장 맛이 난다고 하신다. 

 한국 사람들에게 된장찌개의 맛을 설명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간혹 된장 맛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나 90년대에 군 생활을 해본 남자들이라면, 아무리 된장국을 좋아했어도 제대 후 한동안은 된장국을 멀리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들이 있을 거라고 짐작된다. 하지만, 조선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집 밖에서 사 먹는 식당 밥이 물려질 때면 어린 시절 엄마가 끓여 주시던 뜨끈한 한 뚝배기의 된장찌개의 맛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오늘 내가 먹은 된장찌개는 쪼질쪼질한 강된장에 막 쪄낸 부드러운 호박잎이다. 

추운 겨울밤. 호박과 두부를 넣고 보글보글 끓인 국물이 제법 있는 된장찌개는 얼었던 몸과 위장을 서서히 녹여준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먹게 되는 스탠더드 된장찌개의 맛이다. 하지만, 오늘의 자박자박하고 짭조름한 강된장은 겨울보다는 여름에 먹어야 제 맛이다. 소고기와 양파를 다져놓자. 다시마 우린 물을 뚝배기에 붓고 나박나박 썰은 무를 넣고, 고춧가루, 다진 파와 마늘도 함께 넣자. 다져놓은 고기와 양파 그리고 집된장을 듬뿍 넣어야 한다. 씹히는 맛을 좀 더 원한다면 삶은 우렁이를 한 움큼, 매운맛을 추가하고 싶다면 다진 청양고추 한 움큼 넣어주면 된다. 짭조름한 강된장에 큼지막한 호박잎을 푹 담갔다가 뜨끈한 밥 위에 얹어 크게 한 입 씹는 맛이란, 상상만 해도 아래턱에 침이 고인다. 매운맛이 아쉽다면 입안의 호박잎 쌈이 모두 없어지기 전에 껍질이 얇은 청양고추를 쌈장에 찍어 입안으로 넣어주면.... 그걸로 끝. 마무리. 엄지 척이 절로 올라간다. 매운맛으로 입안이 얼얼해지고, 몸이 더워지면 시원한 막걸리를 쉬지 않고 들이켜 보자.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라고 했던가, “인생 별거 없다.”란 감탄사가 단전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올라온다.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좁은 상 주위에 둘러앉아 함께 숟가락을 담가가며 맛있게 먹었던 그때의 그 맛이다.  그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드셨던 막걸리 맛도 지금처럼 맛있었겠지. 길게 함께 할 수 없었던 그때의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매운 음식 드시는 걸 점점 힘들어하시는 엄마도 오늘만큼은 연신 강된장에 큰 호박잎을 담그신다. 어쩌면 엄마도 그때 그 시절의 여름밤이 생각나시는 걸까?

긴 장마에 끈적끈적한 밤이 길게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엄마표 강된장에 오늘 밤은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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