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 살아보니, 자연이 주는 선물을 참 많이 받고 있구나라고 생각 들 때가 많다. 매일 보아도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과 바다를 보며 향기로운 들꽃 향기에 새소리와 바람소리까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들이 행복해진다. 이런 행복한 일상도 배가 부른다음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오늘은 서귀포 바다가 주는 물고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서귀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선은 당연 갈치다. 예전엔 갈치가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던 거 같았는데, 요즈음 갈치는 비싼 생선으로 꼽힌다. 새벽 어판장에 나가보면 어른 손가락 4~5개 정도 넓이의 은색 갈치들로 경매장 바닥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비늘만 긁어내고 회로 떠서 바로 먹어도 좋을 싱싱한 갈치들이 매일아침 어판장에 쌓여있지만, 산지인 이곳에서도 상품의 생물 갈치는 비싸서 귀한 손님이 오지 않으면 자주 사 먹지 못한다.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어판장엔 갈치 말고도 싱싱한 생선들이 차고 넘치니까. 더욱이 갈치 이외의 생선들은 잡어로 분류되어 만 원짜리 한 두장 이면 가족들이 다 먹지 못할 만큼 사 올 수 있다. 아쉽게도 이런 잡어들은 회감으로 먹을 수 없고 구이나 조림으로 조리해서 먹어야 한다. 하지만 아파트에 사는 경우 집에서 생선을 굽는다는 게 여간해선 쉬운 일이 아니다. 기름이 튀는 것도 문제지만 냄새도 쉽게 빠지지 않아 우리 집에선 어판장 생선을 구입할 때면 조림을 자주 해서 먹는 편이다. 계절마다 잡히는 잡어의 종류가 다르지만, 한여름을 제외하곤 고등어, 삼치, 가쓰오, 샛돔, 장대, 정어리, 놀래미 등은 꾸준히 나오고 가자미나 아나고, 복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고등어나 삼치, 가쓰오는 물 좋을 때 사서 지인들과 회로 자주 먹는다. 고등어는 오로시(뼈와 살을 분리하고 껍질을 벗기는 작업)를 해서 미림에 20분 정도 담가 두었다가 맨김을 구워 간장양념장에 찍어 씻어놓은 신김치와 함께 싸서 먹으면 밥반찬으로도 좋고 소주 안주로도 제격이다. 삼치는 살을 발라 껍질을 벗기지 않고 키친 타월에 감싸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살짝 얼은 상태로 두툼하게 썰어 간장에 찍어 김에 싸서 먹는다. 최근 들어 바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참치 종류인 가쓰오도 많이 올라온다. 고등어나 삼치에 비해 살이 두껍고 물러서 다소 맛은 떨어지지만 배 쪽 살은 고소 해서 기름장이나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먹을 정도는 된다. 횟감으로 먹지 못하는 샛돔, 장대, 놀래미, 정어리를 비롯한 다른 잡어들은 바닷가에서 손질을 한 후 집으로 가져온다. 무와 감자를 두툼하게 썰어 냄비 바닥에 깔고 물을 붓고 어느 정도 익을 때까지 미리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양조간장에 고춧가루, 다진 마늘, 다진 생강 조금, 미림, 설탕을 넣고 양념장을 만들어 생선에 골고루 발라준다. 말려놓은 시래기나 고사리가 있다면 미리 불려 놓았다가 생선위에 덮어주고 뚜껑을 닫고 은근하게 조려준다. 파, 홍고추, 청고추를 어슷 썰어 고명으로 얹어주면 훌륭한 생선조림이 완성된다. 생선 자체가 워낙 싱싱함으로 비린내가 나거나 살이 퍽퍽하지 않고 살이 달다. 밥과 함께 먹으면 밥도둑이요, 소주나 막걸리와 함께 먹어도 손색없는 안주거리가 된다.
작년에 육지에서 놀러 온 후배들에게 이 잡어 생선조림을 해준 적이 있었다. 고맙게도 후배 녀석들은 제주에서 먹은 음식 중 단연 최고였다며 지금까지 단톡방에서 회자되곤 한다. 식당에 가서 비싼 갈치조림을 사 먹기보다는 잡어를 손질해서 직접 조리해 먹는 이 음식이 더 맛있을 수 있는 건 산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이지 않을까 싶다. 비교적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어서 자주 해 먹진 못하지만 반가운 이들이 멀리서 찾아올 때면 한 번씩 옛 실력을 발휘해 보곤 한다. 서울에서 십 수년을 돈을 받고 음식을 팔았던 나의 경험이 섬 생활에서 이런 식으로 도움을 줄진 몰랐지만, 인생이란 게 살아볼수록 재밌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