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이가 마른날엔 흐린 눈과 360p
유럽, 특히 독일에 와서 '느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진부한 주제입니다. 행정처리도, 배송도, 사람들의 걸음걸이마저도 한국의 '빨리빨리'와는 다른 시간의 흐름과 문화적 시선에 있다는 것을 대부분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답답하다고 불평하는 것 대신, 이 새로운 속도에 적응하며 '열화 당한' 제 모습을 기록합니다.
거주지 안멜둥(전입신고)을 갓 마친 6월 10일경, 저희는 이사 들어온 집의 인터넷 설치를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설치 기사의 방문 예정일은 아직 3일이나 남아있습니다. 한국에서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와 기가 와이파이는 이제 아득한 전생의 기억 같습니다. 약 한 달간 저희 가족 다섯 명의 온라인 생활은, 제가 임시로 개통한 수십 기가짜리 프리페이드 선불 유심 하나의 테더링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무신경하게 봐오던 웹서핑과 평소 신경 쓰지도 않던 자동 업데이트, 동기화 등으로 인해 애진작에 그 물도 다 말랐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에게는 3~4일에 한 번씩 치르는 새로운 일과가 생겼습니다. 먼 옛날 선조들이 새벽마다 마을 공동 우물로 물을 길으러 나갔듯, 저희는 온 가족의 디지털 기기를 제 배낭에 짊어지고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동네 공공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도서관 인터넷도 한국에 비하면 매우 느릿합니다.) 이름하여, '데이터 길어오기'입니다. 아이들의 태블릿 세 개, 아내와 저의 노트북, 저희의 휴대폰, 그리고 이 모든 기기를 위한 보조배터리 한두 개와 충전기들까지. 배낭을 멘 어깨는 실로 10kg을 넘는 무게로, 묵직합니다. 여기에 실제로 물까지 각자 한 병씩을 둘러매고 길을 나서는데요, 어깨가 욱신한 것이 마치 물지게를 지고 마을 저편부터 10리 길을 걷는 옛사람이 된 듯한 기묘한 기분입니다. 심지어 가는 길 빈 지게의 가벼움조차 허락되지 않는 21세기 노새입죠.
그렇게 '데이터 양동이'를 등짐 가득 채워와도, 회사, 학교, 유치원 등 아직 제대로 된 일상이 없는 저희에겐 그마저 금방 바닥을 드러냅니다. 진짜 정보소외계층으로의 삶은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본래 영상의 화질에 지독히도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는 최소 FHD(1080p)를, 모니터나 대형 TV로는 어지간하면 2K나 4K가 아니면 눈이 불편하다고 느끼던, 일종의 '화질 플렉스'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데이터 잔량을 보며 유튜브 자체를 들어가질 못합니다. 정말 참다 참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집안일 중 하나인 설거지를 할 때만은 귀를 틀어막고 나를 위한 쾌락을 허하는데, 유튜브 영상의 톱니바퀴를 눌러 주저 없이 360p, 때로는 240p를 선택합니다. 뭉개지는 픽셀의 경계를 조금이라도 무디게 보려고, 저도 모르게 눈을 게슴츠레 뜨고 화면을 봅니다. 마치 예전 그 무언가(?) 모자이크가 불편하던 때처럼 말이죠. 정말 처절하죠?
작년인가, 구글이 디지털 환경보호를 위해 유튜브의 기본 화질을 720p로 낮춘다는 소식에 '아니 저런다고 누가 저화질(감히 720을 저화질이라고 칭했죠) 눈만 불편하게 왜 저래'라며 콧방귀를 뀌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고고하던 잔망화질병은 독일에 들어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말끔하게 치유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이주 정착에 필요한 다른 용무가 바빠 우리의 '데이터 길어오기'를 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설거지를 해야만 했고, 데이터 정말 소진된 후 400 kbps로 속도가 제한된 로밍 데이터로 유튜브를 켰습니다. 360p 영상이 4초마다 멈췄지만, 저는 꿋꿋하게 그걸 보며 설거지를 합니다. 그러다 며칠 만에 다시 도서관에 들러 720p 영상을 재생한 순간, 제 입에서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니 세상에 720 화질이 이렇게 미려하다니?"
지금 이 순간에도 800메가의 잔여 데이터량을 점검하며 글을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에 계신 분들은 부디 4k(적어도 1080)를 마음껏 즐기십시오.
당신이 잠자기 전 무심코 누리는 그쇼츠는 어제의 제가 땡볕에 땀 흘리며 길어온 것보다 선명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