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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쑤니 Jan 17. 2023

친정은 도대체 언제가?

명절이다. 불량 며느리의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다음 주면 설날이다. 그런데 즐겁지가 않네?


나는 둘째 며느리이다. 명절에 친정에 갈 생각만 하는 불량 며느리. 

결혼 5년 차까지만 해도 명절만 되면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과 엄청나게 싸웠다. 이래서 명절 이후에 이혼율이 높구나를 절실히 느끼면서. 남편과 난 둘 다 마흔이 넘어서야 겨우 휴전 상태에 접어들지 않았나 싶다.


'며느리 노릇이 뭘까? 왜 이러고 살아야 하지?'


명절마다 반복되는 다툼의 원인은 바로 '친정에는 언제가?'였다. 이런 건 남자가 중간에서 역할을 잘해주어야 하는데 막내아들인 내 남편은 명절만 되면 정말 남의 편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살길을 찾기로 했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착한 며느리로 살다가는 어머님 아들과의 사이도 나빠질 것 같기 때문이다.


당일 형님의 동태를 잘 파악해야 한다. 형님이 친정에 가실 때 나도 같이 일어나야 한다. 핸드폰을 확인하면서 가방을 정리하시면 나는 은근슬쩍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짐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눈치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형님은 결혼 26년 차이시고 내공이 막강하므로 잘 묻어가야 한다. 


"동서도 친정 가야지?"

"네, 형님 가실 때 같이 나가죠 뭐."


일종의 며느리들 간의 신호이다. 참고로 '며느리들이 다 가면 어르신은 어떻게 하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명절 내내 친정에 머무르고 있는 시누이가 계신다. 시누이는 시댁에 오전에 잠시 들린 후 친정으로 곧장 오기 때문이다.


"가려고?"

"네, 가야죠."


그렇다고 일찍 친정으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새 오후 4시이니.


코로나 사태이전까지만 해도 시댁에서는 제사를 지냈다. 명절 아침에 제사를 지내고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과일과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1시. 남의 편에게 속삭인다.

'근데 우리 집에는 언제가?'

시댁에 있을 때 우리 집은 바로 친정이다. 너희 집, 우리 집 이렇게 나누는 것이 유치하긴 하지만 나도 엄마와 아빠 보고 싶다.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시어머니의 목소리.

"큰댁에 지금 가봐야 되지 않겠니?"


'큰댁? 지금? 2시인데?'


"잠깐 다녀와."


큰댁 방문도 코로나 이후로 사라졌지만 1시가 넘어 어른들을 뵙고 오면 거의 5시, 나의 참을성은 한계에 다다르고 그때부터 나의 짜증은 극에 이른다. 이 정도면 남의 편도 내 눈치를 살핀다.

이때 시어머니의 말씀,

"저녁은 뭐 먹을래?"


'허걱...'

그제야 남의 편은 한마디 한다.


"저희 처가댁 가서 먹어야죠."

"밥 안 먹고 가려고?'


어둑어둑해져서야 친정으로 출발하는 차 안의 공기는 냉랭하다.


"어, 엄마 이제 출발해요. 7시 전에는 도착할 것 같아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지만 여기까지만 하려고 한다.


다가오는 설에도 난 눈치게임을 해야 하겠지. 그래도 요새는 해 떠있을 때 친정으로 출발하니 많이 발전했다. 

고부갈등이 없는 집이 어디에 있으랴. 하지만 남의 편이 효자라면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된다. 만약 결혼하려는 남자가 효자라면 불량 며느리로 찍히더라도 서둘러 스스로 살 길을 도모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명절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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