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다. 한낮에도 영상 5도를 넘기기 힘들다. 바람 부는 날엔 머리까지 시리다. 머리가 짧아 슬픈 계절, 겨울이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잔뜩 신난 아이가 있으니... 그 녀석은 우리 집에 있다. 작년 늦가을쯤 학교 친구들과 자전거를 탄다길래 그러라고 했는데,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원래 타던 미니벨로 대신 요즘 유행하는 '픽시' 자전거를 사달란다. 따뜻해지는 봄까지 기다려... 네 용돈 모은 거로 사... 등등 갖가지 핑계를 대며 구매를 미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던가. 결국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
tmi. 픽시 자전거는 앞뒤 브레이크 장착 및 각종 보호구 안전장비 착용 필수!
문제는 이 추운 날씨에도 자꾸 밖에 나가려고 한다는 것. 날이 좀 풀렸길래 한낮에만 잠깐 놀다 오라고 했더니 저물녘까지 안 들어오다 결국 6시가 넘어 돌아오셨다. 그것도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재밌었냐... 그래. 그거면 됐지. 아니다. 넌 콧물과 감기를 같이 달고 온 겨 이 좌식아.
하나 그따위 콧물에 꺾일 녀석이 아니다. 아빠 괜찮아를 연신 외치며 다음 날에도, 주말에도 열심히 라이딩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 여행을 떠난 친구의 대타로... 내가 당첨되었다.
Aㅏ.....
단언컨대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인간이다. 물론 더위도 많이 탄다. 하여간 변온동물의 미토콘드리아를 가진 자로서 지금 날씨에, 그것도 밖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아들아, 걷는 것도 추워서 안 나가는데 자전거를 어떻게 타냐. 이번 주는 쉬고 다음 주에 친구랑 타. 아빤 안 돼. 아니, 못 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던가... (2) 힘없는 아비가 결국 끌려 나왔다. 귀마개에 모자에 마스크까지 완전 중무장을 하고 나왔건만, 역시 춥다. 장갑을 뚫고 들어오는 한기에 손끝이 시리다. 발은 또 왜 이렇게 춥냐. 등짝마저 오들오들거린다. 젠장, 안 추운 구석이 없어... 그런데도 이 녀석은 좋아 죽겠는 표정이다. 안 추워? 응, 하나도 안 추워. 얌마 너 지금 볼때기가 시뻘게!!
탄천을 따라 죽전을 지나 분당 쪽으로 속도를 낸다. 걷는 사람, 농구하는 사람, 줄넘기하는 사람...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내가 너무 겁을 먹고 있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이 추위, 나름대로 견딜 만하다. 거짓말 조금 보태 시원한 느낌까지 들었으니 말 다했다.
뒤에서 따르릉 소리가 들려 비켜주니 어느 아재가 노란색 카카오바이크에 앉아 쉴 틈 없이 페달을 밟는다. 전기자전거로도 운동할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다. 경쟁심이 발동한 부자가 카카오 아재를 추월하기 위해 용을 써봤지만, 25km/h 일정한 속도로 달아나는 노랑이를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재... 잘 가...
정자역 부근에 도착했다. 애초에 반환점으로 정한 곳이다. 십몇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렸으니, 몸이 뜨겁다. 안은 덥고 바깥은 추운... 아주 그냥 멜랑꼴리한 현상이다. 눈에 보이는 스벅을 찾아 벌컥 문을 열었다. 자리에 앉아 옷을 하나씩 벗어젖히는데 괜히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몰랑! 덥다고! 달달한 밀크티와 딸기라떼로 당 충전을 완료했다. 그리고... 아쉬워하는 녀석의 말을 애써 외면하고 집에 가야 한다고 윽박 아닌 윽박을 지른다. 얘, 다음엔 한강 가든지 어쩌든지... 오늘은 패스야 패스.
돌아오는 길. 맞바람이 분다. 아 놔... 훨씬 더 춥다. 한겨울 샹마이웨이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드는 생각은... 없다. 오로지 빠르게 집에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뿐. 거리가 늘어날수록 허벅지는 물론이고 안장에 닿은 응꼬 근육까지 아프다. 아들아, 아프냐. 나도 아프다.
간신히 동네 입성. 그새 붕어빵 아주머니가 마차를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붕어빵 세 개에 2천 원. 나 하나, 아이 하나, 남은 건 집에 있는 아내 몫이다. 갓 구운 붕어빵을 손에 들고 호호 불어 한입 베어 문다. 앗뜨뜨 입천장을 조심해야 한다. 추운 거리에서 붕어빵,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욕조가 없음을 한탄하며 샤워를 마쳤다. 미리 전기장판을 켜놓은 이불속으로 쏙 들어간다. 이렇게 포근한 적이 있었던가. 아들 녀석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늦은 낮잠을 청한다.
밖은 추운데, 안은 따뜻하다.
겉은 차갑지만, 속은 뜨겁다.
어쩌면 이것은 원인과 결과다. 바깥이 춥고 차갑기에 더 뜨겁게 살아야 하는 계절.
나의 겨울은 그렇게 살아지고 있다.
정자역에서 인증샷 찍는 상남자
ps. 썸네일 사진 = 우리의 최종 목적지 = 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