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보 가는 길

by 레이크스트림





그때 그 시절, 수안보엔 와이키키가 있었어. 낮에는 수영장과 테마파크, 밤에는 카지노와 클럽까지 운영하던 대형 유원지였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하면 알려나.



시내에서 수안보까지는 차로 20분 남짓 걸려. 뻥 뚫린 3번 국도를 타면 금방이야. 지난가을에도 아들 녀석과 온천욕을 하고 왔더랬지. 하지만 와이키키에서 수영을 배우던 시절 3번 국도는 지금처럼 4차선 도로가 아니었어. 달천을 따라 이어진 옛길로 한참을 가야 했거든. 굽이굽이 돌 때마다 차 안에서 온몸이 좌우로 쏠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니까.



동네 형들과 자전거를 타고 살미까지 갔던 일도 떠올랐어. 달천에서 멱을 감고, 물고기를 잡고, 옷을 말리고... 브레이크가 고장 나 아찔했던 언덕길까지.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오리탕 집도 있었어. 가끔 거기서 외식을 했었지. 형, 누나도 그땐 다 어렸어. 생각해 보니 옛길에 얽힌 추억이 많네.



옛길을 따라가면 많은 걸 볼 수 있어. 고즈넉한 달천의 풍경, 월악산이 품은 작은 봉우리들, 길가에 피어난 코스모스까지. 고속국도에서 빠르게 달릴 땐 제한속도랑 신호등만 쳐다보게 되더라고.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옛길을 지나가기도 해. 시간을 천천히 보내주고 싶어서 말이야.






작년 한 해는 정말 파란만장했어. 16년 동안 지켜왔던 사무실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었거든. 나이 먹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니 참 힘들더라. 변화라는 게 그래. 필요한데 두렵지. 낯선 곳,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야. 하지만 어쩌겠어. 이겨내야지.



정신없이 살다 보니 정말 정신이 없어지는 경험을 했어. 글쓰기는 고사하고 책도 한 권 못 읽는 날이 반복됐지. 여력이 없었다고나 할까. 뭐라 말하든 핑계겠지? 하지만 자기계발보다 생존이 더 중요한 문제였어. 돈벌이를 먼저 챙겨야 다른 걸 할 수 있겠더라. 여전히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지만... 곧 좋아지겠지?



지금까지의 인생은 고속도로에 올라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오래된 자동차가 아니었을까 싶어. 그래. 욕심이 많았어.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 나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주고, 또 많이 받고, 늘 불안했지.



편안해지고 싶어. 변화도 좋지만, 지금은 안정이 필요해.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다 보니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 빠르게 흐르는 시간 열차에 탑승하지 말고, 고즈넉한 옛길을 따라 걷고 싶어. 고속도로보단 국도 같은 삶을 살았으면 해. 천천히 마음에 여유를 가득 채우면서 주변 풍경도 눈에 담아야지.



국도의 굽이도는 풍경이 아스라이 정겨워지는 날이야.


우리, 올해는 더 '정겨웁게'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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