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라고 하더니 아직 비는 안 오고 뜨겁기만 하다. 문제는 이 더위가 밤까지 이어진다는 거다. 엊저녁만 해도 무덥고 습한 공기가 온 집안을 채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틀었다. 나는 더위에만 약한 게 아니었다. 습도에는 완전 쥐약+젬뱅이였다. 빌어먹을 한없이 허약한 체질…….
하여간 이런 날엔 제습과 냉방이 적절히 섞인 '에어컨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데워진 공기를 빠르게 식히려면 스피드 냉방을, 온도가 잡혔는데도 쾌적하지 않다고 느껴지면 제습 모드를 선택한다. 에어컨과 선풍기(서큘레이터)를 병행하는 '양동작전'과 끈적한 몸을 샤워시키는 '셀프처방'을 곁들인다면 한층 빠르고 강력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제 잘 시간이다. 뽀송하고 경건한 몸가짐으로, 캠핑용 자충 매트를 편다. 적당히 바람이 들어가 폭신하다. 시원한 소재로 된 패드를 깔고 방금 건조기에서 나온 수건으로 베개를 덮는다. 땀 많은 아재의 수면 의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당연히 거실, 에어컨 앞 2m 지점이다.
잠자리 초기 세팅 희망 온도는 27도. 직바람은 차기에 송풍 방향을 상단으로 하고 얇은 이불을 덮는다. 피곤했던 하루가 빠르게 잠을 부른다. 그렇게 깊은 잠에 들었……는 줄 알았는데 두 시간도 안 되어 깨버렸다.
춥…… 춥다. 몸뚱이가 돌돌 말려진 지 벌써 오랜진데 어쩌다 삐져나온 발가락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따뜻한 곳을 찾아 꿈틀거리는데 이상하게 넣어도 넣어도 넣어지지 않는다. 그제야 이불의 가로세로가 바뀌었음을 깨닫는다. 화딱지가 나 이불을 차 제자리로 돌린다. 잠 다 깼다.
희망 온도를 28도로 변경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얼른 자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이너피스……는 개뿔. 또다시 잠에서 깼다. 목덜미까지 올라온 이불을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덥다. 덥다. 습하다.
다시 변경. 27도. 춥다. 28도. 덥다. 이런 샹그렐라.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에어컨 회사에 전화를 걸어 27.5도가 없는 이유를 따지고 추후 출시되는 제품에 반드시 포함하도록 할 테다.
회사 지하에 있는 운동 시설을 종종 이용한다. 사실 오래 쉬고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 스트레칭에 맨손 운동뿐이지만, 가급적 매일, 적어도 주 3회를 유지하는 게 목표다. 운동 후에는 사우나에 간다. 간단하게 샤워하고 5분 정도 반신욕을 한다.
온탕 온도 39도. 어제는 40도여서 처음 들어갔을 때 뜨겁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오늘은 딱 좋겠다. 그런데 웬걸. 왜 이렇게 뜨뜻미지근한 걸까. 뜨거워야 온탕이지, 라는 내로남불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여기에도 39.5도가 있어야 할까?
'1도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별것 아닌(혹은 그렇게 느껴지는)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가 별것이 아닐 수 있다. 에어컨 설정 온도나 사우나 온탕 온도는 그저 거들 뿐.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고작 평소보다 10분 늦게 일어났는데 차가 막히고 지하철은 미어터지고 지각 직전까지 갈 수 있다는 인생의 진리를.
저녁을 먹고 곧바로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반성합니다……)과 짧은 시간이라도 밖에 나가 걷는 사람 중 누가 더 건강하냐는 질문은 굳이 하지 않겠다. 유튜브 웹툰 넷플릭스 드라마 대신 책 한 권을 권하지도 않겠다.
지금 내가 누구에게 뭐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므로…….
오랜 시간 열정적으로 게을렀다. 책도 안 읽고, 글도 안 쓰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그렇게도 신속하게 등과 바닥을 밀착시켰다. 웹툰과 릴스에 취해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마음으로 되뇌면서도, 벌떡 일어나지 못했다.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했더라면, 하다못해 일어나 1분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잠들었다면 어땠을까.
'1도의 변화'는 어렵지 않다. 아주 잠깐, 짧은 시간, 쉬운 방법으로 움직이면 된다. 책 읽기 싫으니까 딱 한 장만 읽기, 글도 쓰기 싫으니까 한두 문장만 쓰기, 운동도 하기 싫으니까 플랭크 1분만 하기. 설거지하기 싫으니까 앞접시 두 개만 씻기(아 이건 아니구나……).
슬럼프에 빠져있는 동안, 단 1도라도 움직여 볼 걸. 참 못나게 보냈다.
뒤집어 본다. 앞으로 또 이렇게 멘탈이 붕괴되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그때는 죽었다 깨어나도 오늘의 '1도'를 잊지 않으련다. 이쯤 되면 에어컨 회사에 감사해야 하는가. 아니다. 본격적으로 비가 오는 걸 보니 오늘도 쉬이 잠들기는 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