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출장길에서 마주한 또 다른 행복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by 낙하산부대

나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다.


싱가포르에 있는 회사 임원과의 미팅을 위해 2박 3일 일정으로 떠난 출장길이다. 몇 차례 가족여행이나 개인적인 목적으로 해외를 찾은 적은 있었지만, 회사의 일을 위해 국경을 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행기 창가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니 낯선 긴장과 묘한 설렘이 교차한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일’이라는 무게가 더해지니 이 시간은 내게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새벽 세 시, 들뜬 마음에 일찍 눈을 떴다.


뒤척이다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집 앞에서 탄 리무진 버스는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도로를 달려 인천공항에 닿았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공항은 이미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귀국을 앞둔 외국인의 지친 얼굴, 새 여행을 떠나는 가족의 설레는 표정, 그리고 혼자 배낭을 멘 청년의 단단한 눈빛까지, 각자의 사연을 안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나 역시 출국 수속을 마치며 이 낯설고 특별한 여정을 준비했다.



처음 해외에 나간 것은 스무 해가 훌쩍 지난 일이다.


대학원 시절,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의 한 대학을 방문했는데, 학술 교류를 겸한 단체 여행이었다. 당시 나는 군인 신분이었기에 적성국가로 분류된 중국을 방문하려면 기무사의 승인까지 받아야 했다.


어렵게 허락을 얻어 출발한 첫 해외여행이었지만, 낡은 시설과 낯선 환경은 내게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여행에서 얻은 것은 즐거움보다는 ‘낯설음’에 대한 불편함이 더 컸다.



결혼 후의 여행은 그와는 전혀 달랐다.


우리는 매년 한 번쯤은 낯선 나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혼여행지였던 발리를 시작으로 사이판, 후쿠오카, 오키나와, 코타키나발루, 괌, 다낭, 싱가포르, 하와이, 그리고 올해 초에 다녀온 미국 서부까지, 열 곳이 넘는 여행지가 우리 가족의 추억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각 나라의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마치고 현지 공기를 마시는 순간, 세상은 넓고 내가 모르는 풍경이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 깨닫곤 했다.


여행은 우리에게 언제나 설렘을 주었다. 유명한 음식을 찾아 맛보며 낯선 맛에 감탄하기도 했고, 절경을 눈에 담으며 숨이 멎을 듯 감동하기도 했다.


아이가 자라면서는 새로운 장소가 주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었다. 여행지에서의 하루하루는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는 시간이자, 다른 세상을 잠시 살아보는 경험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이미 다음 여행을 이야기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또다시 설레는 준비를 시작했다. 비행기 표를 검색하고, 숙소를 고르고, 여행지의 명소와 음식점을 찾아보는 그 모든 과정이 즐거움이었다.


어쩌면 여행의 절반은 준비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기다림과 설렘, 기대와 상상이 켜켜이 쌓여 행복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러 차례 여행을 거듭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거창한 성취나 큰 사건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것을 하나씩 이뤄가는 과정 속에 이미 스며 있다는 것을.


아이가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을 때, 낯선 거리에서 손을 잡고 걸을 때,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한 음식에 만족스러워할 때 그 순간순간이 곧 행복이었다.



출장길에 오른 지금도 마음은 비슷하다.


물론 이번 여정은 업무라는 목적이 있어 긴장감이 더 크지만, 한편으로는 오래된 설렘이 되살아난다. 회사에서의 역할이 커졌기에 해외 출장이라는 경험이 찾아왔고, 그것은 내가 걸어온 길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이정표이기도 하다.



구름 위를 날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렇다, 나는 행복하다.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단순히 낯선 땅을 밟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임을. 출장길에 느끼는 긴장과 설렘도,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느낀 환희도 모두 내 삶을 채우는 다른 얼굴의 행복이었다.


행복은 늘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곁에 머물러 있다. 다만 내가 그것을 알아보고, 붙잡을 줄 알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비행기는 곧 싱가포르의 하늘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그곳에서 어떤 만남과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역시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하나의 여행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그 여정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또 한 번 행복의 얼굴을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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