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을 하면서 깨달은 것
2006년, 군생활을 마칠 무렵 나는 제법 당당했다.
전산장교로 4년을 근무했으니, 이 정도 경력이면 이름 있는 회사에서 불러주리라 믿었다. 군에서 보낸 시간은 단순히 의무를 다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나름의 성취를 쌓았고, 그 과정에서 책임감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웠다고 자부했다. 사회에서도 충분히 통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이력서를 부지런히 내밀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번번이 거절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 앞에 부딪힌 듯, 나를 받아주려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쌓았다고 믿었던 경험이 사회에서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시간은 쉴 새 없이 흘러갔고, 불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전역일은 점점 다가왔지만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눈높이를 낮췄다. 작은 규모의 회사에 지원했고 가까스로 면접 기회를 얻었다. 면접장에 들어서자 임원의 첫 질문은 직설적이었다.
“장교 출신인데, 영업 잘할 수 있습니까?”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는 술이나 골프로 접대하는 영업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기술영업을 하고 싶습니다.”
순간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임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영업이면 영업이고, 기술이면 기술이지. 기술영업이란 건 없어요.”
그 자리에서 이미 결과는 정해진 듯했다.
나는 탈락했고, 그 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홀가분했다. 억지로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며 살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일이었다.
다행히 전역을 한 달여 앞두고, 친구의 추천으로 국내 제약회사에 IT 기획 담당자로 입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 후 여러 번의 이직을 거쳤다.
회사와 직무는 달랐지만, 언제나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뒤따랐다. 제안, 컨설팅, 새로운 사업 개발까지 경험했지만 늘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채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닥쳤다.
세상은 멈춘 듯했고, 나 역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면서 내 안에 쌓여 있던 질문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언젠가는 영업을 해야겠다.’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결심이 조금씩 무르익었다.
연말 조직 개편의 바람이 불었을 때, 나는 영업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영업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경쟁사보다 먼저 사업 기회를 얻으려면 고객과 친분을 쌓아야 했지만, 코로나는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상태에서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때마다 얼굴을 비췄고, 성실하게 대응했다. 한 걸음씩 다가가자, 조금씩 고객의 마음이 열렸다. 성과가 따라오고, 자신감이 뒤따랐다. 성과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내가 올바른 길 위에 서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물론 영업이 늘 빛나는 것만은 아니다. 민원을 처리하는 일은 언제나 힘들었다. 회사 시스템에 장애가 생겨 고객이 피해를 입으면, 잘못하지 않은 나조차 고개 숙여 사과해야 했다. 영업은 늘 죄인의 자리에 서야 했다.
큰 성과를 냈을 때조차 공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전략을 잘 세웠다거나, 제안서를 잘 작성했다는 이유로 다른 부서가 빛을 가져갔다. 반대로 사업을 따내지 못하면 영업이 고객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배운 것이 있었다. 영업은 화려함이 아니라, 버팀과 성실함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 좋은 사람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큰 보람은, 누군가가 먼저 나를 찾아올 때 찾아왔다. 그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신뢰받고 있으며,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었으니까.
영업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일이 아니라,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그 행복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군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택과 우회가 있었지만, 결국 그 모든 길은 나를 지금의 자리로 데려왔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영업이라는 길 위에서, 신뢰를 쌓아가며 나를 찾는 사람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