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일 깨워주신 것
나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원망했다.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고, 화풀이를 하듯 물건을 던지던 아버지의 말과 행동은 어린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늘 술 냄새에 젖어 있는 아버지가 싫었다. 가난도 힘들었지만, 술에 기댄 아버지의 모습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배운 것이라고는 농사일뿐, 먹고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농사 일로 생계를 이어갔고 어렵게 오 남매를 키우셨다. 그러나 농사일들은 언제나 힘들었고, 수입은 넉넉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점점 술에 의지하게 되었다. 술잔을 기울이면 잠시라도 근심이 사라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대가는 언제나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중학교 1학년 봄, 아버지는 경운기 사고를 당했다.
술을 드시고 운전하던 경운기가 농로에서 미끄러지면서 그대로 아버지를 덮쳤다. 피투성이가 된 아버지를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옮기던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께서 수술을 받던 날, 나는 학창 시절 처음으로 결석을 했다.
아버지께서 다리를 다치신 뒤로 집안일은 내 몫이 되었다.
아직 초등학생 티도 채 벗지 못한 중학교 1학년이 경운기를 몰아야 했고, 열 마리가 넘는 소를 돌봐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똥을 치우고 여물을 주는 일이 일상이었다.
어린 나이에 짊어진 삶의 무게는 버거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또래보다 훨씬 일찍 철이 들었다.
6개월 후,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신 아버지는 다시 술을 찾았다.
예전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는 현실이 아버지를 괴롭혔다. 술은 점점 더 깊어졌고, 가족의 고단함도 함께 깊어졌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그 풍경은 서른 해 가까이 반복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한 현실이 싫었다.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고 싶었다. 공부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성적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졌다. 뒤늦게 마음을 다잡았지만 이미 늦었다.
수능 성적이 발표되는 날, 처참한 성적표를 들고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동네 선후배들과 어울려 술을 먹고 새벽녘에야 집에 들어갔다. 현관 불빛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부모님은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문을 열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하다며 한없이 울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괜찮아. 남자는 그럴 수도 있어. 들어가서 자라.”
그 한마디는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늘 원망하던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위로였다.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다.
아버지는 내가 실패하거나 넘어져도 괜찮다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 단순한 말속에는 아버지의 삶 전체가 녹아 있었다.
이후로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술에 기대어 비틀거리던 모습 뒤에는, 세상 무게를 홀로 감당하려던 아버지의 고단함이 숨어 있었다. 가난과 무지, 불안한 생계가 아버지를 짓눌렀지만, 그는 결코 가족을 버리지 않았다. 몸이 부서져도, 술에 취해도, 끝내 집으로 돌아와 우리 곁을 지켰다. 그것이 아버지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돌아보면, 나 또한 아버지를 닮아 있다.
힘겨운 일을 겪을 때마다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버텨내려는 고집. 가족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 그 모든 것들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다. 어릴 적에는 그 고집이 미웠지만, 이제는 그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음을 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수년이 흘렀다.
장례식 날, 한 줌의 재가 되신 아버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기억이 아직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를 용서한다’고 속으로 말했다. 아니, 사실은 용서할 것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저 자기 삶을 버티며, 가족을 지키려 애쓴 평범한 가장이었을 뿐이다.
이제 나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며 살아간다.
아버지가 다 하지 못한 몫을 대신하고 싶다. 자식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내고 싶다. 아버지의 무게를 이해하게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경과 그리움으로 아버지를 기억한다.
때때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술잔을 기울이며 웃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앞에서 나는 다짐한다. 아버지처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며, 끝내 가족을 지켜내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그것이 아버지가 내게 남긴 가장 큰 가르침이자, 내가 살아갈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