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생 시절, 나를 버티게 한 빛
“학군단에 입단했을 때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전투복을 지급받던 날 죽었다고 복창했었다.”
ROTC 출신이라면 수천 번은 불렀을 후보생의 고독의 첫 구절이다. 군가라기보다는 다짐에 가까운 이 노랫말은, 학군단의 문을 처음 들어선 날부터 마음속 깊이 각인된다.
학군단 입단을 위해 지급받은 전투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었다. 그것은 청춘의 자유를 내려놓고 국가를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는 상징이었고, 그 앞에서 우리는 가슴이 뛰는 동시에 어깨가 무겁게 짓눌리는 것을 느꼈다.
후보생 1년 차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훈육관의 지휘 아래 군사학을 배우며 장교로서의 자질을 닦아야 했고, 2년 차 선배들로부터는 학교마다 내려오는 전통을 물려받았다.
와이셔츠를 다리는 법, 구두를 닦는 요령, 베레모에 각을 잡는 법까지. 사소해 보이는 생활 하나하나가 군인의 품위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그러나 그 가르침에는 언제나 대가가 뒤따랐다.
‘특별 교육’은 가르침을 소홀히 한 대가였다. 팔 굽혀 펴기와 발 바꿔 뛰기는 기본 코스였다. ROTC 기수 38회에 맞춘 횟수에서 시작해, 학군단 번호인 119회에 이르면 다리가 풀려 며칠 동안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힘겨웠다.
몸은 강해졌을지 몰라도, 수업 시간에는 어김없이 졸음이 몰려왔다. 늘 강의실 맨 앞줄에 앉아야 했기에 졸음은 곧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교수님이 나를 보며 던진 한마디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자네는 수업하러 왔는가, 잠자러 왔는가?”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끄러움과 민망함, 그리고 밀려드는 무력감이 뒤섞였다. 나는 그저 무사히 졸업해서 장교로 임관만 하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곤 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기 전원을 대상으로 한 특별 교육이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체력 단련은 유난히 강도가 높았다. S4(군수참모) 선배의 묵직한 구령이 울려 퍼지자, 피복고 안은 곧 동기들의 거친 숨소리와 신음으로 가득 찼다.
119회의 팔 굽혀 펴기가 끝나면 곧 이어지는 발 바꿔 뛰기, 또다시 윗몸일으키기…. 체력이 약한 몇몇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들은 차렷 자세로 서서 다른 동기들이 훈련을 받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에 그들의 얼굴에는 눈물이 흘렀다. 고통은 개인의 몫이었지만, 부끄러움과 연대감은 모두의 몫이었다.
두 시간이 넘는 혹독한 단련 끝에, 우리는 강의실로 이동했다.
지친 몸을 의자에 붙들어 매고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특별 교육을 받아야 했는지 웅성거렸다. “이러려고 학군단에 들어온 게 아니다”라는 푸념이 터져 나왔다. 마음 한편에는 답답함과 회의감이 고여 있었다.
잠시 후, S4 선배가 강단으로 들어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칠판 앞에 서서 우리를 둘러보았다. 침묵은 긴장보다 무거웠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를 바라보았다.
한참의 정적 끝에, 그는 분필을 들어 칠판에 작은 점 하나를 찍었다. 그리고 물었다.
“이게 뭐로 보이냐?”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땀 냄새와 피곤이 뒤섞인 교실에 침묵만 흘렀다. 그때 선배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빛이다. 긴 터널을 지날 때 앞이 보이지 않으면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 하지만 언젠가 아주 작은 빛 하나라도 보이면, 곧 빠져나올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너희에게도 언젠가는 그 빛이 보일 것이다.”
그의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그날 우리가 받은 체력 단련은 몸을 단련하기 위함이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고단한 과정 속에서도 언젠가 찾아올 ‘빛’을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캠퍼스에서 베레모를 벗고 다닐 수 있는 작은 특권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값진 것은 한 점의 빛이 전해준 깨달음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듯 이어지는 훈련과 불안정한 후보생의 나날 속에서도 언젠가 반드시 마주할 희망이 있다는 믿음. 그것이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땀과 눈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것은 내 삶을 지탱해 온 뿌리이자, 역경을 견디는 힘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사회라는 새로운 전장에서 맞닥뜨린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나는 종종 그날의 칠판 위 작은 점을 떠올린다.
터널 속 점 하나의 빛. 그것은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 주는 등불이었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희망이었다.
청춘의 한가운데서 배운 그 진리는 오늘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