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어지지 않는 나무처럼
사람의 성격을 네 글자로 규정짓는 일이 과연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여러 차례의 MBTI 검사에서 늘 같은 결과를 받아들였다.
ENFJ.
사려 깊고 이상주의적이며,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자 하는 성향을 가진 ‘선도자’ 유형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돌이켜보면 내 삶의 궤적과 묘하게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나는 본래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였다.
낯선 사람 앞에서는 말 한마디 꺼내는 것도 버거워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학급 반장을 맡게 되면서 인생의 방향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반장이라는 자리는 단순히 이름만 걸어놓는 자리가 아니었다.
학급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조율하고, 때로는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의 다리가 되어야 했다. 매번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위해 나서고, 갈등을 풀어내고, 책임을 지는 경험은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성향을 일깨웠다.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학생 부회장을 맡았다.
그때도 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자”는 마음으로 책임을 떠안았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남들보다 조금 더 앞에 세워야 한다는 무언의 의무감을 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학군단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진짜 ‘조직 속 리더십’을 배웠다.
명령과 복종의 구조 속에서 선배와 후배, 동기들과 부딪히며 때로는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신념은 쉽게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 나는 마음속에 문장을 하나 새겼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말자.”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원칙을 누군가의 눈치나 편의를 위해 꺾어버린다면, 남들에게는 잠시 좋은 사람으로 보일지 몰라도 결국 스스로를 배신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휘어진 채로 살아가는 삶은 편안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스스로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부러지는 편이 낫다고 결심했다.
군 생활을 하며 이 다짐은 더욱 단단해졌다.
장교로서 부하들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기에, 원칙을 굽히는 일은 곧 사람을 해치는 일과 같았다. 상관의 지시가 때로는 불합리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으려 했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있지만, 후회는 없었다.
직장 생활은 군대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했다.
조직 안에서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넘어가는 일들이 수없이 많았다. 겉으로는 작은 편의나 이익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군가에게 피해가 돌아가거나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단호히 거절했다.
나를 곱게 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성격이 강하다, 고집이 세다, 타협을 모른다… 여러 말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지 않는 리더를 팀원들이 과연 따르겠는가. 팀장의 권위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가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조금만 눈을 감았다면, 조금만 타협했다면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돈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 앉아 두 다리를 뻗고 편히 잠들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와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빠는 오늘도 옳은 선택을 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답은 늘 같았다.
물론 이런 태도는 늘 순탄한 길을 보장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커지는 회의실, 서로의 자존심이 부딪히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때로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성격이 드세다, 융통성이 부족하다, 고집불통이라는 말을 들으며 외로움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리더가 되는 길은 사람들에게 무조건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 길에서 오해와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일 뿐이다.
얼마 전, 새로 합류한 팀원에게서 늦은 밤 전화가 걸려왔다.
술에 취한 목소리였다. 그는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팀장님, 인생 참 잘 사신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짧았지만, 묵직하게 다가왔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울림을 가만히 되새겼다. 다음 날 그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오래도록 남았다.
누군가의 술김에 내뱉은 말일지라도, 그것은 내 삶의 방향을 확인해 주는 고백이었다. 내 철학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좋은 흔적으로 남았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휘어지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고집스러워 보일지라도, 그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자 내 아들에게 물려줄 가장 큰 유산이라 믿는다. 돈이나 자리보다 더 값진 것은 결국 양심이다.
사람의 성격을 네 글자로 규정짓는 MBTI가 진정한 나를 설명해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만은 분명하다. 내 삶을 관통하는 이 철학은 네 글자가 아니라, 네 글자로는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선택과 다짐의 결과라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