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오선지

by 나르는꿈

윤이는 꿈을 잘 꾼다.

거의 매일 꿈을 꾼다. 밤사이 꾼 꿈들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생생히 생각났다가 금방 뒤죽박죽 엉키어 희미해지는 꿈도 있지만 기억이 오래 남는 무서운 꿈도 있다.

요즈음 윤이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꿈을 자주 꾼다.

집 옥상 위에서 펄쩍 지붕과 지붕 위로 뛰어다니다가 탄력을 받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이다.

꿈이지만 윤이는 너무 신난다. 가볍게 폴짝 지붕 위를 건너다니다가 크게 돋움 질 하여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윤이가 마음만 먹으면 힘을 내서 더 높게 멀리 날아다닐 수가 있었다.

힘이 빠져 낮게 내려앉으려 하면 있는 힘을 다해 떨어지지 않으려고 슈퍼맨처럼 위로, 위로 팔을 쭉 뻗어 용을 쓴다. 때로는 가까운 건물 위로 살짝 내려서 다시 충전해 힘껏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렇게 자유롭게 멀리 높이 날아오르다 보면 꼭 나타나는 게 있다.

길게 줄 지어선 전선줄들이다.

세 줄 네 줄 전선 줄은 윤이가 더 높이 날아오르는 것을 방해했다.

윤이는 번번이 그 전선줄에 걸려 힘을 잃고 어두운 골목 구석으로 떨어져 누군가에게 쫓기어 달아나는 것이었다.

열심히 달려서 다시 날아오르려고 골목을 빠져나오다가 꿈에서 깨고는 했다.

그렇게 꿈에서 깨고 나면 너무나 아쉬웠다.

더 높이 더 멀리 마음껏 날아다니며 놀지 못한 것이 그 전선줄들 때문인 것 같아 윤이는 전선줄들이 미웠다.

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나고 멋졌다.

하늘에는 차들도 없고 커다란 건물들도 없다. 마음껏 뒹굴고 아무렇게나 날아다녀도 걸리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집에서 멀리 높이 날아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전선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윤이는 점심시간 교실 창가에 앉아 운동장과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운동장에는 점심을 먹은 친구들이 공놀이와 줄넘기도 하고 놀이기구에서 술래놀이도 하고 신나게 놀고 있었다.

교실 창가에서 바라본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꿈에서처럼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드높았다.

정말 이상하다. 전선 줄은 도롯가 전신주가 있는 곳에서 시작되어 전신주로 연결되는 거지

왜 하늘 높이 그렇게 있는 건지 윤이는 알 수가 없었다.

어젯밤에도 정말 신나게 하늘 높이 퐁퐁 뛰며 날아오르는데 전선줄이 가로로 처져 있었다.

세줄 네 줄의 기다란 전선 줄은 윤이가 더 높이 날아오르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한 줄은 가볍게 슬쩍 뛰어넘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숙여서 다음 줄을 건너 넘어가려는데 그만 발끝에서 걸렸었다.

마음껏 날아오르다, 전선줄에 걸리면 이상하게 힘이 빠졌다.

윤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용을 쓰며 전선줄 사이에서 빠져나오려 하는데 그만 몸이 줄에 엉켜 좁은 골목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언제나 그 골목이다. 윤이네 집을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사잇길이었는데 꿈속에서는 더 좁고 어두웠고 길었다.

꿈에서 골목으로 떨어지면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윤이를 잡으러 왔고 윤이는 힘을 다해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오려 달렸다.

골목만 벗어나면 큰 길이 나오고 그러면 다시 탄력을 받아 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골목을 벗어날 즈음에 꼭 잠에서 깼다.

하늘을 보다가 운동장을 내려다보니 친구들은 여전히 신나게 놀고 있었다.

운동장 중앙에서 축구하는 친구들을 보다가 한쪽 구석에서 줄넘기하는 친구들에게 시선이 갔다.

줄넘기를 가지고 갖가지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팔을 폈다, 오므렸다, 줄넘기를 팔에 감았다, 풀었다, 하면서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 춤추듯이 줄넘기를 했다.

윤이는 줄넘기 줄을 보면서 꿈에서 본 전선줄 생각이 났다.

나도 전선줄을 자유자재로 넘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 전선줄에 걸려 더 높이 마음대로 날아오를 수 없는 것이 억울했다.

오 교시는 음악 시간이다.

윤이는 점심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가 수업시간 종이 울리자, 음악책을 펼쳤다. 여전히 기분은 우울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지난밤 꿈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밤 꿈에서는 두 번째 전선줄을 잘 넘어갔었다. 너무 신나 급하게 세 번째 전선줄을 넘으려다 그만 걸려서 힘이 빠졌다. 안 떨어지려 애를 쓰다가 잠에서 깼었다.

선생님께서 악보 영상을 틀어 주셨다.

퍼프와 재키 노래 악보였다. 선생님은 악보에 계이름을 붙여 노래를 부르시면서 다음 시간에 리코더를 준비해 와서 리코더 연주를 할 거라고 하셨다.

퍼프와 재키는 윤이가 좋아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이 퍼프와 재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윤이는 퍼프같은 신비한 비밀스러운 친구가 있는 재키가 부러웠다.

윤이는 영상 속 악보를 짚어주는 선생님의 손끝을 따라가며 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오선줄이 꿈속의 전선줄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표들은 퍼프가 통통거리며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퍼프야 너는 어쩜 그렇게 줄타기를 잘하니”

윤이는 조심스레 퐁당퐁당 줄을 뛰어넘고 있는 퍼프에게 말을 걸었다.

“ 이건 줄타기가 아니야 그냥 즐겁게 노는 거야”

“즐겁게 노는 거라고? 줄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는데?”

“리듬을 타봐 이렇게”

퍼프는 찡긋 웃으며 줄과 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꼬리를 흔들며 엉덩이춤을 추었다.

“리듬?”

“응 안갯속을 헤엄치며 뛰어다니는 것도 재미있지만 줄들이 나랑 놀아주니 더욱 즐겁지, 나는 줄을 넘나들면서 이렇게 춤도 출 수 있고 너무 신나”

“신난다고?”

“그래 올라갔다 내려왔다, 줄을 바꾸어가며 노래도 부르고 얼마나 좋아”

통통거리며 오르락내리락 퍼프는 날개를 단것처럼 가볍게 오선줄 사이를 돌아다녔다. 정말 즐거워 보였다.

“오선의 줄이 내 놀이 친구야 놀다가 지치면 이렇게 줄 위에서 쉴 수도 있으니 나는 우울하지 않아 우울하면 마음이 무거워 쉽게 지쳐”

“아,,,”

윤이는 그저 감탄하며 줄을 타며 즐거운 퍼프를 바라보았다.


“뭐 해 집에 가야지!”

뒤에 앉은 정민이가 윤이 어깨를 툭 쳤다.

윤이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마지막 음악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이 하나둘 교실을 나가고 있었다.

퍼프가 그랬다. 리듬을 타라고 전선줄은 방해꾼이 아니고 놀이 친구라고.

윤이는 꿈속에서 전선줄을 놀이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전선줄은 높이 더 높이 날아오르는 것을 가로막는 방해물이라고 생각했다.

윤이는 전선줄을 타고 놀 줄을 몰랐다. 뚫고 지나가야 하는 철조망 같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전선줄은 정말 악보의 오선지를 닮았다.

전선줄은 하늘에 그려진 오선지 같았다.

오선지에는 도레미파솔라시도 팔도 화음의 음계가 춤추는 곳이다.

퍼프가 그랬다. 리듬을 타면 오선지도 춤을 춘다고.

퍼프가 꼬리를 흔들며 엉덩이춤을 추는 것처럼.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꿈에서 날다가 전선줄을 만나면 어떻게 하든지 뚫고 지나갈 생각만 하고 전선줄을 타고 노는 생각은 왜, 안 했을까.

하늘을 날아오르다 전선줄을 만나면 친구들이 자유자재로 줄넘기하듯이 퍼프가 통통거리며 줄과 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노는 것처럼 놀 수 있다는 생각을 윤이는 하지 못했다.

꿈에서 전선줄은 윤이가 하늘 높이 마음껏 날아다니는데 방해꾼이라 생각했다.

윤이는 전선줄 사이를 고무줄놀이하듯 넘나들며 놀고 있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신났다.

퍼프를 만나면 고맙다고 말해야지....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문득 왼쪽으로 나 있는 골목길을 봤다.

평소에는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인데 꿈에서처럼 그렇게 좁은 길은 아니었다.

멀리 날아갔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지면 언제나 집 근처 이 골목길이었다.

골목길 저쪽 끝은 옆 동네와 이어져 있고 큰길로 내려가는 샛길이기도 했다.

길게 이어지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뭔가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꿈에서 떨어지면 구석진 쪽에서 무언가가 좇아 왔었다. 왜 좇아 왔을까?

윤이는 호기심에 골목길로 들어갔다.

골목길 한편은 길게 담벼락으로 이어져 있었고 맞은편으로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골목길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둡고 좁아졌다.

“안녕? 기다리고 있었어”

길게 이어진 끝 구석진 곳에서 불쑥 귀가 길게 늘어진 하얀 토끼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토끼가 말을 하네, 안녕? 나를 아니? 너는 왜 이 구석진 곳에 있는 거야,”

“내 이름은 토순이야 너의 어릴 적 친구야 줄에 걸려 떨어질 때 먼 곳으로 가지 않게 내가 이곳으로 너를 잡아줬지 너무 먼 곳으로 떨어지면 돌아오기 힘들잖아”

토순이라고? 윤이는 토끼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 토끼를 어디서 본 적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토순이라는 귀가 긴 하얀 토끼는 귀엽게 웃으며 윤이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에 윤이는 스르르 마음이 풀렸다.

아, 맞아, 토순이 어렸을 때 애착인형. 어린이집에 처음 가던 날 토순이를 꼭 끌어안고 잤다고 엄마가 그랬었지. 그런데 어린이집에 적응하면서부터 애착인형 토순이는 보이지가 않았어.

귀가 길고 까만 눈동자의 하얀 토순이는 윤이의 마음을 다 읽었나 보았다.

그래 나는 네가 어린이집에 적응하고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면서 너와 멀어졌지 너는 나를 차츰 찾지 않고 잊어갔지만 나는 너의 영원한 애착인형 토순이라고 했다.

“어디 갔었어?”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아 늘 너의 곁에 있어 네가 잊고 있을 뿐이란다.”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네가 날아다니고 싶어 하는 걸 도와주고 싶어서”

토순이는 윤이가 전선줄에 걸려 떨어질 때 얼른 달려와 윤이가 다치지 않게 뒤에서 잡고 있었다고 했다. 윤이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갔지만 너무 어두워 윤이는 미처 토순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겁에 질려 달렸다고 했다.

“너였구나, 나를 쫓아오던 게 나는 너무 무섭기도 했지만, 다시 날고 싶었어, 그런데 성공하지 못했어, 하늘에 있는 그 전선줄을 넘고 싶어, 그래서 높이 날아오르고 싶어.”

“높이 날아올라서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생각해 봤어?”

글쎄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냥 높이 날아다니고 싶었다.

“혼자서 높이 날아다닌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야, 새들도 날아가다가 나뭇가지에 쉬어 가. 멀리 가는 새들은 여러 마리가 무리 지어 서로를 응원하고 힘을 주며 날아가 하늘에 걸려있는 전선줄은 방해물이 아니야 날아다니다가 힘들면 걸터앉아 쉬기도 하고 디디고 서서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게 탄력도 주는 놀이터야.”

토순이는 샛별처럼 맑게 빛나는 눈빛으로 포근히 윤이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윤이의 애착인형으로 윤이 곁에 있다고 속삭여 주었다.

퍼프도 토순이도 길게 늘어져 있던 줄들을 놀이터라고 한다.

윤이는 하늘을 날면 무엇이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오늘 밤 꿈에는 날아가다가 전선줄에서 퍼프와 재키 노래를 부르며 오선줄처럼 타고 놀 수 있을 거 같다. 퍼프도 만나고 토순이도 만날 거 같다.


하늘을 날아 올라가면 우선 전선줄을 자유롭게 넘어 다닐 거라고 다짐한다.











일요일 연재
이전 05화지호는 25개월